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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따따따 Jun 03. 2024

된장찌개

고향집에선 된장찌개를 채소 식감이 살아 있도록 바르르 끓여서 프레시한 상태로 바로 먹는다. 지금처럼 해가 길부모님과 할머니가 일하고 늦게 들어오니까 고향집 살 때는 내가 된장찌개를 자주 끓였다. 엄마가 끓이는 방식대로 똑같이 끓였다. 된장찌개 별거 있나. 물에 멸치 우리고 채소랑 된장 넣으면 끝이다. 소고기나 미원 좀 넣으면 더 낫고ㅎ 


벌써 17년 전쯤인데 오빠가 결혼하자마자 올케와 해외 체류한 적이 있었다. 게스트하우스 생활을 청산하고 집을 렌트해서 안정적으로 지내게 되자 막내 외삼촌이 잘 됐다고 나랑 외사촌동생들 묶어서 엄마가 캐리어바퀴가 부서질 정도로 밀어 넣어준 음식보따리를 이고 지고 그 신혼부부네에 다녀온 적이 있다. 지금 사고로는 며느리 입장에서 불가해한 시식구들의 습격인데 이러저러 복잡다단하게 하여간 잘 있다 왔다. 나는 사촌동생들보다 조금 더 있게 되었고 하루는 부부 둘 중 된장찌개가 먹고 싶다고 했는지 뭘 어쨌는지 내가 거기서 된장찌개를 한번 끓였다. 평소 끓이던 방식 그대로 끓였다.

오빠가 된장찌개를 떠먹어보더니 흠칫하며 야. 엄마맛 나는데?엄마가 끓인 거 같아 라고 했다. 올케언니가 먹었는지는 기억이 안 난다. 아, 언니는 당시에 임신 중이었는데 시가 시누가 끓인 시엄마 맛이 나는 지극히 시적 된장찌개가 과연 어떻게 와닿았을까 싶다. 가끔 그때 이야기가 나오면 무조건 대가리를 박고 언니에게 읍소한다. 어휴 미안해라 어휴. 참고로 올케언니가 끓여주는 된장찌개는 올케의 성정처럼 슴슴하고 맑은 맛이다.


작년엔가 통도사 성보박물관을 들렀다가 남편과 애랑 절밑 아무 밥집에나 들어갔다. 지극히 평이한 한식집이었는데 그날따라 된장찌개가 먹고 싶어서 기다렸다가 찌개가 나오자마자 퍼먹었다. 그런데 된장찌개에서 향기가 났다.  그대로 향기 말이다. 뉴판을 봐도 된장에 뭐가 첨가됐다는 이야기는 없다. 럼에도 멀건 찌개 두 그릇이 다 향이 났다. 렇다고 찌개국물에 미친 내가 이걸 버리겠나 싶어 그냥 두 그릇 다 퍼먹었다. 자꾸 퍼먹다 보니 괜찮았다. 나중에 찾아보니 방아잎으로 담은 된장이라 그런 맛이 난 거 같았다. 이렇게 예고 없는 향신채 공격이라니. 그래도 고수만 아니면 괜찮은 거 같다. 가끔 그 별거 없이 향기 나는 방아된장찌개가 생각나는 거 보면 말이다. 


그래서 오늘 나도 된장찌개 끓였다. 초여름답지 않게 물기 없이 쾌청하고 시원한 바람이 부는 것이 갓 끓인 된장찌개 먹으면 좋겠다 싶어서 밥 넣어 먹었다. 다소 개밥 같은 비주얼이지만 요새 개도 이렇게는 안 먹으니 사람이 먹는 맛있는 된장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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