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빙수 Sep 19. 2023

여름상 이야기

길게 드리우는 햇볕이 남은 맛

멈춰두었던 일을 다시 시작하는 것은 여간 성가신 일이 아니다. 오랜만에 클라이밍을 하려니 그간 작아져버린 광배근을 어찌 쓰는지도 모르겠고, 홀드를 향해 제대로 받을 뻗어보는데 본디 내 몸일 텐데도 어쩜 이렇게 어긋나는 건지. 몸을 움직일 때마다 녹슨 철 부품들이 마찰하는 소리가 나는 것만 같다. 타이핑을 하고 있는 이 손가락들에서도 말이다.


몇 년 만에 찾아온 엘 니뇨 때문인지, 혹은 악화되는 기후 변화 때문인지, 유난히 비가 많이 오고 흐린 겨울과 봄이었다. 나의 8년간의 의대 생활의 마지막, 의사가 되기 위한 지원 과정 또한 따스함과 빛이 보이지 않는 불확실과 불안, 계속되는 안개와 같았다.


많은 이들의 응원, 지도의 비호 아래 감사하게도 내가 고른 첫 순위 병원에서 Resident (전공의)가 되었다. 많은 축하를 받았고 내심 이렇게 될 것 같기도 했으나 반면에 이게 되네, 라는 생각도 들었다. 지난 모든 걱정과 불안은 잘 구워진 머랭 쿠키처럼 엄지와 검지 사이에서 가볍게 부스러졌다. 결과론이란 이렇게 성의 없고, 하찮은 것이다.


그렇게 나는 의사가 되었다. 이제 나는 "닥터 빙"으로서 환자와 이야기를 나누고, 입원을 시키고, 약을 처방하고, 오밤중 혈관에 카테터를 삽입하고, 초음파로 심장을 보며 계획을 세울 수 있게 되었다. 그런 일을 하면서 돈을 받는다니, 제법 뿌듯하고 멋진 일이었다.


여름도 드디어 찾아왔다. 뜨거운 햇빛, 바삭하게 마르는 수건, 내가 사랑하는 캘리포니아의 여름 말이다. 새벽 네 시 반, 자전거를 타고 중환자실로 출근하는 길엔 그 어떤 차, 인간, 빨간 신호도 나를 방해하지 않았다. 다만, 나보다 훨씬 부지런한 여름 해가 동쪽 하늘을 밝히기 시작하려면 온 동네 새들이 조잘거렸으며, 아직 지지 않은 봄꽃의 향기가 잠잠한 새벽 공기 속에 안겨 있었다. 인간의 무서움을 아직 모르는 아가 다람쥐들과 너구리, 고양이, 코요테들이 눈을 마주쳐 주었다. 페달을 밟을 때마다 찬란하고 눈부시며 뜨거운 햇빛은 내 심장의 역할을 도드라지도록 해 주었다.


바쁘긴 했다. 하루에 열넷, 열다섯 시간 일하는 것은 당연했다. 집에 오면 밥 먹고, 씻고, 자고, 그리고 네다섯 시간 있다 다시 하루를 시작하고, 그것이 일상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꽤 신이 나 있었다.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배우고, 환자의 치료 과정의 보다 큰 부분이 될 수 있음에 즐거웠다.


마지막으로 이런 기분이 언제였을까. 나는 불안하다 느끼지 않았다.



막힌 것만 같은 숨을 가까스로 들이마시며 잠에서 깼다. 아이패드의 홈 버튼을 눌러보니 세시 사십 오분이었다. 아, 정말이지 왜 고작 45분을 남겨두고 잠에서 깬 걸까. 그러나 깨서 다행이었다. 무언가 무서운 꿈이었던 것 같으나 이미 잊어버렸다. 얇은 여름 이불은 보드랍고도 시원했다. 다리로 침대 시트를 훑으니 시원하고 상쾌하게 건조했다. 안방 창문에 옆 선반에 매달린 작은 선풍기의 모터 소리, 그리고 옆집 에어컨 실외기의 소리는 미묘하게 편안했다. 나의 왼쪽을 돌아보니 아내는 새근새근, 깊고 느린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며 자고 있다. 아내에게선 늘 그렇듯 포근하고 달콤한 냄새가 난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그랬다. 은은한, 채도가 높지 않은 분홍빛 냄새를 그는 늘 가지고 있었다. 왜인지 웃음이 났다. 의외로 나는 다시 잠에 들었다. 45분 후 일어나 아내가 준비해 놓은 죽을 데워 먹고, 커피를 내려 마시고, 힘차게 떠오르는 태양을 향해, 병원을 향해 페달을 밟았다. 제법 개운했다.

