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빙수 Apr 21. 2020

마라장 이야기

직접 만든다는 것

나의 첫 브런치 글은 '마라탕'에 대한 것이었다. 그 화끈함과 독특한 향의 프로파일은 중독성이 너무나 강해서 정말 자주 생각이 난다. 그래서 중국 마트에 갈 때마다 여분의 하이디라오 수프 베이스, 피시볼 한 뭉텅이, 건두부 등등을 사 와 매달 세, 네 번씩은 먹었다. 아니, 마라탕을 먹기 위해서 매주 중국 마트에 갔던 것일지도 모른다. 정말 마라탕 쳐돌이들이 따로 없다. 한국에서 핫한 많은 음식이 그렇듯, 마라탕이 그저 일시적인 유행일 뿐이라고 먹어보지도 않고 얘기하던 내가 참 가소롭다.


COVID-19가 판데믹으로 선포되었던 그 무렵의 어느 날, 중국 마트에 가니 많은 것들이 비어 있었다. 쌀, 물, 휴지처럼 유명한 것들이야 예상했으나 웬걸, 마라 수프 베이스가 하나도 남아있지 않았다. 중국 본토에서 생산되는 제품인 만큼 중국 내부의 사정으로 인해 생산 라인이 멈춘 것인지, 아니면 한 때 김치가 사스에 도움된다고 해서 김치의 품귀 현상이 있었던 것처럼 중국 문화 안에서 마라와 같이 맵고 뜨겁고 화끈한 것이 인기였는지 잘은 모르겠다.


그 이후 몇 번 더 중국 마트를 가 보았으나 마라 수프 베이스는 여전히 없었고, 온라인 상으로는 재고가 있다고 해서 반가운 마음에 찾아갔을 때마저 그 날 할당량은 이미 다 팔린 모양새였다. 그리하여 아내는 마라 베이스를 직접 만들어 보기로 하였다. 시판 제품이 없을 것을 대비하여 그간 마라 수프 베이스, 조금 더 익숙하게 이야기하자면 마라장 레시피를 여기저기서 찾아보았던 우리였다.


사실 언젠간 해 볼 일이었다. 일단 마라 베이스는 생각보다 비쌌는데, 어떻게 보아도 그 원재료를 구해 직접 해 보면 더 저렴할 것 같았다. 그리고 시판되는 제품에는 우리에겐 기름기가 과하다는 것을 예로 들어 우리의 취향에 좀 더 잘 맞는 마라장을 만들어보고 싶었다. 무엇보다 마라장에 들어가는 별의별 향신료들에 대해 늘 궁금했다. 어차피 마라 쳐돌이로서 앞으로도 계속 먹게 될 것인데, 우리 집 특제 마라장을 만드는 것에 흥미가 있었다.


마라장에 들어가는 정말 어마어마한 종류의 향신료와 장들은 중국어나 이상하게 번역된 영어 표기가 많아서 이 재료들을 찾느라 마트에서 한참을 서성였다. 두장은 무엇인지, 이는 두반장은 뭐가 다른지, 두반장 중에서도 피시안 지역 두반장은 무엇인지, 고추는 무엇을 써야 하는지 너무 어려웠고, 이를 알아가는 과정이 재미있었다. 하이라이트는 감초로, 학명까지 검색하면서 이를 찾아 마트를 몇 바퀴를 돌았다. 구했다면 구했다고 할지, 다른 약초들과 함께 세트로 파는 제품을 구매했다. 나머지 약초들은 뭔지 더더욱 몰라서 앞으로 언젠가 이를 사용할 때가 기다려진다.


한편 맵고 혀가 얼얼해지는 마라탕의 핵심은 바로 사천 페퍼콘 (Sichuan Peppercorn), 즉 '화자오'라고 불리는 녀석이다. 한참을 찾고 찾다가 간신히 찾았는데, 나중에 알게 된 것으로 그것은 green Sichuan peppercorn, 즉 초록 화자오로, 일반적으론 붉은 화자오를 많이 쓴다고 한다. 다행히도 동네 친구에게 마침 붉은 화자오가 있다고 해서 빌려와 이 두 종류를 비교해볼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만들었다. 청화자오는 솔잎같이 산뜻하고 상쾌한 향을 가지면서 얼얼한 느낌이 아주 강했고, 적화자오는 꽃 향기가 나는 것 같은 화사한 느낌을 주었다. 하이디라오 수프 베이스에서 화자오를 씹었을 때는 씁쓸하고 얼얼한 맛만 느껴졌는데, 이렇게 생 화자오를 먹으니 그 속에 숨은 수많은 향들이 이미 나를 너무나 신나게 했다.

중국 고추, 마늘, 생강, 월계수잎, 청/적 화자오, 커민, 펜넬 씨앗, 팔각, 정향, 흑 카다멈, 계피, 감초.

살짝 토스팅을 하니 어마어마한 향이 집을 감싼다. 그것을 갈아내는 아내가 쉴 새 없이 재채기를 한다.

갈려진 건재료, 그 아래의 두장, 두반장의 믹스, 그리고 언젠가 아내가 알뜰하게 모아둔 소 기름.

마라장의 하이라이트, 이를 다 섞어 진한 고추기름을 내는 일. '촤아' 하는 소리와 함께 이 복잡한 향신료와 장들이 기름에 녹아들자 온 집에 마라탕의 향이 곧바로 한가득 들어찼다. 너무나 신기한 순간이었다.

그 날 저녁, 아내가 이렇게 직접 갓 끓여낸 마라장으로 마라탕을 끓였다. 파는 음식의 자극은 빼고 맛과 풍미는 더하고, 집에서 먹는 너무나 맛있고 편안하면서 얼얼함은 여전한 우리 집만의 마라탕이 탄생하였다. 남은 마라장은 아내가 야무지게도 소분하고 얼려서 필요할 때마다 편리하게 꺼내 쓸 수 있게 되었다.


직접 만들어 먹는 일에 큰 애착이 있는 우리, 그 근본은 무엇인가 생각을 많이 한다. 


1. 싸다. 아내에게 충분한 인건비도 제공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2. 우리의 취향에 맞출 수 있다. 

3. '직접'이라는 경험이 즐겁다.


이렇게 간단히 요약할 수 있는 것 같다. 이를 가능하게 해 주는 나의 아내에게 오늘도 고맙다. 화자오 한 조각을 씹어먹고 싶은 밤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사워도우 이야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