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 여러분

by 따따따

아동미술 가르칠때 애들은 날 별로 안 좋아했다.

애들은 일단 머리카락 길고 화장하고 치마 걸쳐야 좋아하는데 난 거기에 모두 해당 사항 없음에다 상냥하고 싹싹한 성격도 아니니까 인기 없는 건 별 수 없었다.

딱 한번인가 롱스커트가 유행이던 해에 펄럭거리는 치마 걸치고 갔더니 예쁜걸 참 좋아했던 몽실한 초1 여자애가 나한테 선샹님 오늘 왜 드레스 입었어요? 공주 같아요 했다. 머 얘 세상에 공주라니... 그런 반응은 일생일대에 처음이라 그때 엄청 웃으면서 당황했는데 아 애들은 얼굴은 크게 안 따지나부다 싶었다.

하여간 평균적으로는 걍 나한테 큰 관심 없이 할 거 하고 는 편이었다. 나도 사실 그땐 20대라 젊고 생속이라 아이들하고 있는게 좋지만은 않았지만 목구녕이 포도청에 배운게 도둑질이라 일했던거 같다.

그럼에도 반골들은 어디에나 존재해서 정말 적은 확률로 나를 좋아해주는 아이들도 종종 있었다. 같이 일했었던 쌍둥이 언니는 굉장히 섬세하고 상냥하다 보니 그런 팬들 많았는데 내 소수 정예들은 주로 특징이 별로 말이 없고 내가 가르치는 방식이나 내가 거는 장난, 말투 이런거에 꽂혀서 혼자 재미있어 하는 타입들이었다. 개중에는 마법천자문에서 배운 죽을 사! 망할 망!을 강렬하게 외치며 이래라 저래라 잔소리 퍼붓는 나에게 응징하기도 했다.

나랑 맞으니 그림도 잘 늘어서 원장이 그런 애들을 쏙쏙 빼가기도 하고 그랬다. 가르치는 거 자체는 나도 그렇게 나쁘지 않았는데 내가 무섭다는 애들이 많아서 원장이 제발 10프로만 더 상냥하라고 핀잔을 주기도 했다. 지금은 아줌마라서 간 쓸개 다 빼먹을듯 자본주의 잇몸 가능한데 그땐 20대의 그 어떤 기개를 내려놓지를 못했다.

마지막 타임에 수업하는 여자애 하나는 초1이었는데, 부모님이 참 좋으신 분들이셔서 그랬는지 애도 성격이 참 좋았다. 낯가림도 없고 그림도 잘 그렸고 기본적으로 조숙한 타입이었던지라 할 말 못 할 말 다해서 나도 그냥 편안히 응대해었다.

하루는 비타민 C 레모나를 가져와서 이거 먹으면 피부 하얘진다고 (걔가 살짝 피부톤이 어두웠다)나에게 권하길래 아냐 난 괜찮으니 너 다 먹어 하고 거절했다. 그랬더니 아~ 알았어요. 혼자 다 먹으면 난 좋지. 그리고 선생님은 얼굴은 못 생겼지만 피부는 좋아서 굳이 안먹어도 되겠네요 라고 하는게 아닌가... 초 1한테 뼈를 세게 맞고 나도 죽을 사 망할 망을 외치며 다른 선생님들한테 얘기하니 피부 좋다고 칭찬도 같이 들었으니 괜찮다고 가스라이팅 해주었다. 오래전 일인데 그게 되게 기억 남아서 지금도 레모나 안 먹는다ㅋㅋ 이제 그 어린이도 성인이겠다. 이름도 기억난다. 혜원아 잘 사니?

아이들하고 말 섞어보면 나도 모르게 (-_-) 이 표정이 나오게 되긴 한데 재미는 있다. 속이 빤하기도 하고 지긋지긋한데 뭐 귀엽긴 하다. 친구 딸들 방학동안 미술 봐주기로 했는데 문득 옛 일이 생각나서 쓴다. 내일의 어린이들은 또 어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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