여름 저녁은 길다. 맹렬했던, 샛노란 한낮의 더위가 한풀 꺾이고 조금은 푸르러진 빛이 집 창문으로 흘러든다. 그러나 아직 남아있는 열기는 매일같이 국수를 땡기게 한다. 무엇이 먹고 싶냐는 아내의 질문이 한동안 사라진 건, 어차피 내 답변은 '국수'였기 때문이다.

매콤 달콤한 비빔국수, 구수한 들기름 막국수, 그리고 양고기 향 가득한 보즈 (Бууз). 아내의 냉동고엔 무엇이 엄청나게 많다. 국수를 준비하다 말고 옷방 구석 냉동고를 열어 한동안 버석버석거리더니, 보즈를 꺼내왔다. 

'그건 언제 한 거지?' 

'음 저번에?'

'그렇군'

아내의 양자역학적 냉동고다. 가끔은 없을 때도 있지만 거의 주로 무언가가 있어, 항상 풍요로운 식사를 할 수 있게 해 준다. 아내 말로는 과거의 자신이 지금의 자신을 먹여 살린다는데, 맞는 말이다. 과거의 나 또한 이래저래 열심히 살았으니 아내와, 고양이 셋과 함께 꽤 편안하고 즐겁게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미래의 나도 지금의 나의 덕을 볼 수 있도록 계속 열심히 해야겠다고 새삼 다짐하곤 한다.

'어젯밤에 기억은 안 나는데 무서운 꿈을 꿔서 깼어.'

'아이구 어떡해!'

'근데 이불이 너무 시원하고 선풍기 소리가 좋고 녀미가 옆에 쿨쿨 자고 있어서 너무 평안해지더라구. 다시 잤지 뭐.'

'나도 그제 밤에 이상한 꿈을 꿔서 깼는데 옆에 너가 있어서 정말 다행이라 생각했어.'

'그지,'

'그지.'


분명 내가 느낄 수 있는 마음속엔 불안이 존재하지 않았는데, 무의식엔 여전히 불안을 자리 잡고 있어 꿈에 나타난 것일까? 혹은 그저 랜덤하게 생겨나는 뇌의 전기적 신호들의 집합체일 뿐일까. 때론 생각한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절대로 벗어날 수 없는 죽음에 대한 공포, 혹은 불안, 혹은 어떤 형태로건의 인지, 감정, 사고를 가지고 있으며, 이것들이 무의식의 발현에 영향을 주는 것이 아닐까.


어찌 되었건 꿈이 가져다준 두려움에 대해 아주 가까운 존재와 얘기를 통해 풀어내고 서로를 다독거릴 수 있음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그건 그렇고, 양고기 육즙 가득한 보즈와 매끄럽고 고소함에 알싸한 파 향, 그리고 짭짤하고 바삭한 김이 더해진 들기름 막국수, 상큼하고 생각보다 아주 매콤하며 달콤한 양파가 올려진 비빔국수, 그렇게 우리의 저녁 식사는 '이게 제일 맛있다!'라고 빙글빙글 돌려가며 먹는 그런 시간이었다.

콩국수와 김치전. 언제부터인지 콩국수가 없는 여름은 존재할 수 없었다.

비빔국수, 대패 삼겹살.

우리 집 새 식구가 된 북실북실하면서 새까만 아가 고양이 달래는 눈치 하나 가지고 있지 않아 식사하는 테이블 위 항상 훼방을 놓는다. 이렇게까지 스포일해도 되는 걸까 싶지만 고양이는 그래도 되는 것 같다. 우리는 귀여워서 사실 어쩔 줄을 모른다.

여름은 면의 계절이다.


