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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빙수 May 27. 2020

집 이야기 2

내 쉴 곳은 작은 집 내 집뿐이리

 빵을 굽기 위해 일찍 일어난 아침, 오븐에서 새어 나오는 남은 열기를 느끼며 집안일 몇 가지를 해 놓고, 마침 일어난 아내와 같이 빵을 먹었다. 꾸준히 사워도우 빵을 굽고 있는 요즘, 매번 나의 부족한 부분에 대해 배우지만 어찌 되었건 그 나름대로 맛있다. 바삭하고, 고소하고, 살짝 시큼하고, 쫄깃한 나의 빵에 아내가 만든 레몬 제스트 딜 버터를 곁들이면 빵 한 덩이가 순식간에 사라진다. 아침부터 분주하게 움직였겠다, 탄수화물로 한가득 배를 채웠겠다, 갑자기 졸음이 쏟아졌다. 마루 소파에서 선잠을 잘까 하다가 안방으로 가 커다랗고 뭉실뭉실한 이불, '클라우디오' 안에 몸을 묻었다. 클라우디오 안을 다리로 휘적거리며 느끼는 보드라운 시원함이 기분 좋았다. 열린 창으로 간간히 불어오는 바람에 담긴 햇살의 냄새를 맡으며 잠에 들었다.

 사실 나는 낮잠을 꺼려해 왔는데, 이는 내가 밤에 자고 일어나는 것만큼이나 잠에서 깨어나는데 오래 걸리기 때문이었다. 고작 30분 정도 낮잠을 잤을 뿐인 데도 제정신이 들 때까지 거의 한 시간 정도를 멍하게 앉아 흘려보내는 것이 너무나 아까웠다. 그러다 어떤 날, 너무나 졸려 낮잠을 자고 일어나선 정신을 차리려 기를 쓰지 않아 보기로 했다. 해야 한다 생각했던 일은 다시 생각해보니 지금 당장 해야 할 일은 아니었다. 멍하게 뒹굴거리고 있으려니 햇빛에 빛나는, 흔들거리는 나뭇잎들이 예뻤다. 겨울에도 낙엽이 지지 않는 나무지만, <마지막 잎새>의 존시인척 이파리들을 한참 보고 있었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 왠지 심심해져 마루로 나갔다. 정신이 맑았다. 

 꺼려한 것은 낮잠이 아니라 초조함이었다. 밤엔 네 시간씩 자며, 낮잠이라곤 도서관 책상에 엎드려서 10분쯤 졸다 일어나 카페인과 당이 흘러넘치는 에너지 드링크를 마시고 공부하던 치열한 시절, 시간에 공백을 두면 안 될 것 같던, 뭐라도 하지 않으면 내가 도태될 것 같던 그 때의 마음이 남아 있는 것이었다. 그런 시절이 있었기에 지금의 여유가 있듯, 10년 후의 나를 위해 지금도 그렇게 살아야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건 조금 더 있다가 생각하기로 했다.

 오늘의 낮잠에서 깨니 오늘도 햇빛과 바람이 따스하다. 안경을 쓰지 않은 나의 눈에 어른거리는 이파리들이 f/1.4로 조리개를 활짝 열고 찍은 사진의 보케처럼 예쁘게 부하다. 눈을 찡그리니 저 회색 소파 한가운데 갈색, 흰색 뭉치가 있는 것 같다. 보리와 같이 낮잠을 잔 것 같아 마음이 따뜻해진다. 물론 내가 낮잠을 자건 말건 보리는 어차피 거기서 낮잠을 잘 것이었겠지만 말이다.

