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따따따 Feb 17. 2024

Old

고향집 부모님은 TV가 안되면 내게 전화한다.

젊은 세대들은 휴대폰 하나만 조지면 되지만 촌로들에게는 TV가 모든 것이다.

고려거란전쟁도 봐야 되고 태조 왕건도 또 봐야 되고 미스터트롯도 다시 봐야 되는데 TV가 안 되면 그만한 곤란이 없다.

결혼 전까지 부모님과 살면서 집안 온갖 잡다한 담당은 나였는데 여적 변하지 않았다. 여전히 TV 안 나오면 나한테 전화하니까 밤에 부모님께 전화 오면 거의 백의 확률로 ㅇㅇ야! TV가 안된다!이다. 놀라서 받았구만 정작 그러면 내가 무슨 엔지니어 납셨냐고 짜증 나고 허탈하기도 한데 안쓰럽기도 하다. 대개는 리모컨 버튼 하나만 조작하면 되는걸 그게 어려운 세대라고 생각하니 그렇다.


오늘은 시어머니가 전화하셨다.

ㅇㅇ야... TV가 안된다야~ㅎㅎ 하신다. 

남편이 태를 보려고 영상통화를 하는 거 까진 좋은데 자기가 원하는 대로 지시수행을 빨리 못하는 늙은 자기 엄마한테 계속 신경질을 내고 자빠졌다. 남편한텐 이런 일이 몹시 생소한 것이다. 10대 때부터 대처에 나와 살았고 부모님과는 항상 개별적인 생활에 부모님이 늙는지 집은 어떻게 돌아가는지 관심밖의 일이었으니까 이런 걸로 전화하는 게 생소한 거 같았다. 웃기기도 하고 한심하기도 해서 전화통을 뺏었다. 그냥 내일 가서 직접 보겠노라 하고 나는 알바 있어 못 가니까 TV 고치고 아들 편에 새 김치나 잔뜩 싸달라고 했다.  고지식한 남편이 자기 고향집 TV 잘 손볼는지 모르겠다.


나도 점점 나보다 어린 세대들이 향유하는 신문물은 모른다. 결국은 아들한테 만날 전화하던가 몰라서 밥도 못 사 먹는 늙어빠진 노친네가 되면 어쩌지 싶기도 하다.

사람 귀찮지 않게 나이 들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그렇다고 고향 노인들 시가 노인들이 귀찮은 건 아니다. 짜증살짜쿵 나는데 안타까운 거 보니 나도 확실히 마흔이 넘은 게 주효하구나 싶긴 하다. 30대 때만 해도 지독하게 귀찮았기 때문이다ㅎㅎ.

작가의 이전글 일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