아내는 늘 나의 쉬는 날이 언제인지 묻는다. Wards (병동)이나 ICU (중환자실)을 돌 때면 하루 12-14시간씩 일하며 여드레마다 한 번 쉬는 것이 다반사고, 언젠간 딱 열흘 만에 하루 쉰 적도 있었다. 물론 이런 로테이션들 사이에 널널한 로테이션을 섞어두는 등 옛날보다 의료 시스템이 훨씬 인간적으로 바뀌어 전반적으론 지속가능하다고 느끼지만, 피곤할 준비를 해야 할 순간들이 분명 존재한다. 레지던시를 시작하고 바쁘고 힘들겠다면서 더 식사에 신경 써주는 아내지만, 그래서인지 쉬는 날 전 저녁이면 더더욱 힘을 주곤 한다. 길게 연속으로 일한 주간의 끝에 나는 맛있는 것을 먹을 생각에, 그리고 다음 날 쉬거나 놀 생각에 끝까지 정신을 부여잡고 일을 할 수 있게 된다. 

언젠가부터 집에서 만들어 먹게 된 라비올리를 비롯한 여러 파스타들. 아내와 나의 취향에 딱 맞춰 만들어낸 라비올리들은 당연하게도 우리 취향에 너무나 딱 맞게 된다. 그리고 남은 라비올리들은 아내의 냉동고에 들어가 양자화되어 또 어느 미래에 우리를 기쁘게 먹여 살릴 것이다.

간 소고기와 치즈가 잔뜩 들어간 라비올리, 크림소스. 마당에 있는 향긋한 바질과, 새콤하고 쫀득한 말린 토마토. 예전만큼 크림소스를 잔뜩 먹지는 못하지만, 내가 파스타를 좋아하게 된 근원이라는 점은 여전하다. 그 풍부하고 고소한 맛에 레드 와인이 참 잘 어울린다. 생면 특유의 향과 언제나 폭발적인 소고기와 치즈의 맛, 라비올리는 정말 각별한 음식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실패할 수 없는 스테이크, 수많은 야채들. 소고기야 당연히 맛있지만 그 기름에 구워진 야채들이 별미라고 늘 생각한다. 향긋함만 남은 양파와 마늘, 아직도 아린 할라페뇨, 지글지글 구워진 옥수수, 달달한 양배추, 내가 사랑하는 감자.


내가 라끌렛을 처음 먹어본 것은 Cellador 이라는 브루어리에서였다. 내가 세상에서 두 번째로 좋아하는 sour ale 전문 브루어리로, 안타깝게도 지금은 문을 닫았으나, 다시 열기 위해 노력 중이라고 한다. 라끌렛은 스위스에 기원을 둔 치즈 요리로, 재료를 빠트려 먹는 퐁듀와는 달리, 커다란 치즈 휠을 아주 뜨거운 칼로 긁어내어 순간적으로 녹은 치즈를 각종 야채, 고기, 해산물 등에 올려 먹는 요리였다. 당연히 맛있었으나, 아내와 -- 그의 등에 업혀 -- 내가 집에서 음식을 먹는 이유는 우리가 더 좋아하는 재료들을 더 넣고, 더 우리 입맛에 맞춰 먹고 싶기 때문이다. 뜨거운 칼이 있으면 멋지겠지만, 뜨거운 주물팬을 이용하면 그게 그거 아니겠는가, 하는 '쯔유 대신 국간장 넣어도 되나요?' 와 같은 제멋대로의 대체를 하기로 했다. 다행히 별 일은 없었다.

생새우, 집에서 만든 소세지, 사워도우 빵, 이것저것 치즈, 토마토, 할라페뇨, 단호박, 브로콜리, 버섯, 등등. 꼬릿꼬릿하고 뜨겁게 늘어지는 치즈에 잘 구워진 야채들은 정말 맛있다. 어릴 때는 뭐가 그리 야채가 싫었는지 늘 알 수가 없다.

한국인의 디저트라면 역시 누룽지화된 무언가가 아닐까.

아직까지 치즈와 아이스크림과 크림과 요거트와 우유를 잘 먹을 수 있도록 유당 분해를 잘해주는 몸에게 새삼 감사하며 우리는 끝없이 치즈를 녹여 먹었다. 



쉬는 날 낮엔, 내가 잠만 자느라 아무것도 할 의지가 없는 때가 아니면, 우리는 브런치를 먹었다. 우리가 늘 사랑하는 아텔리스의 크로와상일 때도 있지만, 비교적 최근에 우리는 맛있는 버터가 얼마나 맛있는지에 대해 안타깝게도 알아버리게 되어 정말 '간단하게' 바게트와 버터를 종종 먹곤 한다.

