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5세 시할머니는 기력이 예전만 못하시지만 어째 시가에서 여전히 유일하게 닭 잡는 현역이다. 청계 수탉이 많으면 개체수를 조절하려고(?) 시아버지는 시할머니에게 수탉을 한두 마리씩 맡겼다. 좀 더 기력 좋을 땐 한 번에 두 마리도 목을 쳐서 잡았지만 이제는 방법을 바꿔 한번에 한 마리만. 단, 가히 어쌔신급으로 숨통이 조인 청계 수탉은 꼬꼬 소리 한번 내지도 못하고 푸드덕 한 번에 시커먼 다리를 쫙 뻗고 눈 꼭 감고 깃털은 홀랑 벗겨진 채로 도마 위에 가지런히 누워 있게 된다. 깔끔한 시할머니 성정대로 닭 잡은 흔적은 하나도 없이 깔끔하게 치우고 깨끗이 다듬은 닭을 봉지에 싸서 너희 시아버지 갖다 드리라며 고이 안겨준다. 시아버지든 시어머니든 시고모든 우리 남편이나 시동생도 다들 닭 잡는 건 질색하는데 시할머니가 잡은 닭은 잘도 짭짭 먹는다. 시할머니는 닭털을 한창 뽑으시면서 이놈의거 이제 힘이 빠져 닭도 못 잡겠구나 며느리 너 닭을 잡겠느냐고 나한테 물으셨다. 잡을 수 있을 리가 있겠심니까...
닭 잡는 시할머니는 전혀 야만스럽지도 탐욕스럽지도 않다. 육고기를 즐기지 않는 이 옛날 사람은 오로지 자신의 자식들을 먹이기 위해 그 어떤 감정도 싣지 않고 기꺼이 수탉의 숨을 끊는다. 극히 실용적인 카니발이다. 반세기도 더 전부터 그렇게 닭을 잡고 솥에 익혔을 젊은 여자가 겹쳐진다. 시할머니는 가부장제에서 살아온 옛날 사람이지만 자기 주관이 뚜렷하고 삶에 대한 확고함이 명징하다. 나는 닭을 정말 좋아하는데(먹는 거 × 보는 거ㅇ) 닭 잡는 시할머니가 소스라치긴커녕 가끔 존경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