유치원 시절 부터 친구랑 손잡고 치과를 다녔다.
공중보건의가 진료하는 면소재지 보건소였는데,
지금 우리 아들이라면 꿈도 못 꿀 착한 태도로
힘든 치과치료를 잘 받았다. 고 우리 엄마가 그랬다.
치료가 어땠는지는 거의 기억이 안나는데, 항상 가는 시간이 점심 시간이어서 의사쌤이나 간호사쌤이 가끔 컵라면 같은걸 나눠주곤 하니 유치원생이 그 재미에 오갔던것 같다.
타고 나길 치아가 잘 상하는 편에다 양치를 하라는 잔소리만 들었지, 양치습관이나 양치법 같은걸 누가 제대로 가르쳐주지도 않았고 잘 모르다보니 치아가 자주 탈이 났다.
이가 아파서 방구석에 드러누워 앓던 기억이 드문드문 있다.
앞니가 흔들리던 어느날은 외할머니가 오셔서 이에 실을 묶고 안뺀다,안뺀다 하고는 마빡을 치는 동시에 앞니가 뽑혔다. 그리고는...
아무리 기다려도 앞니가 나질 않았다.
치과에 가서 엑스레이를 찍고 시술을 받고서야 치아가 났는데 새싹같이 곱던 유치와는 달리 크고 뒤틀리고 못생긴 대문니였다. 엄마가 말하길 엑스레이상의 앞니를 보고 의사쌤이 웃었다고 했다. 지금 생각하니 외할머니도, 엄마도, 웃었다는 치과의사도 다 빡친다.
이를 뽑는 방법이나 방향도 중요하고 이갈이를 하는 시기도 중요하다는 걸 80년대 옛날 사람들이 알리가 없었다.
아아 나는 피해자인 것이다.
타임머신이 있다면 내 치아요정인 외할머니가 내 앞니에 묶은 실부터 가위로 잘랐을 것을.
중학교때도 내내 치과를 다니며 부은 잇몸을 잘라내고 , 쌀쌀맞은 간호사쌤과 양치 제대로 안할래?하며 혼내키는 치과의사쌤한테 혹독한 치료를 받으며 보냈다.
여튼 보다 못한 엄마가 오빠랑 나를 두름으로 묶어 교정을 시켰다. 교정이 실패하진 않았지만 교정이란게 그렇듯 생니를 기본 두개 이상은 잡아빼내고 시작한다.
사실 오빠는 앞니만 어째 하면 될 튼튼한 치아였는데, 엄마 본인도 치아는 튼튼하지만 앞툭튀라 포은이 져서 오빠랑 나 둘다 교정대로 끌어올린 것이다.
교정한지 벌써 20년이 지났지만 나는 못생김을 커버하기 위해 결국 라미네이트를 다시 했고, 오빠는 교정 안했으면 더 튼튼하게 치아를 유지했을 거라고 이제 풍치 올 일만 남았다고 투덜댄다.
엄마 탓이라기보다는 그땐 지금처럼 정보가 없으니...
아아 엄마 때문이다 증맬.
결혼하고서는 집 근처 치과에 다니는데 잘하는지 못하는지 난 잘 모르겠지만 여기 치과의사쌤은 딱히 과잉 진료를 권하지도 않고, 검진과 관리를 통해 유지를 잘 하라고 했다.
다른데서 엄청난 견적을 받았다고 하니 그래보일수 있고 그렇게 하면 좋겠지만, 요는 결혼도 했겠다 애도 낳았겠다 니 나이에 그렇게 미관을 따질 필요는 없고, 오래오래 가급적이면 관리를 잘 해서 니 치아가 빠지기 전까지는 니꺼 쓰는게 가장 좋다는 취지의 말씀을 하셨다.
이 엉망의 치아도 쓸모가 있다니 어쩐지 고마워서 쭉 그 치과에 다니고 있다.
요즘은 옛날처럼 치과치료가 잔혹하게 느껴지진 않는다.
내가 나이가 든 탓도 있겠고 여전히 무서운 소리의 진료기계들이 돌아가지만, 덜 아픈 마취 방법도 여러가지에다 선생님을 비롯해 의료진도 설탕같이 친절해, 덜 불안하니 덜 무서운듯 하다.
내가 이렇게 치아가 안 좋으니 아들의 양치습관 들이는데 매우 신경을 쓰고 있다. 매우 싫어한다.
그래도 어쩌랴 어미가 치아에 탕진하니 너라도 돈을 애껴야지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