버터의 무서움을 알게 된 건 친한 친구가 나의 레지던시 합격 기념으로 데려가준 프렌치 레스토랑에서 먹어본 버터 때문이었다. 대충 이즈니 버터니, 보르디에 버터니 들어본 적은 있었지만 먹어본 적도 없었다. 거기서 우리가 먹어보게 된 건 Rodolphe Le Meunier의 버터였는데, 얼마나 달콤하고 고소한 지, 너무 깜짝 놀랐다. 우스울 정도로, 그 모든 식사에서 가장 기억에 남았던 것 같다.


다시 언제 그런 버터를 먹어볼까 했는데, 아니 웬걸, 근처에 치즈, 버터 등을 이러한 레스토랑들에 도매하는 업체가 있으며, 소매도 하는 것이 아닌가. Rodolphe Le Meunier은 물론이며, 보르디에의 갖가지 버터를 구비하고 있었고 가격도 250g에 $10 언저리로, 터무니없지 않았다. 버터를 얼마나 먹겠냐며 이 기회에 사보자고 한 우리는, 우리가 얼마나 빨리 버터를 먹을 수 있는지 깨닫고야 말았다. 맙소사.

아내의 살구 바닐라빈 잼

뮈니에르 버터는 정말 가볍고 산뜻하며, 달콤했다. 반면 보르디에 버터는 묵직하고 아주 풍부한 맛을 가졌으며, 빵의 맛을 몇 배로 살려주었다. 그 둘을 오가려니 계속해서 빵을 먹게 되고, 커피를 내리게 되었다. 고작해야 버터와 빵인데, 이렇게나 맛있을 수 있다니.


그러나 사실은 이것이야 말로 중요한 것이다. 밥도 좋은 쌀과, 좋은 물, 그리고 좋은 조리법을 이용하면 훨씬 맛있게 지어지며 밥상을 지배할 수 있다. 한식 문화가 제법 유명해진 요즘, 가끔 병원에서 점심으로 불고기 덮밥이니, 닭강정 덮밥 등을 제공할 때가 있는데, 고기나 야채는 나쁘지 않으나 밥이 떡지거나 말라 정말 안타까울 때가 많이 있다. 방앗간 참기름, 고춧가루가 맛있는 것처럼, 잘 지은 밥이 맛있는 것처럼, 질 좋은 참치가 맛있는 것처럼, 이렇게 정성을 들인 버터 또한 존재하며 훌륭한 양식 밥상(?)의 근간이 되는 것일 테다.


병원에서 다양한 환자와 질병을 만나면서, 나와 같은 수련 중인 의사들은 'bread and butter' 케이스들을 많이 맡는다. 내게 생소한 숙어였는데, 아주 기본적인 케이스들을 일컫는 말이었다. 폐렴, 급성 심부전, 패혈증, 당뇨 관련 골수염 등, 어떤 의사던 당연히 경험하게 되며, 치료할 수 있어야 하는 그런 질환들 말이다. 아주 근본적인 것부터 차근차근 배워나가야 하는 것은 삶의 모든 부분들에 해당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맛있는 밥에서 한식 밥상이 시작되듯, 맛있는 빵과 버터에서 양식이 시작되는 것이다.

달래

사워도우 베이킹 역사의 큰 부분을 차지하는 Tartine bakery의 리코타 토스트에 영향을 받아 아내가 만든 토스트. 가볍고 달콤하며 고소한 휘핑된 리코타에 달콤 상콤한 과일들이 너무 귀엽고 포근한 맛을 만들어내었다.



어릴 때부터 얼마나 모밀을 좋아했는지, 초여름부터 가을의 느지막한 자락까지, 동네 '미소야'에 얼마나 자주 들렀는지 모른다. 짭짤하고 달콤한 쯔유에 화하고 알싸한 무와 파 잔뜩, 고소한 김, 그리고 씁쓸한 메밀 면. 후루룩 한 젓가락씩 빨아들일 때마다 더위가 한 모금 가시는 느낌이었다.

모밀과 닭고기 파 구이.

모밀과 애호박 만두. 애호박의 고소함과 달콤함, 그리고 고추의 매콤함, 쫀득한 만두피가 너무나 잘 어울렸다.



