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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빙수 Mar 29. 2020

파스타 이야기.

나의 사랑, 파스타.

어쩌다 파스타를 좋아하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시간을 되짚어보자면 내가 살던 동네의 '쏘렌토'라는 체인 파스타 전문점을 일주일에 적어도 두, 세 번은 찾아갔던 기억이 아마 내가 정말 파스타를 좋아한다고 생각하게 된 서사의 시작이었을 것이다. 그 당시엔 파스타와 스파게티가 뭐가 다른 지도 잘 몰랐고, 파스타를 올바르게 먹는 법에 관하여 한국 사람이 숟가락에 포크로 파스타를 돌돌 말아먹는 방식이 얼마나 무례하고 무식한지 비판하던 때였다. 그 파스타들이 정통인가 싶으면 지금은 잘 모르겠지만, 사실 쏘렌토는 제법 그 정통의 스타일을 들여오려고 했던 선구자 같은, 그러나 안타깝게도 지금은 너무나 한 철 지나버렸다고 느끼지 않기 어려운, 추억의 이탈리안 레스토랑이 되어 버렸다. 까르보나라, 아마트리치아나, 뽀모도로, 까망베르, 알리오 올리오, 봉골레 등등, 지금이야 너무나 기본적이겠지만 그 당시 놀라울 정도로 '정통'을 추구하던 메뉴들, 그러나 이탈리아보다는 뭔가 프로방스 풍에 가까운 파스텔 톤과 조화 꽃꽂이, 그리고 저녁이면 한 테이블씩 켜 주던 촛불들이 나에겐 파스타에 관한 기억이고 추억이고, 상, 이미지다.


딴에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나름 '내 돈'을 번다고 생각했으나 아직도 부모에게 많이 의존하던 시절, 그 번 돈으로 파스타를 신나게 먹으려 다녔다. 동네 시장의 파스타집은 물론, 강남, 청담의 파스타집에도 많이 다녔다. 가 본 파스타 집만 몇십 군데였는데, 그 사실에 허세를 많이 부리기도 했다. 물론, 여전히 파스타와 스파게티의 차이를 몰랐고, 스파게티 면을 끓여본 적도 없는 입만 산 인간이었다. 그러나 파스타를 좋아한다는 사실에는 틀림이 없었는지 꾸준히 파스타를 먹으러 다녔다. 이제는 쏘렌토도 많이 없고, 잘 나가던 파스타 집들도 모두 다 자취를 감추었다. 시간은 너무나 쓰라리다.


어찌 되었건 파스타는 늘 좋아한다. 요리 천재 아내의 덕으로 되려 아주 다양한 파스타를 먹어볼 수 있었다. 그리고 날이 갈수록 발전하는 그의 소스와 재료의 조합들에 나는 더욱더 까다롭고 입만 산 사람이 되었다. 어떤 소스엔 푸실리라느니, 우리가 한 라자냐에 뭐가 더 들어가면 좋겠다느니, 펜네는 알 덴테의 질감이 조금 더 오래 살아남는다느니, 생각해 보면 지랄이다.


생 파스타에 대한 선명한 기억은 우리가 결혼을 하고 이틀 정도 뒤였다. 가까운 친구가 유명한 파스타 집에 예약을 잡고, 이 모든 비용은 자기가 낸다고 맘껏 먹으라고 했다. 그러나 레스토랑은 그 요청을 완전히 까먹었고, 우리가 온전히 돈을 내야 했지만, 서비스로 케이크를 제공해 주고, 다른 케이크도 주겠다고 하는 것을 우리는 너무 배가 불러서 먹을 수가 없어서 거절하였다. 그리고 자정쯤 되어 후회했다. 싸오기라도 할 걸. 하여튼, 산타모니카의 프리토 미스토는 생 먹물 파스타를 제공하였는데, 굉장히 독특하였다. 익숙한 건면과는 전혀 다른 식감과 풍미를 보여주었는데, 특히 계란과 생 밀가루의 맛이 도드라져서 취향을 많이 탈 것 같은 느낌이었다. 매끄럽고 익숙한 건면과는 달리, 훨씬 더 거칠고 원재료의 맛이 많이 느껴지던 맛.


세상은 흉흉하고 할 것은 없어 지루하다. 이런 때를 맞아 친구에게 파스타 머신을 빌려 왔다. 듀럼 밀가루도 샀다. 파스타를 만들어보기로 했다. 파스타 머신이 제공하는 스파게티, 페투치네는 물론, 얇게 펴기만 해서 라비올리를 만들기로 했다. 내가 그토록 사랑하는 파스타를 만들기로 했다.

계란, 중력분, 듀럼 밀가루로 만들어진 반죽.

정말 단단하고 쫀쫀한 반죽.

키친에이드, 열일한다. 산 보람이 있다.

페투치네와 스파게티.

나는 면을 다 만들었으니 아내가 마법의 요리를 시작한다. 집에서 그가 직접 만든 리코타 치즈와 시금치를 섞는다.

이는 라비올리의 필링이 된다.

생면과 건면, 그 어느 중간. 직접 파스타를 만든다는 것은 그 적당한 정도를 찾을 수 있는 자유를 의미한다.

상차림. $5의, 그러나 훌륭한 이탈리안 레드 와인을 페어링 했다.

우리가 뽑은 스파게티와 라비올리. 

우리가 기른 바질로 만든 페스토.

우리가 만든 리코타 치즈.

아스파라거스.

토마토.

양파.

마늘.

올리브 오일.

버섯.

베이컨.

내 생 거의 역대급의 파스타였다.

생 파스타는 러스틱하다. 완전히 정제되어 섬세하고 절묘하고 부드럽게 넘어가는 파스타가 아니라, 재료의 맛이 살아있는 투박한 맛이다. 편리하고 안전한 문명에서 살다 지쳐 아무것도 없는 곳에 굳이 찾아가 캠핑을 하는 맛이다. 거기에 이탈리아 와인이 더해지니 마치 이탈리아 전원 어디엔가 찾아온 것 같았다.

뭔가 아쉬워 남은 면으로 2차. 간단하게 살라미, 남은 시금치.

파스타. 그것은 나의 커다란 부분. 그를 직접 만들 수 있게 되어서 너무나 뿌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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