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의 저녁을 즐기는 중
최근에 활동적인 일 하나가 생겼다.
하루 이틀도 아닌 매일 방구석 영화관과 카페를 방문하다 보니 엉덩이는 퍼질 만큼 퍼지고 이렇게 '사람'이 그리울 줄은 몰랐다. 이제는 넷플릭스와 유튜브에서 혼자 떠드는 '사람'말고 진짜 대화를 할 수 있는 무언가가 필요한 요즘. 예상치 못한 저녁이 있는 삶을 맞이하게 됐다.
토론토는 2020년 3월 중순쯤 모든 곳을 급격하게 문을 닫기 시작했고, 그로 인해 실업자들이 쏟아져 나왔다. 당연히 나도 일하던 곳에서 하루아침에 해고가 되었다. 옆방 일본 친구 메구미는 아침 일찍 준비를 하고 출근을 했지만 일찍이 퇴근하였고 결국 이 곳에 같이 사는 모든 룸메이트들이 백수 신세가 되었다. 다들 열심히 사는 사람들이라 일할 땐 집에서 마주칠 일이 많이 없었지만 지금은 아침, 점심, 저녁을 한 집에 머물다 보니 밥 먹는 시간이 비슷해져서 대충 몇 시쯤에 주방으로 나가면 오븐에 막 빼낸 빵 냄새나, 커피, 차 냄새를 맡을 때가 많아졌다. 같은 공간에 있어서 그런지 몰라도 생활패턴도 신기하리 만치 비슷해졌다. 아침엔 정말 쥐 죽은 듯이 조용하다 점심땐 한 두 명 주방에서 달그락 거리는 소리가 들리고 특히 저녁 5시 땐 모두 약속이나 한 듯이 모였다.
내 옆방 친구 메구미는 일본에서 영양 혹은 요리 쪽에서 일했다고 하는데, 그래서 그런지 가끔 만들어준 음식들이 정말 미친 듯이 맛있었다. 심지어 아낌없이 만들어 주는 친구라 하루가 멀다 하고 살이 늘어가는 걸 체감하고 있다. 지금은 이사를 갔지만 같이 살던 케이티는 메구미의 음식을 정말 좋아했다.
한 번은 소바, 가락국수, 일본 음식에 대한 얘기가 한창 오가고 있었다. 한국에서 일본 음식을 즐기곤 했었다라며 쯔유에 담가 먹는 소바가 너무 그립다고 열과 성을 다해서 말하고 있었다. 그때 메구미가 자기한테 소면이 있다며 쯔유 만드는 건 어렵지 않다고 내일 저녁에 먹자고 하는 것이다. 그리고 한국말로 하면 계란말이인 다마고 야키까지도. 저건 내가 처음 먹어본 따뜻한 쯔유였는데 쯔유는 무조건 차가운 거 아닌가 해서 얼음을 넣으려다가 따뜻하게도 먹는 경우가 있다며 한번 먹어보라 했다. 아.. 정말 맛있었다. 단맛과 짠맛이 적절히 어우러졌고 김까지 살짝 넣으면 김 냄새가 살짝 풍기면서 면과 함께 입 안에서 소용돌이치는 맛! 이 음식을 해주기 전에도 메구미는 여러모로 요리를 자주 해주던 친구라 항상 다 먹고 나면 땡큐 메구미를 잊지 않았다.
손에 꼽는 배 터지는 날 중 하나이다. 사진으로 봤을 땐 세명이 먹기에 적당해 보이지만, 저 팬의 깊이가 생각보다 깊어서 거의 5인분 되는 양의 크림 파스타와 함께 저녁을 함께 했다. 이 날의 메인 셰프는 마키였다. 저 크림 파스타가 생각보다 간이 세지 않았어서 카프레제나 간이 되어있는 닭요리로 모든 음식이 적절히 조화롭게 이뤄졌다. 5시쯤 되니 어디서 달그락 거리는 소리가 커지기 시작하더니 한 두 명씩 자연스럽게 주방으로 모였고 나도 신나게 저녁을 맞이하러 나갔다. 카프레제 소스, 크림 파스타 소스 모든 소스를 직접 만든 거라 배가 불러도 맛있어서 계속 손이 갔다. 결국 저 파스타와 감자 샐러드는 조금 남기고 말았다. 그 감자 샐러드는 다음 날 이렇게 활용되었고 오늘도 잊지 않고 땡큐 마키!
크림 파스타 만찬 다음 날, 나는 이 친구들을 위해서 새우볶음밥을 만들어줬다. 솔직히 요리엔 자신이 없어서 비'공식' 시간 5시보다 조금 더 일찍 내려와 어떻게 하면 맛있을까 하며 고대하는 마음으로 마늘을 다졌다. 볶음밥에 소시지도 넣고 싶었는데 어랏 냉장고에서 소시지을 꺼낸 순간 악취가 풍겼다. 소시지도 이렇게 상할 수가 있단 말이야..? 몇 개 먹어보지도 못하고 결국 다 버렸다. 아쉽지만 이미 많은 재료가 들어갔으니까 다들 좋아해 줬으면 하고 열심히 볶았다. 결과는? 성공적! 굴소스가 한 건 해줬다. 어우 내가 만들었지만 너무 맛있는데..?
저 옆에 있는 샌드위치의 내용물은 어제 남겼던 감자 샐러드를 이용해 마요네즈와 함께 다시 재탄생되었다. 옆에서 메구미가 뭔가를 하고 있길래 봤더니 저 샌드위치를 만들고 있었다. 오늘도 좋은 탄수화물 파티였다.
우리는 요즘 매일 저녁이 있는 삶을 보낸다. 하루하루 돌아가며 셰프가 되고 손님이 되고 어시스턴트가 되어준다. 서로 무엇을 좋아하는지 물어보며 만들어가는 음식이 지금 이 순간 더 특별하게 다가온다. 매일 배부르다며 코로나가 끝나고 복귀했을 때 살이 너무 쪄서 사람들이 우리를 못 알아볼 거라고 하지만 신경 쓰지 말라! 지금 우린 미래에 곱씹을 추억을 만들고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