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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따따따 Jul 08. 2024

아버지의 글

팔십 다 된 아버지는 서예를 하신다.

우리 집엔 증조부가 쓰다 남긴 문방사우가 있는데 증조부를 아주 싫어하던 아버지는 어쩐 일인지 내내 그 낡은 도구들은 버리지 않고 지금껏 그 도구로 지방도 쓰고 남겨두고 있었다. 결국은 일흔이 넘어 취미를 시작했다. 면사무소 문화센터 명목으로 영감들끼리 노가리 까고 밥 묵고 커피 묵고 붓글 쓰고 그냥 그러는 거다. 사실 아버지는 글씨가 좋은 사람이다. 무의욕에 부정적인 성향과 게으름에 방구석 여포기질이 콜라보되어 이도저도 아닌 사람으로 한평생을 살았지만 글은 좋다. 주체 못 하는 입과는 달리 글씨는 예나 지금이나 대단히 멋들어지고 문장도 제법 정돈하여 쓰는 사람인데 오빠는 그 좋은 점을 쏙 뽑아먹은 거 같고 나는 그냥 슬쩍 묻은듯하다. 아버지는 젊었을 때 면서기 공짜로 시켜준대도 삐대면서 거절하고 걍 별 볼 일 없는 농군으로 늙었는데 가끔은 아버지도 좀 더 안정된 가정에서 성장했으면 더 괜찮은 사람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들 때도 있다. 뭐 이젠 끝이지는.

하여간 이번에 집에 가니 붓끝이 상해 글씨가 안된다며 노친네가 붓을 구해달란다. 요새 붓값도 많이 올랐고 글씨붓은 꽤 비쌌지만 필방에서 주문해다 주었다.

아주 긴 시간을 돌고 돌고 돌아서 아버지도 한 번쯤은 하고 싶은 걸 하는구나 싶은 생각에 흔쾌히 붓을 샀다. 영감 돈 안 내 삐리고 쫌 하네 싶으면 그림방 옆의 무형유산할배붓을 사다 줄 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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