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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따따따 Feb 16. 2024

일관

그림 선생님은 내 나이 정도에 불화를 시작하셨다.

절 불화반 함께 시작했던 60명 중에 20년 가까이 지난 지금까지 불화를 하고 있는 사람은 본인뿐이라고 한다. 인연도 닿았고 본인 불심도 공고한 데다 꾸준함이 합쳐져 20년쯤 되니 이제야 겨우 고개 하나를 넘은 것 같다 하신다. 고개를 넘었다 뿐이지 경지에 이르려면 여전히 너무 멀기만 하다고 항상 그림에 대한 꾸준함을 강조하신다.

별 거 없고 그냥 하루에 4시간 정도는 그림을 잡고 있던가  습화라도 한 장 해야 손이 낡지 않는다고 그때만큼은 세상 진지하다. 노선생님도 항상 그 얘긴 하신다. 설거지해 놓고 길게도 말고 30분만 투자해서 습화하라고 말이다.

작고하신 전 무형문화재셨던 왕선생님이 그림선생님의 첫 선생님이셨는데 금어의 직계제자로 출중하신 분이었다. 그분은 본인 자녀들에게 어릴 때부터 매일 습화 한 장씩을 시켰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왕선생님의 자녀분들은 아무도 그림 하는 이가 없다고 한다.  이야기에 질린 표정으로 쳐다보고 있으니 그림 선생님이 황급히 수습한다. 어쨌든 꾸준함과 성실함의 아이콘인 첫 선생님께 본인의 성실함과 성심을 인정받아 지금의 노선생님 불화반으로도 인연이 닿게 되어 끊임없이 불화를 사랑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림 선생님은 그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참 많은 핵인싸 젊은 할모니인데 나도 그런 사람들과 같은 이유로 그를 좋아하고 따른다. 반대로 그림 선생님이 왜 나를 신뢰하는지는 여전히 잘 모르겠다. 내가 그림 감각이 없는 건 아지만 사실 성실하고는 조금 거리 있고 턱 받치고 놀다가 내켜야 그림 하는 한량 타입인데 뭔가 착오가 있으신 듯하다. 알고도 고쳐 쓰시고 싶으신지도 모른다.

하여간 선생님의 쁘띠한 제자가 되기로 노선을 결정했고 나 스스로의 노선도 결정했으니 이제 밤에도 꾸역꾸역  습화하는데 오늘은 지금부터 졸립다. . 약 먹어서 그런가 보다. 그래도 해야 다. 밤에 엎드려서 꿇어앉다시피 체력을 소모하는데도 살은 안 빠진다. 그래도 해야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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