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땐 이런 일이 있었는데..
나는 평소에 음악을 다양하게 듣는 편이 아니다.
하나에 꽂히면 질릴 때까지 들어서 누군가에게 내 플레이리스트를 보여주는 게 쑥스럽다.
가끔은 EDM, 클래식, 트로트, 애니메이션 ost 등등 장르가 통합되어 있지 않아서 하나를 마니아처럼 파는 음악 장르는 나에게 존재하지 않다.
그래서 한 동안 질리도록 들었던 음악을 길가다가 혹은 플레이리스트에서 무작위로 틀어져 나올 땐 그때 당시의 날씨, 년도, 몇 월이었는지, 주로 내가 어떤 길을 걸으며 들었는지 아주 미세한 것 까지를 나를 불러일으켜 주곤 한다.
브라운 아이드 걸스 - 아브라카다브라
학창 시절 시건방 춤으로 전국을 강타했던 이 음악은 나를 완전히 사로잡았었다. 비트가 주는 강렬함이 학창 시절 내적 시건방 춤을 추며 길을 걸어가곤 했었다.
어느 날 얼굴은 알지만 인사는 한 번도 하지 않은, 그렇지만 왠지 모르게 서로 마음에 안 드는 학원 친구가 한 명 있었다. 무더운 여름날, 버스 안에서 에어컨 바람과 함께가 되어 이 노래를 들으며 학원을 가는 길이었다.
버스에 내리자마자 맞은편 횡단보도에서 그 친구가 보였다. 꽤나 먼 거리였지만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유치한데, 그땐 왜 이유 없는 경쟁심이 발동해서 쟤 보다는 무조건 학원에 먼저 도착해야지 하고 버스에 내리자마자 냅다 달리기만큼이나 빠른 경보로 학원을 향해 걸어서 질주하기 시작했다. 뛰지 않은 건 나름 여유 있어 보이고 싶었나 보다. 정말 빠른 속도로 걸어가고 있는데 도통 그 친구가 나랑 거리가 멀어지지 않았다. 그 친구도 맞은편에서 나의 경쟁심을 알아차렸는지 똑같이 빠른 걸음으로 나를 따라잡고 있는 것이다. 바깥에서 서있기만 해도 땀이 줄줄 나던 여름이어서 학원까지 가는 길에 노래를 듣는 척 여유롭게 행동하고 싶었지만 아브라카다브라의 비트를 반의 반으로 쪼개 맞춰서 걷는 바람에 학원에 도착했을 땐 땀범벅이 되었다.
승리는 나의 것이었다. 뒤늦게 따라 들어오던 그 친구가 나를 쳐다보던 눈빛은 잊을 수가 없다. 이 노래만 들으면 이름도 모르는 그 친구가 문득 떠오른다. 구릿빛 피부에, 진한 쌍꺼풀, 살짝 통통한 체격의 친구는 지금 생각하면 꽤나 귀여운 외모의 경쟁자였는데 말이다.
혹시라도 길에서 마주친다면 속으로 '엇, 아브라카다브라다'를 외치며 반가워할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