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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따따따 Nov 19. 2024

불쌍타

큰할아버지의 딸이면 종고모일 것이다.

큰할아버지는 두 번 혼인했는데 첫 번째 혼인에서 얻은 딸을 증조할머니가 거두었다고 한다. 첫 며느리였을 이름 모를 큰할머니 되는 분은 친정에서 몸을 풀었는데 산후가 좋지 않았는지 딸 낳고 일주일 만에 그만 불귀의 객이 되었고, 시가인 우리 고향집에 연락이 와서 증조할머니가 갓난 것을 싸서 보듬어 데려왔다고 했다. 내게 종고모인 그 딸은 할매 젖을 먹으며 내내 본가에서 성장했고 시집도 일찍 갔다고 했다. 어린 내가 기억하는 그분은 외모도 피부도 퍽 별로에다 그리 영민하지도 않아 썩 귀여움 받았을 것 같진 않은 사람이었다. 가끔 우리 집에 와서 내게도 밥 좀 달라고 서슴없이 이야기하고 두 그릇씩 먹었는데 어린 내 눈에는 미련해 보이기까지 했다. 투덜대며 엄마나 할머니한테 이야기하면 '그 고모는 원래 밥을 많이 먹는다. 에구 염치도 없이~ 그래도 달라는 대로 잘 주었다 '라고 쯧 혀를 찼다. 저런 사연이 있는 줄은 몰랐지. 가엾은 사람이지 않은가 말이다. 태어난 지 일주일 만에 엄마와 이별하고 그 큰 촌집에 북적대는 사람들 사이에서 따뜻한 손길이라곤 본인 할머니 한 명뿐 혼자 이리 치이고 저리 차였을 귀염성 없는 여아가 떠오른다. 증조할머니만은 손수 포대기에 싸 온 손녀가 내내 걸렸는지 항상 불쌍한 우리 ㅇㅇ이 라고 자주 말씀했다고 한다. 내 윗대 어른들은 밥술깨나 뜨는 사람들이었지만 소수 빼고 꽤나 인간미 없고 건조한  지 밖에 모르는  강약약강 숭악한 사람들이 다수였던 것 같다. 그래서 어리숙하고 무지한 우리 할머니도 고생했고 총명한 우리 엄마는 더 고생했다. 종고모라고 행복했을 거 같지가 않다. 어쨌든 그분은 일찍 돌아가셨다.

우리 할머니가 진드기증후군으로 응급실에 실려가 사경을 헤매다 정신이 조금 들었을 때 눈을 뜨고는 저기 ㅇㅇ이(종고모)가... 저기 ㅇㅇ이 어째 왔는고라고 했다고 고모가 이야기했다. 고모는 할마시 무슨 소리냐고 그 언니는 옛날에 죽었는데 하며 나무랐고 그러곤 2주 있다 할머니는 돌아가셨다. 진짜라면 할머니는 시조카와 함께 저승탐방을 간 것인데 시금치의 시자도 안 먹는 내 세대엔 씨알도 안 먹힐 소리다. 매우 오래전 할머니가 시집에서 종처럼 살 때 또한 그 집에서 에미도 없는 반갑잖은 피붙이로 내내 붙어살았을 종고모와 어떤 인간적 친분이 있었는지는 알 수 없다. 둘 다 평생 외롭고 가여웠지만 그걸 알았는지 몰랐는지 모를 사람들이긴 했다. 갑자기 불쌍한 마음이 들어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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