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어공주를 위하여

by 따따따

미대를 나왔다 보니 그림 그리는 지인은 간간히 발에 채이지만 만화를 하던 사람은 딱 한 사람 알고 있다.

내가 잡다한 일을 하던 시절 이전글에 잠깐 언급한 문화재연구원의 팀장님이다. 지금은 이보게 저보게 하는 언니 동생 사이로 지내는데 나랑 가야소녀 친구는 여적 그때 버릇으로 쌤님 쌤님 한다. 발굴유물도 전면 3D스캔으로 바뀌어가는 요즘에 유물 실측을 수기로 할 수 있는 거의 마지막 귀한 사람으로 엄청나게 프로패셔널이고, 나도 친구도 이 쌤님에게 유물 그리는 걸 배웠다. 가르치는 것도 잘했고 그리는 것도 잘했고 일도 잘하고 태블릿 활용도 일찌감치 잘했다.


근데 알고 보니 이 쌤님이 소싯적에 만화공모전도 입상했던 레알 꿈나무였다. 지금이야 웹툰이 아예 장악했지만 정통 아날로그 종이 만화를 그리던 막차쯤을 탄 사람이었다. 쓰다보니 뭐 자꾸 마지막인데 진짜 마지막 세대다. 쌤님 울지 말아요. X세대는 알만하실 만화가 이미라도 만난적 있는 대박 옛날 사람이었던 것이다. 나는 이미라 만화는 읽지 않았다. 그 정도 옛날 사람은 아니라서... 참고로 인어공주를 위하여는 이미라 선생님의 메가히트작이다.

한번은 쌤님네 집에 놀러가서 그 집 아들이 뒤져서 꺼내온 소싯적 습작들을 봤는데 선이 정말 장난 없었다. 유물 실측할때도 차원이 다른 선을 쓰긴 했지만 쑥스러워하는 쌤님을 앞에 두고 와.. 쌤님 너무 잘 그렸는데 미쳤다 진짜 하며 나는 정말 한참을 봤다. 세상엔 정말 숨은 고수들이 너무 많다. 주성치는 쿵푸허슬을 실화 바탕으로 만든게 틀림없다.


오래전에 같이 일할때 그 사실을 알고서 쌤님 왜 만화 그만 두었어요?물었더니 자긴 대성할 거 같진 않아서 좋아하는 만화와 할 수 있는 지금 일 양쪽에 발을 담그고 있다가 만화에서 발을 먼저 뺐다고 했다. 굉장히 현실적인 사람이라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다 싶었다.

근데 쌤님 스토리도 직접 썼어요? 하니 응 했다.

진짜요? 무슨 이야긴데요 스토리까지 되면서 왜 만화 그만뒀냐고 20대 꼬마들이 시끄럽게 볶아대니 잠시 고민하더니, 음음... 그림은 순정인데 스토리가 SF였어 라고 해서 엄청 웃었었다. 그런데 요즘 그 이야길 다시 하면서 쌤님은 너무 앞서나가서 그 시대가 받아들이지 못할 인재였던거 같다니 또 순순히 인정하는게 전형적인 오따쿠다. 사내 정치질 같은걸 너무나 경멸하고 나같은 일개 알바생을 귀하게 여겨주었던 유니콘 상사 쌤님은 장차는 돌아가신 자신의 다정했던 어머니의 일생을 그림으로 그리는게 꿈이라고 아주 천천히 그걸 해나가고 싶다고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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