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어달정도 선생님을 통해 절 일을 했다.
단청일이었는데 단청일 자체는 전문가들이 따로 있고, 벽화를 따로 공들이고 싶으신 큰스님 워너비에 맞춰 단청 사장님의 인맥이 나의 불화 선생님을 불렀고 나도 따라간 것이다. 불화반의 다른 분들도 오셨고 말이다.
하청의 하청인 셈이라 돈이 그리 크진 않았지만, 절 일은 좋다. 속가와 똑같이 절간도 절마다 케바케긴 한데 일단 몇군데 안되지만 내가 절 일을 따라가본 절은 운좋게도 모두 공양은 당연하고 재가 있으면 스님이 떡도 주시고 과일도 주고 히히.
여기 큰스님도 가끔 자기꺼 초콜릿 같은 것도 주시고 힘내서 부처님 전용 인테리어 잘해라고 맛있는 걸 많이 주셨다.
비싼 보이차도 우려서 주셨다.
생보이차를 처음 마셔보았다.
난 맛있는 걸 좋아하는 돼지띠라 그게 참 좋다.
이른 아침 아이가 깨지 않게 살그머니 일어나서 노가다 십장이라도 된 듯한 느낌으로 빈속에 뜨거운 믹스커피 한 봉을 때려넣고 씩씩하게 절로 나갔다.
남편은 만날 자기만 이른 아침에 출근하는게 억울했던지, 내가 아침에 단청 나간다고 하니 은근히 혹은 대놓고 활짝 웃으며 기뻐하면서 비몽사몽인 나를 집요하게 깨워 등을 떠밀어 빨리 나가라고 하고 자기는 아이 옆에 누워 손을 흔들었다.
외부 작업이라 덥고 춥고를 고스란히 받는 고된 일정이지만, 세상일 고되지 않은일이 어디 있으랴.
그럼에도 나는 이 일이 좋고 충분히 견딘다.
나의 선생님도 환갑을 바라보는 나이에 병환에서 회복한지 몇년차 되지 않았음에도 그쪽이야말로 불심을 다해 채색을 하고 문양을 채운다. 그새 노가다 몸에 배였다며 여섯시만 되면 저절로 눈이 떠져. 라고 하신다. 따를만한 분이다.
지극히 우아한 불화를 사랑하지만 살아 있다는 기분을 제대로 느끼는 단청도 재미있다. 삶으로 살아있기 때문에 일 끝난 저녁이 되면 온 몸 삭신이 아프고 목이 넘어가지 않아 뒷목을 잡고 양치를 할 지 언정 기뻤다.
나는 생각보다 처박힌 I가 아니라 햇볕 아래 E를 지향하는지도 모른다.
이제는 일이 끝났고 아마도 우리의 부처님은 스님들과 신도들과 함께 눈을 뜨는 점안을 기다리고 계실 것이다.
옴 아라남 아라다의 뜻은,
[번뇌가 없는 편안한 마음으로 법열속에서 만족한다]
라는 의미가 된다고 한다.
오전 햇볕을 받으며 사시불공속에 붓만 쉼없이 움직이고 있으면 돈과 빵으로 가득한 내 머리도 아주 잠시 그런 만족이었던듯 하다.
타인인 당신 또한 그러길 바란다.
그것이 옴 아라남 아라다의 뜻이다.
TMI) 벽화는 고려불화를 몹시 사랑하는 큰스님의 20년 넘은 염원에 따라 진행했는데, 당시 내가 다니는 불화반에서 후쿠오카박물관의 고려불화 특별전을 보러 가는 팀이 있어 그저 부러워했다. 그런데 나중에 찾아보니 박물관에서 많은 사람들이 가장 감명 받았다는 고려불화가 큰스님이 가장 사랑하는 우리가 진행했던 바로 그 작품이었다.
부처님이 원하는것 다 주진 않아도 이렇게 반은 주신다니까 선생님이 깔깔 웃었다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