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잘 모르는 우아하게 말하는 방법.
살다 보면 남들이 봤을 땐 별일 아닌 일들이 나에겐 신경 쓰는 일로 다가와 은근히 건드릴 때가 있다.
예를 들면, 카톡 메시지 1이 없어지지 않는 것, 피자 끝 부분 빵만 남기는 것, 고심 끝에 골랐던 향수가 마음에 들지 않는 것. 등등.
나에게 최근에 이런 일이 생겼다.
내가 살고 있는 하우스는 집주인 부부도 함께 사는 집인데, 남편은 이탈리아계 캐네디언, 아내는 베트남계 캐네디언인 국제부 부이다. 아내분은 장난기도 있고 활기찬 성격의 소유자라 처음 입주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금방 친해질 수 있었다. 날씨가 좋으면 좋다, 무슨 음식 만드냐 하면서 부담스럽지 않은 일상 대화를 할 수 있는 집주인을 만나서 행운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며칠 전에 내가 이렇게까지 쫌생이였나? 싶은 생각이 나를 은근히 툭툭 쳤다. 저녁을 준비하는 와중에 집주인 부부의 저녁시간과도 겹쳐서 주방이 북적거리고 있었다.
그때 룸메이트 마키가 퐁당 초콜릿 케이크를 오븐에서 막 꺼낸 직후였다. 아내분은 이 초콜릿 케이크를 보면서 나에게 무슨 말을 했는데 사실 억양 때문에 제대로 알아듣지 못했다.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y.. e.. s?라고 했는데 내가 장난을 치는 줄 알았는지 웃으면서 나에게 장난식으로 머리를 살짝 툭 쳤다. 하하. 이게 화근이었다. 아무리 친해도 내가 정말 싫어하는 행동 중에 하나가 머리를 때리는 건데 - 나에게 있어서 머리를 '툭' 친다라는 표현은 없다 - 순간 뭐지..? 하는 욱! 하는 감정이 올라왔지만 이성으로 누를 수 있었다. 제삼자가 봤을 땐 정말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남들이 보면 '툭'도 아닌 '톡'일 수 도 있는 정도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쁜 의도가 전혀 들어있지도 않았고. 그냥 개인적인 트라우마 때문에 누군가 내 머리를 장난 식이라도 함부로 대하는 게 싫을 뿐이었다.
주방이 북적거리도 했고 그때 그 순간만큼은 잠시 잊은 채 마키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나는 전자레인지 바로 앞에 기대어 얘기하고 있었는데 뒤에 집주인 아내가 있는 줄 몰랐다. 그때 집주인 아내는 전자레인지를 쓸 거라며 기대고 있던 내 팔을 살짝 때리며 말했다. 물론 장난이고 그리 세지 않은 터치였다. 그러나 왠지 모르게 아까 머리를 톡 한 거며 방금 내 팔을 또 한 번 톡 한 게 저녁이 끝나고 방에 돌아와서도, 다음 날 아침까지 생각나는 것이다.
톡, 톡 한 것들이 내 신경을 은근히 거슬리게 했고 '남의 머리를 왜 때리지? 팔은 왜 때려? 장난이어도 싫어하는 사람 있으면 어쩌려고 이래?' 라며 혼자 속으로 화를 삭이는 모습을 깨닫고 내가 이렇게 까지 속이 좁았나? 싶고 심지어는 더 나아가서 내가 이렇게 폭력성을 내재하고 있었나? 하며 혼자 자아분열과 자아성찰을 동시에 하고 있었다.
한 살 한 살 먹을수록 예상치 못한 일을 마주쳤을 때, 특히나 그게 딱히 좋은 일이 아닐 때,
남들은 '왜 그런 거 가지고 그래', '신경 쓰지 마'라는 말을 들으며 나 자신한테도 '그래 뭐 이런 거 가지고 그러냐'로 어른인 척 둔갑하며 내 안의 진심을 회피하고 세상을 적응해 왔나 싶다. 아무리 주변에서 뭐라 해도 내 마음이 중요한 건데 말이다. 성숙한(다고 생각하는) 어른이기에 회사에서든 학교에서든 불미스러운 일을 마주쳤을 때 감정보단 이성을 내세우며 '우아하게' 말하는 것이 필요할 뿐이다.
아직은 부족한 '우아함'이지만 상대방과 나를 동시에 생각할 수 있는 '우아함'을 기대하며 속좁아 보일 수 있는 에피소드를 기록하며 오늘도 내 인생 다이어리에 하나 각인시키고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