사실 병원에서 일하는 시간은 순식간에 지나간다. 너무나 바쁘고 할 것이 많아서, 가만히 앉아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 거의 없다. 그렇게 하루는 현상적으로 지나가, 어떤 하루였는지, 무슨 일이 일어났는 지 되새기고, 사고하며, 처리하는 데 시간이 좀 걸린다. 집에 도착해 물 한 잔 마시고, 샤워를 하고, 아내의 저녁상 앞에 앉았을 때야 머리가, 혹은 마음이 움직이는 것이다. 내가 말문을 열 때까지 아내는 가만히 식기를 건네주고, 밥을 떠준다.

구운 소고기와 야채, 감자튀김, 아히 (Aji) 소스. 직관적이고 폭발적인 맛들의 조합이다.

가끔은 나도 의학에 대한 열정이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곤 한다. 처음부터 끝까지 긴급 투석을 위해 central line (정맥관)을 삽입했을 때라던지, 환자에게 감사받는다던지, 윗사람 의사들에게 칭찬받는다던지, 자신의 줄기세포를 이용해 혈액암을 치료하는 과정에 대해 배운다던지 할 때 말이다. 아내는 잠잠히 듣고 있다가 나를 기특히 여겨주고, 같이 뿌듯함을 나누어준다. 의사가 되기를 잘했다고 생각을 한다.

내가 병원에 나가 있는 동안 아내는 도예를 하느라 정말 바쁘게 하루, 하루를 보내고 있다. 멋진 파도를 닮은 이 접시는 아내의 시그니쳐 작품 중 하나다. 삶의 무료함을 아내는 이렇게 자잘한 듯 숭고한 아름다움으로 승화시킨다. 나는 그런 부분에 있어 아내를 존경한다.

아보카도 명란 밥


그런가 하면, 너무 괴롭고, 너무 허무해서 마음이 바스러질 것 같을 때도 있다. 환자에게 고통을 주면서 시술에 실패할 때라던지, 아무리 모든 것을 다 해도 환자가 세상을 떠날 때라던지, 특히나 갓난 의사로서 내가 대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전혀 모르겠어 내일 출근하고 싶지 않을 때가 분명히 있다. 그것은 그 누구도 어찌해줄 수 없는, 내가 짊어지고 가야 할 무게다.


아내는 똑같이 맛있는 밥을 해 준다. 피곤할 텐데 설거지도 하지 말라고 한다. 나는 한참 푸념, 하소연을 하고, 그는 나를 다독여 준다. 그렇게 나는 마음을 추스르고, 다시 환자를 보러 간다. 내가 더 잘할 수 있는 건 더 잘해 보고, 그러나 아무리 해도 안 되는 것들도 있을 것이라고 마음속으로 되뇐다.

아내가 담근 막걸리, 빈대떡, 양자역학적 냉동고에서 나온 순대.


ICU에서 아주 자주 일어나는 대화는 'goals of care' 즉 치료의 방향성에 관한 것이다. 아주 아픈 환자들에게 있어 어디까지 의학적인 치료를 할 것인지에 관한 대화다. 만일 심장이 멈춘다면 심폐소생술을 할 것인지, 환자가 나아질 기미가 없어도 계속하여 혈압 승강제나 호흡기, 연속적 투석 등의 의료적 행위를 할 것인지, 아니면 환자의 편안함만에 집중하고, 지속된 의료 행위를 중단할 것인지. 마저 남은 삶의 계획에 대해서 말이다. 누구나에겐 언젠가 일어날 일인데, 이에 대해 생각하는 사람은 정말 적다. 물론 나 자신도 잘하지 않으려 한다. 


같이 일하던 레지던트가 말했다. 

'나는 환자나 보호자와 죽음에 대해 얘기하는 게 싫어. 그건 내가 환자를 너무 소중히 여겨서 (care)가 아닐까?'

엄청난 인류애를 가졌던, 나르시시즘을 가졌던, 둘 다건 나는 동의할 수는 없었다.

'글쎄, 그럴 수도 있겠지만, 죽음이란 주제가 네가 불편하거나 두려운 게 아닐까?' 

'죽음은 나쁜걸.'

'죽음은 죽음이란 현상인 것 같아. 그것에 좋음과 나쁨이란 가치를 부여하는 것은 관찰자일 뿐이고. 남은 자들은 당연히 떠난 환자를, 상상도 못 할 만큼 그리워하겠지.'

나는 계속 얘기했다.

