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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빙수 Jan 18. 2020

양지, 차돌박이 이야기

사실은 어찌보면 코스트코 이야기

매일같이 열정과 노력을 담아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내는 아내의 모습을 보면서 나는 늘 이 사람에게 조금 더 좋은 도구와 재료를 쥐어줄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것이 현실이 되어 그가 조금 더 편하게, 신이 나게 요리를 하는 모습, 혹은 내 예상을 한참 벗어나도록 그의 음식 세계가 넓어져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아주 뿌듯한 일이다.


코스트코에 갈 때마다 나의 기분은 조금 복잡하다. 좋은 품질의 물건들을 꽤 합리적인 가격으로 판매할 때가 있어 유용하지만, 정말로 자본주의 그 자체를 대변하듯, 불특정다수의 사람들이 모여 산더미처럼 머핀이나 과자, 과포장된 공산품 등을 구매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려면 왠지 찝찝한 기분이 들곤 한다. 그 중 한 명인 내 자신이 불편한 것인지도 모른다. 어쨌건 우리가 요긴하게 쓰는 물건들이 있어 우리는 코스트코를 종종 이용하곤 한다. 


고양이 모래를 사러 갔던 어떤 날, 헹켈 칼 부스에서 행사를 하고 있었다. 유명한 헹켈 '쌍둥이 칼' 중에서도 제대로 쌍둥이 문양이 그려진 칼들. 지금 집에서 쓰는 칼들이 망가진 것은 아니지만, 내가 혼자 자리를 잡을 때 저렴하게 구매한 것이라 쉽게 무뎌지곤 해서 야채나 고기를 손질할 때마다 아내가 칼을 갈아야만 했다. 그리하여 칼을 바꿀까, 말까 고민을 하던 참에 이러한 기회를 만난 것이었다.


인도, 혹은 파키스탄 ethnicity(민족)인 것 같은 직원이 아주 신나게 홍보를 하고 있었다. 모든 칼을 내어놓고 한 번씩 써 보게 해 주고 있었는데, 이에 우리는 마법처럼 이끌려 늘 관심이 있던 중식도, 그리고 채소, 생선, 고기 모두 정말 얇게, 투명할 정도로 썰어낼 수 있도록 얇게 휘어지는 필렛용 칼을 사용하여 보았다. 묵직하고 담담하게 채소를 썰어갔던 중식도, 그리고 평범한 생 토마토의 껍질만도 발라내어 썰 수 있던 필렛 칼. 정말 고민이 많이 되었으나, 아무래도 부담되는 가격에 우리는 넘기기로 했다. '돌아보고 다시 올게요!'라는 말과 함께.


그러나 그렇게 한참 뒤로 미루어질까 했던 칼 구매는 결국 그 다음날 행해졌다. 왠지 자꾸 아른아른하고, 이 칼로 인해 아내가 요리를 하며 느끼는 만족감이 높아질 것 같았다. 그래서 그 다음날 혼자 코스트코를 찾았다. 홍보하던 직원이 그 직원이 바로 나를 알아보곤 '브라더!'하고 부르며 역시나 다시 올 줄 알았다며 환하게 반겨주며 악수까지 했다. 뭐, 딱 그 날이 행사 마지막 날이었고, 사면 한참 쓰겠지 싶어 처음엔 아주 특수한 필렛용 칼만 살까 하다가, 결국엔 큰 맘 먹고 중식도까지 사기로 했다. 자그마치 $250, 캐셔가 아내가 칼 사오라고 시켰냐고 물었다. 웃으며 고개를 젓자 훌륭한 남편이라며 치켜세우는 것에 왠지 기분이 좋기도 했다.

아내가 그 날 저녁 중식도로 야채를 썰면서 그 안정감과 무게감, 그리고 잘 썰림에 만족해 하였다. 한편, 이 필렛용 칼은 어디에 써야 하나 하는 기분 좋은 고민을 시작했다.


그러다 어느 날, 아내가 유트브에서 영상을 보았다. 코스트코에 15파운드 (7kg) 정도씩 아주 커다랗게 파는 소 Brisket (양지) 덩어리가 있는데, 이 쪽에선 차돌박이를 딱히 특별히 여기지 않아서 그 양지 덩어리의 한 구석에 제법 많이 붙어 있다는 것이었다. 심지어 이는 우리가 먹어본 적도 없는 USDA Prime 등급의 고기인데다, 가격마저 파운드당 $3.50 정도밖에 하지 않는 것이었다. 역시 한 번에 7kg 만큼의 고기를 사는 것이 문제라면 문제였는데, 언제 이런 것을 해 보겠는가 싶어서 결국 질러버렸다. 18파운드 정도의 양질의 차돌박이 붙은 양지 고기를. 그렇게 아내는 이 고기들을 손질하기 시작했다. 이에 필렛용 칼은 제 할 일을 다 하였다.