 내가 어릴 적, 아니, 성인이 되고도 아빠는 꼭 그렇게 소파에서 졸았다. 그냥 침대에 가서 자면 될 것을 대체 왜 가족들도 부스럭거리고, TV 소리도 나고, 빛도 밝은 마루의 소파에서 자다, 깨다를 반복하는지 이해 할 수가 없었다. 지금은 아내가 나한테 하는 말이다. 아는 데도, 왠지 나 또한 소파에서 그렇게 선잠을 잔다. 잠결에 들려오는 집의 소리가 좋다. 아내가 집안일을 하는 소리, 그리고 그가 틀어 놓은 노동요의 소리, 보리에게 쫓기다가 하악질하는 구름이의 소리, 가끔은 내 명치 위로 올라와 그릉그릉거리는 보리의 소리가 좋다. 어릴 때나 부리는 줄 알았던 잠투정을 부리는 것인지도 모른다. 내가 자더라도 집의 따스함을 계속 느끼고 싶은 투정. 

 아내가 이 집에 처음 오자 마자 꾸몄던 '창 속 고양이'. 이 녀석이 우리가 자는 동안 나쁜 꿈으로부터 지켜주지 않을까 싶은 마음이었지만, 고양이가 다 그렇듯 늘 제멋대로이다. 여전히 나쁜 꿈을 꿀 때도 있고, 어쩌면 원래는 훨씬 더 많이 나쁜 꿈을 꿀 것을 이 녀석 덕분에 덜 꾸는 것일 수도 있겠다.

 나는 정말 잘 자는 편이었다. 아내 말로는 내가 잘 잘 때에는 기절하듯 3초 만에 잠든다고 한다. 그리고 누가 밟아도 잘 안 깨고 잘 잘 정도였다. 그러던 내가 처음으로 잠을 잘 자지 못하다 못해, 불면증을 경험하게 된 것은 몇 년 전, 지나가던 사람들에게 캔 던지던 놈들이랑 살던 때였다. 밤 내내 너무 시끄럽고, 냄새나고, 불쾌해서 그 밤이 찾아오는 것들이 무서웠다. 새벽까지 이어지는 커다란 음악 소리, 병, 캔을 던지는 소리, 개 짖는 소리, 신음 소리, 쿵쾅거리는 소리에 잠을 도저히 잘 수가 없고, 그 '재미'를 이해할 수 없는 나를 신경과민으로 몰아버리는 그들 때문에 우울과 분노에 차서 지낸 시절이었다.

 

 1년을 어떻게든 견뎌내고, 계약이 끝날 때 즈음이 되었다. 필사적으로 아파트를 찾아보기 시작했는데, 대학원생으로 받는 쥐꼬리 봉급(stipend)으로는 너무 비싸거나, 만약 싸다면 '사실이기엔 너무 조건이 좋은 (too good to be true)', 즉, 허위 매물이었다. 스무 번, 거의 서른 번을 당하고 나서 거의 포기할 때쯤, 사기의 온상인 온라인 거래 사이트 Craigslist에 매물 하나가 올라왔다. 아파트의 이름, 주소, 간단한 설명, 그리고 전화번호가 아주 촌스럽고 의심스러운 폰트로 적혀 있었는데, 이것이야 말로 'too good to be true'였다. 내가 그간 자취를 하며 그리던, 그리고 이제 곧 결혼할 사람과 같이 살 때 필요하다고 생각한 모든 조건을 갖춘 매물이었다. 그로 얘기하자면,

적당한 월세 

반려 동물 가능

방 하나, 화장실 하나

학교에서 자전거로 30분 반경

클라이밍 짐 30분 반경

바다 30분 반경

트레이더조, 랄프 등 식료품점 걸어서 10분 반경

걸어 다니기 좋은 치안

주차장 

고속도로

아파트 짐, 수영장...

 아무리 그전에 고생했다고 하지만, 사치스럽고 욕심 많기 그지없는 조건의 리스트였다. 허위 매물에 이제 충분히 당했으니 더 당하는 것도 피곤하지 않아 바로 전화를 했는데, 아무 때나 신청 서류를 작성하러 오라는 것이었다. 어느 흐린 날 아침, 아직 익숙하지 않은 지리에 한참 헤매며 아파트 앞에 도착해 벨을 눌렀다. '분명 아무도 문 안 열어주고 나는 엿이나 먹겠지, ' 했는데 웬걸, 매니저가 반갑게 맞아주더니 아파트를 소개해 주었다. 아무리 텅 비었다지만 생각보다 마루가 너무 넓어 내 목소리가 울렸다. 건축된지 오래 된 아파트라 방도 크고, 수납 공간도 (그때 생각하기에는) 많았다. 카페트도, 가스레인지도 다 새 것, 미안하지만 냉장고만은 내가 사야 한다는 말에 신이 나서 고개를 끄덕였다.

