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고도 먼 언어의 길.
영어를 공부하면서 느낀 건 배울수록 더 어렵다는 것이다.
오히려 영어를 아예 몰랐을 때가 더 잘했었던 것 같을 정도로 요즘 내 영어 수준은 바닥을 치고 있는 듯한 기분이다. 이렇게 느끼게 된 건 내 머릿속에 자동완성 기능 때문이다.
'극심한'이라는 단어를 봤을 땐 우리는 단지 '극심한'의 글자만 보는 것이 아니라 그 단어가 주는 느낌과 어감, 기분 등을 떠올린다. '고통', '아픔', '운동', '땀' 등등 여기서 언어에 대한 흐름을 잘 캐치하는 사람은 단어의 씨를 잘 뿌린다고 생각한다. 반대로 'severe'라는 영어를 보면 나는 여기서 자동으로 한국어를 떠올리고 또다시 머릿속의 번역기를 돌려야지만 입 밖으로 나오는 멀고도 먼 과정을 거치는 중이다.
내 머릿속의 흐름 파악 기능은 기름칠이 좀 더 필요하다.
영어 공부를 한답시고 해외 기사를 읽으면 숫자 계산하듯이 하나하나 해석하고 앉아있다.
주어와 동사에서 한번 끊어주고... 형용사... 부사... 모르는 단어... 흠... 그러다 보니 다른 사람들보다 기사를 읽는 속도가 훨씬 더디다. 중, 고등학생 때 공부를 제대로 해본 적이 없는 터라 그래서 그런 거다 자기 합리화를 하기도 하지만 가끔 혼자 분에 못 이겨서 '아, 나는 안되나 봐' 하고 단정 지을 때가 있다. 그 당시엔 영어 점수 조금이라도 얻겠다고 무식하게 교과서 본문을 통째로 외워서 했으니까.
솔직히 유학 중이라고 말하기 부끄러울 정도로 내 영어 실력은 형편없다. 그래서 나름의 노력을 하고 있지만 급한 성격 탓인지 빨리빨리 되지 않는 게 나를 더 나락으로 떨어뜨리곤 한다.
한글로도 논술이나 에세이를 써본 적이 없는데 캐나다를 오니 여긴 에세이 천국이다. 그것도 영어로. 혼자 눈물을 삼키며 에세이를 쓴 적이 여러 번이다. 한국어를 먼저 떠올리는 자동완성 기능은 제대로 된 영어 문장을 구사하는데 어려움이 있다.
예를 들면 '호랑이도 제 말하면 온다' 이걸 먼저 떠올리고 영어로 옮겨 적는 순간 'Tiger'가 들어가는 게 맞다. 하지만 영어는 'Speak of the devil'이라는 뜬금없는 '악마'라는 단어가 등장한다. 반대로 한국어로 생각해봐도, 정말 호랑이가 온다는 뜻이 아니라 문장이 갖고 있는 의미와 흐름으로 해석해서 우리가 알아듣는 것처럼. 내포되어 있는 뜻을 해석하는 공부를 좀 더 파악하려고 노력 중이다.
하지만, 가끔 영어자막을 틀어놓고 보는 미드를 볼 때 나도 모르게 재밌는 장면에 피식한 적이 있다. 그 전엔 영어자막을 틀어놔도 못 알아 들어서 아무리 재밌는 장면이어도 웃질 못했었다.
그때 혼자 스스로 놀라서 '어랏? 나 지금 알아들은 거야..?' 하며 기뻐한 적도 있다. 그때만큼은 스스로 대견해서
'그래, 또 아무도 뭐라 하지도 않았는데 왜 나 혼자 급하게 이래. 안된다고 단정 짓지 말자.'
'아직 시간이 필요해' 라며 혼잣말로 중얼거리곤 한다.
한국어 자동완성 기능이 아닌, 영어 자동완성 기능 추가를 위해 열심히 기름칠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