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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빙수 Jul 01. 2020

오랜만에 암장

몸은 무거우나, 반갑고 신난다.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로 이사를 온 바로 다음 날 아침, 눈을 뜨자마자 가장 먼저 한 일은 암장(클라이밍 짐)에 등록하는 것이었다. 새로운 보금자리에서 자전거를 타고 평평한 길을 따라 20분쯤 달리면 그 당시 SoCal (Southern California)에서 가장 큰, 연지 얼마 되지 않은 새 암장이 떡하니 자리 잡고 있었다. 아내의 권유로 처음으로 클라이밍을 해본 이후, 그 전까진 학교 체육관에 안에 있던 작은 'Rock Wall', 말 그대로 암장에서 클라이밍을 익혔다. 일단 학교 근처에 살 때엔 이 새로운 암장에 자전거로 왔다 갔다 하기엔 좀 멀었고, 학비에 포함되어 무료로 이용할 수 있었던 학교 암장에 비해 한 달에 7-80달러씩 내야 하는 멤버십 비용이 부담스러웠다. 그리고 클라이밍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으니 학교 암장에서 충분히 실력을 기를 수 있을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이었다.

학교 암장

 학교 암장은 아주 올드 스쿨이었다. 학생들에게 무료로 제공되는 만큼 운영비도 거의 없었고, 이는 설비나 장비가 나아질 일이 거의 없다고 봐야 했다. 클라이밍 홀드들은 너무나 낡고 닳아 '돌'을 모방했다기엔 너무 매끈매끈했고, 삐까뻔쩍한 요즈음의 뉴 스쿨 클라이밍 짐처럼 홀드의 색깔을 따라 볼더나 루트가 세팅된 것이 아니라, 너무나 빛이 바래 사실 색깔도 잘 모르겠는 홀드들 옆에 색깔 테이프를 붙여 길을 표시해 두는 것이 최선이었다. 물론 공간도 좁고, 홀드도 모자라니 한 홀드가 여러 문제에 쓰이는 것은 당연했다. 그 어두침침한 공간에서 다닥다닥 박힌 홀드들 주변 헷갈리는 색테이프를 찾아 길을 따라가는 것은 헷갈리는 일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클라이밍에 푹 빠져서, 오후 여섯 시, 일곱 시쯤 수업이 끝나면 달려가 그 미끄러운 홀드를 잡다가 떨어지곤 했다.

 그러다 이 새로운 암장 안으로 들어서자 마음이 두근거렸다. 엄청나게 넓고 높은 공간으로 자연광이 한가득 들어왔다. 클라이밍을 할 수 있는 실면적도 물론 넓었지만, 그 이상으로 빈 공간을 두어 개방감이 어마어마했다. 벽들의 모양이나 색깔, 각도, 지형은 너무나 다양했고, 클라이밍 대회 영상에서 보던 멋진 클라이밍 홀드들로 온 암장이 세팅되어 있었다. 한 색깔로 널찍하게 세팅된 문제들은 아주 알아보기 쉬웠으며, 무엇보다 아름다웠다. 별자리들이 얼기설기 수놓아져 있는 것 같았다.

 한 반년 후쯤 아내가 미국에 도착한 날 밤, 굳이 피곤한 그를 데리고 이 암장에 갔다. 그 공간을 그에게도 어서 보여주고 싶었다. 다음 날 오후에는 그의 멤버십도 등록하여 본격적으로 같이 클라이밍을 했다. 얼마나 설레었는지 모른다. 몇 년 간의 장거리 연애 끝에 (바라건대 평생) 공유하는 새 삶을 시작하게 되면서 같이 경험할 많은 '처음'의 상징으로 나에게는 다가왔다. 몇 시간을 눌러앉아서 클라이밍을 하다가, 쉬다가, 놀다가, 잠깐 바깥에 나와 길 건너 패스트푸드 음식점에 갔다. 정말 신이 내려준 것 같은 푸르른 하늘 아래 뜨거운 햇빛을 받으며 지중해식 피타 랩(Pita wrap)을 맛있게 먹었던 기억이 난다.

