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운 곳에서는 날 오라 하여도
며칠 전, 잠에서 깬 아내가 얘기했다.
'꿈속에서 아침에 일어났는데, 우리가 당장 이사를 가야 한대. 심지어 짐도 다 싸져 있었어. 이렇게 난데없이, 갑작스레 이 집을 떠나야 한다고 해서 엄청나게 펑펑 울었어.'
나는 대답했다.
'엄청나게 좋은 집으로 가는 거면 괜찮지 않을까?'
아내는 곰곰이 생각하더니 말했다.
'아니, 그래도 많이 울 것 같아. 어찌 되었건 내가 여태 살았던 집 중에서 가장 오래 산 집인걸.'
'그러네, 이 시절과 공간을 아주 많이 그리워하게 될 거야.'
전국 방방곡곡을 돌며 살아온 아내와, 자취를 하며 한 해 이상 머무른 공간이 없었던 나에게, 우리가 함께 맞이한 이 집에서의 세 번째 여름은 작년보다 조금 더 반갑고, 소중하며, 그립다.
늦은 오후, 아내가 모처럼 길고 탄탄한 호흡으로 요가 수련을 한다. 생리 전 증후군으로 추워하고 힘들어하던 그의 몸과 마음이 조금이나마 기력을 되찾은 모양이다. 가벼운 옷차림을 하고, 시선과 숨에 집중을 담아 크고 부드러운 동작을 하는 모습이 멋지고 아름다워 오늘도 또다시 그에게 반한다. 나는 그가 조금이라도 더 즐겁게 요가에 몰입할 수 있도록 플로우의 에너지 레벨에 맞춰 배경 음악을 틀어놓는다. 역시 아내의 기운이 집 안에 느껴지는 것이 좋다.
며칠 전, 그가 힘 없이 소파에 누워 있길래 콩 주머니를 뜨겁게 덥혀 그의 다리 밑에 두고, 담요 여럿으로 꽁꽁 감싸 두었다. 그리고 발 끝부터 머리 끝까지 꾹꾹 주물러 주었다. 마사지는 내가 아내에게 전하는 사랑의 언어 (love language)이다. 물을 한 컵 떠다 주고, 그를 안아 주고, 그의 이마에 뽀뽀를 했다. 부산스럽게 뛰어다니는 몽실몽실하고, 따끈따끈하고, 그릉그릉 거리는 아가 고양이들을 하나씩 하나씩 그의 품 안에 넣어 주었다. 다음 날 아침, 아내는 이런 훌륭한 '복지'로 몸 상태가 좋아졌다고 말해 주었다.
나는 생리 전 증후군을 겪을 일은 없지만, 내 나름대로 종종 걱정과 불안, 우울감, 무기력에 가라앉곤 한다. 그럴 때면 그는 나에게 말한다.
'내가 네게 해줄 수 있는 건 맛있는 것을 먹이는 것 밖에는 없어'.
그렇게 그는 나에게 만둣국을, 마라탕을, 지코바를, 찐빵을, 순대를 먹인다. 맛있는 음식, 아마도 그것이 그의 사랑의 언어일 것이다. 그의 음식을 먹으면 나는 언제나 그 어두운 감정의 골에서 빠져나올 용기를 얻게 된다.
이처럼 살다 보면 둘 다 정말 에너지가 넘칠 때도 있고, 둘 중에 하나는 그렇지 못할 때도 있고, 아주 가끔은 둘 다 지쳐 있을 때도 있다. 때때로 어두운 감정이 찾아오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나, 이 또한 내가 조절하고, 다룰 수 있다고 믿는다. 그 감정에 사로잡히고, 먹히는 것이 아니라 객관화하고 나의 주의를 분산시켜서 나의 부정적인 에너지가 나의 아내, 그리고 우리 집 고양이들까지 끌어내리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잠깐 산책을 하러 나가기도 하고, 운동을 하기도 하고, 테라스에 앉아 우리 집 작은 올리브 나무 '올리볼리'에 예쁘게 핀 꽃들을 보기도 하고, 재미있는 예능을 보기도 한다. 그럼에도 어쩔 수가 없을 땐 가능한 일찍 잠을 자러 간다. 역으로 아내의 감정선이 평소에 비해 가라앉은 날에는 나의 감정을 잘 유지하고 그를 배려하여 나의 에너지가 그에게 흘러들어 가 도움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도 나도 에너지가 없는 날이면, '서로 둘 다 피곤한 날이다', 라는 사실을 잘 인지하고, 서로의 어두운 생각과 말이 서로를 더 어둡게 만들지 않게 마음을 잘 다독인다. 아내는 아내만의 언어로, 그러나 비슷한 모습으로 나와 고양이들을 배려하고 아끼고 있을 것이다. 우리는 각자의 방식으로 이 집의 따뜻한 공기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고, 이는 결국 우리를 편안하고 행복하게 한다.
연말이나 연휴, 혹은 은퇴 후 같이 많은 시간을 보낼 때 가족 간 싸움도 잦고, 부부의 이혼도 많다고 한다. 나름 '즐거워야' 할 시간에도 그러한데, COVID-19 판데믹으로 집 안에 갇혀 강제적으로 시간, 공간, 그리고 불안을 거의 24시간 내내 공유하게 된 지금, 구성원 간 다툼은 물론이고 심지어 가정 폭력마저도 늘고 있다는 뉴스를 간간히 접한다. 우리는 우리대로 집 안에서 우리가 갖는 역할과 관계에 대해 조정이 필요했다. 내가 밖에 나가 일을 하는 동안 집안일을 거의 모두 담당하고 있는 아내의 터전에 불쑥 하루 종일 자리 잡아 가만히라도 있으면 좋지, 이젠 집에 있는 시간이 길어지며 빵도 많이 굽고, 파스타도 만들고 싶은데 기본적으로 집안일 레벨은 낮아 뭐가 어디 있는지는도 몰라 다 물어보면서 아내가 '잔소리'를 하는 것을 성가셔하는 모습이 성가셨을 것이다. 두, 세 번 대화를 하면서 우리는 같은 시간과 공간 속에서 때론 같이, 그리고 때론 따로 시간과 공간을 보내는 법을 익혔다. 이 경험은 나중 되돌아보았을 때 중요하고 소중하게 여겨질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런 대화를 나누를 나누며 아내에게 말했다.
'내가 이렇게 좋아하고, 배려하고 싶고, 나를 배려해주는 사람과도 쉬운 일이 아닌데, 서로 배려할 일 없는 사람들끼리, 혹은 심지어 싫어하는 사람들끼리 지금 같이 갇혀서 살고 있다면 얼마나 돌아버릴 것 같을까?'
'아 진짜, 너 예전에 같이 살던 [검열 - 열여덟] 새끼들이랑 너 방문 앞에 똥 싸놓던 걔네 치와와 새끼.'
화장실에 난교 후 별의별 타액을 묻혀놓고, 지나가던 사람들에게 맥주 캔 던지고, 오줌 싸던 새끼들과 같이 살던 때였다. 너무 힘들어서 정신과 상담을 받던 시절이었다. 지금이 그때가 아니라 너무나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