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운동신경 자체가 별로 없고 대신 등반이나 걷기 이런건 잘한다. 예전에 일하던 데서 팀끼리 산에서 간단히 산책한대서 나갔는데 기존 직원들은 아웃도어 풀 장착하고 나오고 나랑 두어명은 진짜 산책인줄 알고 걍 운동화에 티셔츠 입고 저기 저 해인사 있는 가야산 등반한 적 있다. 올라가기 시작하는데 점점 가팔라지는게 아무래도 이상해서 이게 산책 아닌데요?? 등반 같은데..? 하니까 직원이 아니라고 산책이라고 조금만 가면 끝이라고 계속 가스라이팅 하길래 땀을 팥죽 같이 흘리며 결국은 정상 찍고서야 이거... 산책 아니잖아 등산이잖아(존대할 힘도 없고 반말밖에 안나갔다)하니까 직원이 ㅋㅋ 하며 솔직히 얘기했음 너네 아무도 안왔을거 아니냐고 김밥도 주고 오이도 주니까 그냥 풀렸다. 그 당시만 해도 집에 진돗개가 있어서 만날 야산으로 들로 강제 운동해야 했는데 그게 도움이 되었는지 내 체력이 원래 강성인지 운동화 신고 가야산 정상 찍고 내려왔는데도 다음날 아무렇지도 않았다.같이 속은 애들은 온 몸이 아파 죽겠다고 난리여서 같이 못 간 팀장님이 오구오구 어쩌다 속았쪄 해줬는데 나는 멀쩡해서 좀 섭섭함과 동시에 이야 이거 내가 확실히 근돼구나 싶긴 했다. 나중에 이거 비슷한 썰 본 적 있는데 그쪽은 최소한 동기는 자발적이었던거 같다.
반면 달리기나 구기 같은 종목은 전혀 못한다.
유치원때 달리기를 하도 못해서 꼴찌 아님 꼴찌 바로 앞 만날 이러니까 엄마가 ㅇㅇ야 너는 왜 자꾸 꼴찌하노?물으니까 엄마!빨리 달리면 넘어지잖아~ 했다고 한다.그런 현답을 했으니 우리 엄마도 나한테 일말의 기대가 있었던 모양인데 난 그냥 달리기 못하는 사람으로 자랐다.
요새는 운동회 달리기해도 꼴찌 같은 개념 없는걸로 안다. 초등생한테 들으니 세명씩 짝지워 달리거나 네명 달려도 무조건 손등에 도장 찍어 준단다. 좋아졌네.
퓨. 나는 달려도 손등에 도장 찍을 일도 없으니 넘어질거 같아서 산책인듯 등반하며 김밥 먹고 물 먹고 띄엄띄엄 살면서 그럭저럭 왔다. 나는 꿈을 꾸면 어딘가에 항상 끝까지 가지 못하거나 절벽에서 가로막혀 내려오는 경우가 많은데 딱 한번 꿈에 아는 스님의 목소리만이 나를 이끌어 높은 바위산의 꼭대기에 도착한 적이 있다. 바위산의 암자 문을 열지는 않았지만 난 여기까지 드디어 왔구나 한 적이 있었다.새해에도 별거 바라겠는가. 가족 건강하고 나도 여전히 띄엄띄엄 어딘가에 있을지 모를 정상까지 걸을 수 있으면 그걸로 좋겠다.난 근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