'나도 그 어느 환자도 안 죽고, 다시 건강해져서 하하 호호하면 좋겠어. 그렇지만 모든 것들을 종합해 보면 그게 안 될 확률이 굉장히 높잖아? 그렇다면 계속해서 힘들고 부질없는 치료를 해서 '삶'을 강제적으로 늘리는 게 의미가 있을까. 반면으로 그렇게 강제적인 연명을 하는 것이 나쁘냐고만 하면 그것도 모르겠어'

과연 죽음은 나쁜 것일까. 세상에 기적은 존재하는 것일까. 이 어쩔 수 없는 죽음에 대한 고민이, 결국 나를 가끔씩 밤에 깨게 하는 것일까, 계속 생각했다.

'나도 잘은 모르겠는데, 적어도 이 어려운 대화를 환자와 환자 보호자와 함께 해주려는 노력은 해 줘야 하는 게 아니겠어?'

그는 말이 없었고 우리는 곧 라운딩을 하기 시작했다. '체온은 35도, 혈압은 승강제 3개 상태로 평균 80...'


어떤 가족은 환자가 평안하게 떠날 수 있도록 해 준다. 누군가는 끝까지, 의학적으로는 의미가 없으나 모든 것을 유지하다가, 환자가 보이는 고통은 없이 떠나게 해 준다. 또 누군가는, 의학적으로 의미 없는 모든 것을 유지하다가, 환자들이 마지막 심박까지 고통에 차 있을 때까지 있다가야 보내준다. 그 연속적 스펙트럼에서 무엇이 윤리적으로 옳은지, 나는 아직 알 수 없다. 아니, 알게 될 수 있을까?

'청와대 삼계탕'. 잣을 포함한 견과류, 닭, 누룽지.


아내는 이런 힘든 이야기들도, 차분히 잘 들어주곤 한다. 분명히 아주, 아주 힘든 이야기일 텐데도 말이다. 그 이야기 끝에 그는 말한다. 나보고 오래 살라고. 많이 눈물이 날 것 같지만, 나도 당신에게도 오래 살라고 말한다. 그러면 뭔가 웃기고, 슬프며 웃음이 난다. 비극과 희극은 한 끗 차 아니겠는가.


정말, 정말 고소하고 따뜻하며 부드러운, 소위 '청와대 삼계탕' 한 국자를 푸짐하게 뜬 후, 한 숟갈 먹으면 그게 다 뭔가 싶다. 너무 맛있고, 포근하며, 보호받는 것 같다. 그 순간만큼은 영원히 살 것만 같은 기분이다.


'삶은 너무 슬퍼. 그래서 이렇게 작고 많은 예쁜 것들로 채워 넣지 않으면 버틸 수 없을 거야.'

아내가 말했다.


나는 동의한다. 삶은 슬프나, 너무나 아름답다. 



모처럼 이 주 연속으로 주말 모두 쉬었다. 맙소사 무슨 일이야. 서핑도 하고, 클라이밍도 많이 하고, 데이트도 할 계획이었는데 토요일, 일요일, 토요일, 일요일, 모두 잠만 잤다. 분명 자정에 잤는데 일어나니 오후 한 시가 넘었다. '신생아처럼 잤다'라고 아내는 평했다. 이렇게까지 피곤할 일인지, 혹은 우울증의 전조인지 알 수 없었으나, 되돌아보니 정말 피곤했던 것 같긴 하다.

아침에, 아니 오후에 일어나니 아내는 이미 도예 공방에 가고 없다. 이렇게 잠을 잔 게 또 어이가 없어서 멍하니 주변을 둘러보았다. 식탁 위엔 뭔가가 있었다. 특선 샌드위치였다. 닭가슴살에 별의별 야채들이 한가득 담겨 있었다. 어찌나 맛있던지. 그 와중에 밤새 못 보았다고 달래가 심한 어리광을 부렸다. 그 부숭부숭한 털에 할라페뇨 피클이 묻지 않도록 묘기를 부리면서 이 맛있는 샌드위치를 먹어야 했다. 모처럼, 이 에티오피아 커피는 잘 내려져서 블루베리와 크림의 향이 도드라졌다. 깔려 있는 식탁보가 촌스러운 듯 너무 아름다웠다.


또 한 번 삶은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슬픈 구석이 많지만, 그 이상으로 아름다움으로 우리 모두의 삶을 채워 주는 아내에게 새삼 너무나 고마웠다.

달래.

매거진의 이전글 아텔리세 이야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