 '라떼는 말이야' 급으로 아내에겐 몇 번도 더 한 얘기지만 이사하는 날은 정말 힘들었다. 아싸 중에서도 아싸 인 데다 중요한 시험 전 주말이라 도움을 요청할 동기도 없어 혼자서 소파나, 침대, 테이블 등을 커다란 렌털 트럭에 싣고, 비루한 운전 실력에 핸들을 땀나게 꽉 잡고 덜덜 떨며 새 아파트로 옮겼다. 힘들었으나 그 새끼들에게서 해방된다는 사실에, 나와 아내만의 첫 보금자리를 준비하게 되었다는 사실에 너무나 신이 나고 가슴 벅찼다. 해 뜰 무렵 시작한 이사는 렌털 업체가 영업을 마친 후에야 끝나, 트럭을 반환하고 키는 보관함에 던져 넣었다. 그리고 그때, 내가 내 아파트 열쇠를 트럭 안에 놓고 나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정말 재수가 안 좋다가도 좋게도 세상 초짜로 보이던 내가 걱정되었다며 마침 잠깐 나오신 업체 사장님 덕에, 나는 열쇠를 찾고 해 질 무렵 드디어 이사를 마칠 수 있었다. 샤워를 하고 피자집에 가서 피자 한 판에 시원한 밀맥주, 바이엔슈테판너 (Weihenstephaner)를 꿀꺽꿀꺽 마셨다.

처음으로 같이 지냈던 스튜디오

 내가 처음으로 살게 된 원베드, 원 배쓰 (one bed, one bath) 아파트였다. 그 전에는 늘 원룸이나 다른 사람들, 혹은 사람도 못한 놈들과 살았다. 동부에 있을 시절 잠시 여자 친구가 미국에 놀러 왔을 때엔 아주 작은 원룸 (studio)에서 지냈는데, 몸 돌리기도 어려운 싱글베드에, 부엌도 없어 아파트 측에서 준 2구 작은 전기 히터를 가지고 여자 친구가 나에게 음식을 해 주었다. 그런 아내가 이제 그만의 부엌을 가져서, 그의 음식 세계를 어마어마하게 확장할 수 있게 되어 얼마나 뿌듯한지. 

 한편, 원룸이라는 것은 분리된 공간이 없음을 의미했다. 우리가 다퉜던 어떤 밤, 아내는 나의 미지근하고 부족한 사과에 화는 나고, 잠은 안 와서 나초 칩을 먹고 싶으나, 나는 또 내일 일을 하러 가야 하니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잠을 깨우기 싫어 무려 화장실에서 칩을 먹었다고 한다. 아직까지도 너무나 미안하고 그가 가엽다.

 이런 원룸에서 나는 고양이 임보를 시작했다. 혼자 있을 시절에도 그 작은 침대에 아가 고양이 셋, 넷 올라오면 몸을 돌리기도 어려웠다. 나는 그래도 잘 자는 편이었지만, 아내가 와 있을 때 임보를 하며 두 아가 고양이들이 뛰어다니는 소리에 아내는 잠을 뒤척이곤 했다. 이런 이유들로 조금 무리를 하더라도 아내가 미국에 오게 되면 제대로 된 방이 있는 아파트에서 살고 싶었다.

