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숭아는 안 좋아한다면서 복숭아조림은 잘도 먹는다.
할머니가 만든 복숭아조림을 이십 수년간 먹고 살아왔다. 할머니는 흠이 있던가 무르던가 상품가치가 떨어지는 복숭아가 우환덩어리처럼 남아 굴러다니면 버리지 않고 천도복숭아든 털 있는 복숭아든 모조리 다 깎아서 설탕을 넣고 조렸다.
할머니는 그걸 복숭아짬(잼?)이라고 했다.
남은 복숭아라서 복숭아짬인가. 그렇다고 하기엔 딸기잼 포도잼도 짬이라고 해서 복숭아잼으로 이해했다. 하여간 그 짬을 나는 오랜 시간 먹어왔다. 주방을 엄마가 주도하고 할머니가 매우 연로한 후에는 만드는 일이 거의 없었는데 세상 하직하기 한두 해 전 오랜만에 만든 복숭아짬을 한번 먹고는 한동안 먹어보질 못했다. 맛이 있고 없고 그냥 엷은 설탕시럽에 복숭아 조린 맛이다. 과일 안 하는 시가에 가니 시할머니도 얻은 복숭아가 썩는 게 아까워 복숭아조림 만들었다고 내놓는다. 정말 오랜만의 조우인데 맛이 똑같다. 복숭아 조린 맛이다. 시가에서 주는 복숭아를 버리는 게 좀 뭣해서 급기야는 나도 조렸다. 날씨의 격동으로 요새 복숭아가 좀 맛이 없어서 복숭아농가에서 출하하는 값은 똥값이다. 안타깝다.
천도로 조리면 더 새콤달콤하지만 털복숭아는 잠잠한 맛이다. 1920~30년대생 레시피보다 나은 현대인의 레시피가 있나 싶어서 좀 찾았지만 다 똑같다. 이건 어차피 복숭아를 처단하는 맛으로 먹는 짬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