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듬더듬
저녁 먹고도 또 식탁에서 혼자 주섬주섬 군것질을 하는데 바닥에서 무언가 검은 것이 나를 현혹했다.
이럴때 내 눈을 의심하게 되지만 틀림없다.
히익! 이런ㅅ발 바퀴벌레야!!
일하면서 바퀴 한번 안 잡아본 건 아니지만 이건 곤란하다.여긴 집이잖아..남편이 살던 이 아파트는 오래되긴 했으나 바퀴 본 적이 없어서 없는 줄 알았는데..
안녕?그래 이집에선 처음이지? 하듯이 의기양양한 손가락 한마디 반만한 굵고 싱싱한 놈이 거실을 배회했다.
이야 저 시발놈을 내 선에선 도저히 해결 못하겠다 싶어서 초저녁부터 잠이 든 남편을 마구 깨웠다.
여..여보,바퀴,바퀴가,큰 바퀴벌레가 나왔어!
자다가 영문도 모르고 숨 넘어갈듯 놀라며 깬 남편은 비틀거리며 어?어?하며 등 떠밀려 나가더니 거실에서 놈과 조우했다.
잠이 안 깬 탓인지 계속 바퀴 꽁무니만 따라다니며 휴지,휴지 소리만 반복하는 게 저거 저거 저러다 놓치지 싶었는데 휴지만 한 뭉치나 들고 있다가 식탁 근처에서 허우적대더니만, 급기야 냉장고 밑으로 바퀴가 들어갔단다.
...
일 때문에 모자란 잠 자는걸 깨운게 좀 미안해서 크게 투덜대진 못했지만 혼자 구시렁대니까 남편은 아이고 됐고 냉장고 밑에 들어갔으니 우리도 들어가서 잠이나 자자며 침대에 벌렁 눕더니 꿀잠이 든다. 저 굵은 놈을 두고 잠이 오냐며 닦아세웠지만 웃으면서 잘 잤다.
나는 이후론 손에 아무것도 잡히지 않아 소파에 앉아서 냉장고 아래만 쳐다보다가 깜빡 잠이 든 모양이다.
에라 늦었으니 자야지 싶어 양치하려고 일어서는데 천장 몰딩 부근에서 검은 것이 반갑게 더듬이를 흔든다. 다시 남편을 마구 깨워서 혼곤한 그 손에 이번엔 홈키파를 쥐였더니 반쯤 감긴 눈으로 멀찌감치 서서 영혼 없이 놈을 향해 뿌려댄다.
오빠!가까이서 뿌려!하니 이게 다년간의 전략이며 일부러 그러는거라고 저놈이 취할때까지 기다리란다. 내보기엔 자기가 취하겠구만..
다행히 취하긴했는지 바닥에 툭 떨어지니까 남편도 힘겹게 꿈틀대며 쭈그리더니 놈을 휴지뭉치로 잡아서 마무리했다.
자기 바퀴 잘 잡지 않느냐며 자화자찬하더니 다시 눕자마자 시체처럼 잠이 들었다.
고맙다~~잡아줘서.못 잡았으면 평생 원망했을거야..이젠 나도 자야지.
브런치에 글쓰고 자야지..
아침에 이중삼중으로 싼 대물의 시신을 남편 손에 잘 유기하라고 들려보내며 출근시켰다.
바퀴벌레가 호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