 컨디션이 안 좋거나, 나는 쉬고 싶은데 상대는 집중해야 하거나, 어쩌면 다퉜거나, 아니면 그냥, 어떤 이유로건 한 공간을 필요에 따라 분리를 할 수 있는 것은 아주 중요하다. 그리고 공간을 분리했을 때 각자 편안할 수 있는 것은 더더욱 중요하다. 항상 같이 시간을 보내는 요즈음, 굉장히 내성적인 나와, 늘 내성적, 외성적 경계에 있는 아내, 우리 둘에게 각자의 시간 또한 필요하다. 그것은 내가 모처럼 열심히 일을 해야 하는 것일 때도 있고, 아내가 일어나기 전 모든 집안일을 마치고 싶은 우렁각시의 마음일 때도 있고, 그냥 혼자이고 싶을 때도 있다. 아내 또한 신나게 만들기를 하건, <부부의 세계>를 시청하건, 또 혀를 내두를만한 요리를 준비하건, 마찬가지로 우렁각시가 되고 싶건, 역시나 혼자이고 싶을 때가 있는 법이다. 우리는 공간도 공간이지만 시간으로도 각자의 시간을 이루어 내고 있는데, 나는 비교적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고, 아내는 조금 더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는 편이다. 아침에 내가 혼자 신나게 뭘 하는 동안 아내는 방 안에서 새근새근 자고, 밤에 아내가 신을 내는 동안 나는 방에서 아무것도 모르고 쿨쿨 잔다. 방문이 닫혀 있는 동안엔 우리는 고양이들로부터도 안전하다. 그들과 침대에서 같이 자면 좋겠지만, 이 녀석들은 자다, 놀다, 그리고 놀 때는 난리 법석을 피기 마련이다. 그러니 미안해도 잘 때만큼은 안방은 우리 인간들의 성역이다. 모두가 같이 보내는 낮 시간엔 고양이들을 쓰다듬어주고, 우리도, 고양이도 밥을 먹고, 장도 보고, 고양이들에게 귀엽다고 399번 정도 말하고, 그렇게 같이 논다. 공간을 분리할 수 있는 자유는, 방의 존재는 그리하여 중요한 것이다. 그리고 단순한 룸메이트가 아닌, 삶에서 어느 정도 같은 지향점을 가지고, 서로를 이기려는 것이 아닌 서로를 사랑하고 배려를 하는 부부의 사이로서 같이 산다는 것은 제법 행복한 일이다.

 동그라미 세모 세모들이 많이도 컸다. 나는 별 것 안 한 것 같은데 녀석들은 하루가 다르게 고양이가 되어 가고, 오늘 낮엔 결국 고양이 여섯이 안방을 차지했다. 누구는 신나게 뛰어다니고, 우리 까북이는 클라우디오에 폭 묻혀서 몇 시간을 잘도 잔다. 그래, 편하지 이 자식아.


 우리는 캠핑을 종종 간다.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아무것도 없는, 이상한 곳이면 더욱 좋다. 꾀죄죄해져도 씻지도 못하고, 바람도 불고, 벌레도 가끔 있고, 추운 그런 곳, 텐트를 쳐 놓고 우리의 침낭 안에 들어가면 그렇게 치유가 된다. 그리고 엄청나게 잠을 잘 잔다. 역시 이렇게 좋은 것이 없다고 종종 이야기한다. 그러다 캠핑을 마무리하고 집에 돌아와 구정물 한가득 나오게 샤워를 하고, 맥주를 마시며 뒤풀이를 한 다음 침대에 누우면 클라우디오에 배인 아내와 나의 숨과 삶의 냄새가 난다. 너무나 폭신폭신하고 포근하다. 어쩌면 우리가 살고 있는 집의 편안함을 되새기기 위해 캠핑을 떠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아내가 모처럼 친구와 함께 친구와 함께 트레일을 걸으러 가서 나는 모처럼 길게 혼자만의 시간을 가졌다. 신나게 맥주를 마시며 일을 했지만, 무엇보다 아내가 보고 싶었다. 그날 밤, 모처럼 같이 일찍 침대에 누웠다. 아내가 나갈 때부터 예상했듯, 어김없이 그가 말했다.

 '아, 역시 집이 최고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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