기름을 많이 걷어 내고, 차돌박이 부분을 분리하여 로스를 하기 위해 필렛용 칼로 썰기 시작했다. 차돌박이가 양지와 붙어 있다는 사실을 이 즈음까지 전혀 몰랐고, 썰어 내면서야 실감이 났다. 얇게 썰어진 차돌박이. 얼마나 이 칼이 예리한지 잘 느껴진다.


이것이 실행된 것은 한 밤중. 냉장고에 다시 넣는 것 조차 아까워, 자정에 가까운 시각이었으나 조금만 바로 구워 먹기로 했다. 경건하고 거룩한 경험이었다.


치이익 소리가 그렇게 감동적일 수가 없다.

직접 손질해서 썰어낸 차돌박이 로스구이. 뭐라 할 말이 없다. 정말, 너무나 상투적이지만 혀에서 녹아 내렸다.


다음 날은 아주 본격적이었다. 차돌박이 로스구이, 그리고 집에서 만든 청국장.

더 할 말이 없다.


이렇게 기름지고 부드러운 차돌박이는 아무리 그래도 작은 부분이고, 나머지는 커다란 양지, 즉 살코기 부분이다. 흔히 퍽퍽하고 썩 맛이 있지 않은 부분으로 여기는데, 아내는 이를 침을 흘리게 하는 요리들로 만들어 내었다.

그 첫번째, 바베큐. 상큼하고 달달한 그녀의 특제 소스를 올린, 몇 시간을 오븐에 구워낸 바베큐. 아내가 직접 담근 사워크라우트. 그리고 감자 샐러드, 폭신한 디너롤. 어째서인지 텍사스 본토에서 온 것 같은 저녁이었다.


그 다음날은 맛있게 쪄낸 소수육, 청경채와 친구인 가이란, 청국장.

담백하게 깊은 그 맛은 청국장의 구수한 맛과 마늘, 고추, 그리고 가이란의 알싸한 맛과 환상적으로 어우러졌다.


이 다음은 포 보(소고기 쌀국수). 양지를 아주 오래 팔각, 후추 등등 별의별 향신료와 함께 고아내어, 숙주, 고수, 타이바질, 레몬 등을 얹어 먹었다. 포는 언제부턴가 우리에게 힐링 음식이다. 쌀쌀한 날 몸이 너무나 더워지게 만들어 주는 음식. 더 이상 사 먹을 이유가 없어진 음식이다.

이 깊은 국물이란.

이렇게 18파운드의 양지는 거의 끝이 났다.




그러고 나서 한 달 뒤, 우리는 이 요리들을 잊지 못해 또 16파운드 정도의 양지 덩어리를 구매하게 되었다. 아내의 말로는 조금 더 손질이 쉬워졌다고 하며, 기름을 조금 더 남겨 더 맛있게 먹을 수 있을거라고 하였다. 그렇게 우리의 사치스런 식사가 계속되었다.

양지와 기름을 이용하여 카레를 끓여, 카레 우동을 해 먹었다. 카레는 늘 맛있지만, 이것은 너무나 말도 안되게 맛있어서, 이것을 과연 '카레'라는 단어 정도로만 표현을 해도 되는지 굉장히 고민이 되었다.


또 신나게 구워먹은 차돌박이. 집에서 양조해 낸 막걸리와 함께하니 더 바랄 것이 없다.


그 다음 날은 다시 바베큐. 친구가 놀러오면서 가져다 준 춘권도 같이 먹고, 딜 (Dill)의 포함으로 업그레이드 된 감자 샐러드와, 저번 먹었던 디너 롤이 너무 달아서 직접 구워버린 특제 디너 롤, 그리고 더 조합이 좋아진 바베큐 소스로 성대한 만찬을 함께하였다.


직접 담근 막걸리, 무, 표고 솥밥, 부추 소수육. 아주 자랑스런 한식의 한 상이다.


남은 자잘한 양지 고기는 이런 저런 것들에 많이 쓰인다. 미역국에 들어가 굉장히 맛있었고, 만두국에도 아주 훌륭했다. 코스트코는 늘 마음이 복잡하지만, 아주 훌륭한 칼, 그리고 아주 훌륭한 고기를 발견한 것으로 이번엔 제법 큰 수확을 얻었다. 오늘도 글을 쓰면서 배가 너무나 고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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