 마지막으로 암장에서 클라이밍을 한 것이 3월, 벌써 세 달도 넘었다. 여전히 COVID 상황이 썩 나아 보이지는 않지만 이 지역 대부분의 암장들이 문을 열었다. 다시 이 알록달록한 플라스틱 홀드들을 잡을 날을 그렇게나 그리면서, 그 기분이 어떨지 얘기를 종종 나누곤 했다. 엄청나게 신이 나려나 싶었는데 생각보다 덤덤했다. 여기저기 놓여있는 소독 용품들, 거리두기를 위해 테이프로 구획을 나눠 놓은 벽들, 마스크, 그리고 예약제로 인원을 제한하여 두 시간씩 진행되는 클라이밍 세션. 아직 진행되고 있는 이 판데믹에 그래도 가능한 위험을 줄여가면서 일상을 되찾는 이 과정이 눈물겨웠다.

 자리가 충분치 않아 아내는 먼저 가 세션을 시작하고, 나는 그 다다음 세션에 맞춰 암장을 찾았다. 저 멀리 케이브 아래로 아내가 신나게 양팔을 흔들고 있었다. 왠지 웃음이 나면서 이 예쁘고 화려한 색깔의 홀드들과 벽 사이 앉아 있는 그가 유난히도 반가웠다. 언제나 고약한 냄새가 나고 발을 옥죄는 암벽화마저 반가웠다. 역시나 몸은 무거웠고, 몇 무브 했다고 근육이 순식간에 펌핑되었다. 그렇게나 오래 쉬었던 만큼, 평소에 하던 그레이드 (등급)는 꿈도 못 꾸고, 머리로는 할 줄 아는 동작들을 근육들은 견뎌주지 않았다. 분명 할 수 있는 무브인데,  나의 마음과는 다르게 손의 그립이 알아서 스르르 풀리는 모습을 두 눈으로 보고 있으니 웃길 지경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몸은 여전히 어떻게 클라이밍을 하는지 알고 있었고, 홀드들을 당기면서 느껴지는 익숙했던 감각들이 돌아오는 것이 마치 매년 온 동네 아가판서스와 자카란다가 보랗게 피려면 다시 찾아오는 여름의 기운에 설레는 것과 같은 감정이었다.


 평소 같았으면 아주 짧게 느껴졌을 두 시간의 클라이밍 세션이 모처럼 너무나 길었다. 한 30분 만에 완전히 녹초가 되었다. 그래도 오랜만에 느끼는 이 공간과 분위기가 좋아서 가만히 앉아 다른 이들이 클라이밍을 하는 모습을 보고 있었다. 레깅스와 흰 크롭티에 긴 금발 머리를 늘어뜨리고 헤어밴드를 한 나보다 조금 키가 작은 남자가 있었다. 쉬지도 않고 계속 문제들을 찾아 오르다 떨어지기를 반복하면서도 너무나 신나 보였다. 친구인지 연인인지, 비슷한 체구의 머리를 뒤로 질끈 묶은 남자 하나와 함께였다. 잘 안 되는 문제도 몇 분째 열심히 문제에 붙어 보고, 서로 다른 방식들을 제안하고, 미끄러운 초크를 닦아 내기 위해 홀드를 브러싱 하고, 한 무브, 한 무브 높이 오를 때마다 엄청나게 응원해주고, 그러다 떨어지면 너무나 아쉬워하고, 정말 신나게, 키득키득거리며 웃는 모습이 너무나 해맑아 보였다. 그들을 보며 생각했다. 

 '정말로 재미있지. 그래, 나도 여전히 클라이밍이 좋구나.'

 아내와 내가 늘 같이 클라이밍을 하는 것은 아니었다. 아내는 아내대로, 나는 나대로 제 할 것을 할 때가 많았다. 그러나 모처럼 클라이밍을 하니, 그리고 같이 클라이밍을 하니 어찌나 신이 나던지. 나는 아내가 할 만한 문제를 열심히 찾아보았다. 아내는 내가 고른 문제들을 시도하여 성공할 때면 제법 뿌듯해했다. 나는 그가 허공에 있는 뭔가를 잡고 매달려서 더 높은 곳으로 부드럽게 몸을 움직이는 모습을 보는 것이 좋다. 나에게 클라이밍이라는 것을, 그 재미를 알려준 그가 자신도 여전히 클라이밍을 재밌어하는 표정을 보는 것이 나는 너무나 좋다. 

 오늘은 같은 세션을 예약했다. 어제도 열심히 했던 터라 오늘도 두 시간을 채우지 못하고 어서 집에 가서 콩나물 해장국이나 먹자며 일찍 암장을 나왔다. 여름의 늦은, 그러나 여전히 뜨겁게 주황색으로 물든 햇살이 흔치 않게 내 앞으로 자전거를 타고 가는 아내 뒤로 그림자를 드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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