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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빙수 Apr 22. 2020

오리 주물럭 이야기

우리의 소중한 추억

10년 전의 이야기이다.


지리산 어느 자락, 산청. 그 날은 날씨가 너무나 변화무쌍하였다. 화창하던 것 같다가도 갑자기 소나기가 내렸다. 주변에 꺾여 있던, 연잎보다도 커다란 호박잎을 우산 삼아 들고선 지붕이 있던 버스 정류장까지 열심히 뛰었다. 정말 시골 구석, 버스는 오지 않았고, 비가 잦아듦에 주변을 돌아다니다 보니 작은 정자가 있었다. 비에 홀딱 젖은 나의 여자 친구는 피곤한 듯 나의 무릎을 베고 누웠다. 그 새 소나기는 지나가고 구름 사이로 노란 햇살이 우리를 따스하게 비추어 주었다. 그의 머릿결을 쓰다듬었다. 그의 잠결이 느껴졌다. 내 아이팟 터치를 꺼내었다. 피아노 어플을 켜고, 참 작고도 작은 12 키 정도의 건반을 톡톡 두들기며 나름대로의 음악을 연주했다. 한참을 그렇게, 그의 새근새근 숨소리를 들으며 조그마한 콘서트를 열었다.


그가 잠에서 깰 때까지도 버스는 오지 않고, 우리는 걷기 시작했다. 조만간 배가 고파져, 그의 친구의 부모님이 운영하시는 계곡 옆 오리고기 집에 찾아갔다. 그 해에는 홍수가 심했어서 붕괴된 부분도 많아 간신히 형태를 갖추고 있었다. 우린 매콤한 오리고기 주물럭을 주문했다. 부추, 마늘이 한가득, 매콤하고 고소한 오리 기름. 뒤로 들려오는 시원한 계곡의 물소리. 물줄기가 너무 세어 커다란 바위들의 자리가 바뀌었다고 했다.


다시 한참을 걷고 긴 터널을 지나고 높은 언덕을 넘어 우리가 감사하게도 머무를 수 있었던 관측소에 도착했다. 우리가 만나게 되었던 계기처럼, 별과 천체를 관측하러 내려온 우리였으나, 이렇게 안타깝게도 날씨가 좋지 않은 때였다. 그럼에도 지리산의 비 오는 풍경, 비에 젖은 산, 구름의 바다는 너무나 아름다웠다. 빗소리에 서늘해진 공기, 그의 뜨거운 온기가 너무나 사랑스러웠다. 그의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그러곤 그의 입술에.


얼마 전 구비한 고기 슬라이서는 어마어마하다. 저번에 장 본 오리고기를 썰었더니 이미 썰려서 판매되는 오리고기보다 훨씬 더 질이 좋았다. 오래간만에 너무나 날씨가 좋아 신나게 밖을 돌아다녔던 오늘, 즐거운 배고픔으로 저녁 준비를 했다. 10년 전 오리 주물럭을 생각하면서.

세라노와 아바네로 고추를 넣어 한껏 매콤함을 끌어올리고, 양파, 양배추, 부추, 마늘을 산더미처럼 넣었다. 별도로 생마늘과 생고추를 더 준비하였다. 양파를 더 채 썰어, 간장 와사비 양념에 담갔다. 깻잎, 상추쌈도 물론 준비했다.

특이점...

10년 전의 추억을 그리며 유튜브로 '강' 사운드를 찾았다. 사운드바로 크게 틀어 놓았더니 제법 그럴듯한 것이었다. 그 시절의 강물의 시원함, 냄새가 느껴지는 것만 같았다.

매콤하고 얼얼하고 고소하기 그지없는 오리 주물럭. 부추, 마늘이 열심히 일했다.

상큼하고 시원하면서 코 끝이 찡해져 눈물이 핑 도는 와사비의 향.

이 모든 것을 어우러주는 깻잎.

왠지 이것엔 순수한 흰 밥이 어울린다.

하이라이트인 볶음밥. 지글지글, 살짝 눌어붙은 볶음밥은 식사를 완벽한 마무리로 이끌어준다.


우리에게 아주 아득한 우리 관계의 시작에 대한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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