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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in진오 Oct 03. 2016

그대가 걷는 길 #6  외로움과 마주하기

서른 살, 퇴사 후 떠나는 유럽여행_이탈리아 남부

외로움, 혹은 고독


처음 유럽에 혼자 오기로 결정한 후에

어느 정도 외로움과 마주할 각오는 되어있었지만

막상 머나먼 타지에서 맞이하는 외로움의 크기는

내가 상상한 것보다 크고 묵직하게 다가왔다.


로마에서 약간 느끼고는 있었지만

동행들을 만나며 애써 틀어막고 있던 그 설명 못할 감정이

남부에 도착하는 순간 폭포수처럼

와르르 쏟아져 내려 버린 듯하다.


어쩌면 한국사람이라고는,

사실 동양인 조차 찾아보기 힘든

이곳 환경이 이러한 감정의 분출을 자극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아무튼 남부로 넘어오고 나서 드디어 나는

외로움, 혹은 고독과 마주 했다.




내가 이탈리아 남부를 선택한 이유는

대부분은 여행객들이 선택하는

베니스-피렌체-로마로 이어지는

전형적인 루트를 따라가고 싶지 않았던 것도 있지만

바다를 좋아하는 나의 성향이 많이 반영된 듯하다.


<나폴리 해변, 처음으로 지중해를 보다>


내가 향한 곳은 이탈리아 남부의 중심 나폴리이다.

이 곳이 치안이 안 좋다는 것을 나는 여기 와서 알게 되었는데

거리가 여느 도시에 비해 조금 더럽고 가난한 느낌이 많이 나긴 하지만

그래도 사람이 살아가는 도시인만큼

내가 조심만 한다면 크게 위험할 일은 없을 듯하다.

그래도 중앙역 주변에서는 항상 조심하길 바란다.


<나폴리 골목, 오랜만에 보는 자연건조 방법>


지중해의 바다는 내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푸르고 깊었다.

좋은 음식을 먹거나 좋은 것을 봤을 때

좋아하는 사람이 먼저 생각나듯

끝없이 펼쳐진 수평선과 불어오는 바닷바람,

내가 좋아하는 모든 것이 모여 있는

바로 이 곳에, 누군가와 함께 있는 것이 아니라

나 홀로 덩그러니 서 있다는게

아마도 외로움을 자극 한

또 한 가지의 요인이 아니었을까..


앞 서 이야기했듯이 이탈리아의 남부는

한국사람뿐만 아니라 동양이 자체를 찾아보기 힘들다.

남부가 위험하다는 인식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대부분 투어를 끼고 방문하기 때문에

간혹 우르르 몰려다니는

한국인들을 보긴 하지만

나와 같이 개인적으로 다니는 여행객을 찾아보기란

여간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인지 유독 오늘따라 투어객들의 모습에

반가움을 느낀 것인지도 모르겠다.





나폴리의 주변에는 3개의 섬이 유명하다


카프리, 이스키아, 프로치다


이 중에서 한국인에게 가장 많이 알려지고 유명한 곳이

바로 카프리 섬일 것이다.

실제로 한국인뿐만 아니라 외국 관광객들도

카프리섬을 많이 찾지만

나는 친구가 알려준 정보를 바탕으로

오히려 현지인들이 더 좋아한다는 섬,

이스키아로 향했다.


<이스키아 섬, 바다가 말도 안되게 푸르다>


이스키아 섬은 3개의 섬 중에 가장 큰 섬이며

나폴리 항구에서 배로 약 1시간 정도 떨어져 있다.

온천으로 유명하기 때문에 만약 시간적인 여유가 된다면

이 섬 안에서 1박 정도는 하며 여유 있게

섬을 돌아보며

온천도 함께 즐기기를 추천 한다.

섬 안에서 자동차, 스쿠터, 자전거 등을 렌트할 수 있기 때문에

섬을 둘러보는 것이 어렵지는 않으나

당일 치기로는 아무래도 볼 수 있는 것이

제한 적인 듯하다.

이스키아 섬 항구 근처에 성[Castle Aragonese]이 하나 있는데

 그곳에 올라가면 이스키아 섬 전체를

전망할 수 있으니

시간적 여유가 많이 없다면 이 곳이라도

꼭 올라가 보길 바란다.




죽기 전에 꼭 봐야 하는 그곳, 포지타노


어디에서 선정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탈리아 남부에 위치한 작은 도시 포지타노는

우리가 죽기 전에 꼭 봐야 하는 장소 1위에 선정되었다고 한다.


<포지타노 , 죽기전에 봐야할 도시 1위의 위엄>


가파른 절벽 위에 자리 잡은 수많은 건물들이

꽤나 인상적인 이 곳은

사람들이 왜 죽기 전에 꼭 봐야만 하다고

이야기했는지 짐작할 만하다.


하지만 관광지인 만큼 나폴리와 비교하였을 경우

물가가 비싼 편이며

이동이 쉬운 편은 아니니 투어가 아닌

개인적으로 오는 사람들은 교통편을 잘 확인하고 오길 바란다.


내가 경험한 바로는

올 때는 버스 갈 때는 배를 이용하는 것이 가장 좋지 않을까 한다.

이야기했듯이 포지타노는 가파른 절벽 위에 자리한 도시인만큼

걷기 시작한다면 계단과의 싸움을 할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한다.

버스 정류장이 마을의 위쪽에서 내려주니

위에서 전체적인 전망을 감상하고

해변까지 걸어 내려가며 골목골목 구경한 뒤에

바다를 보며 조금 쉬다가 항구에서 배를 타고 넘어가는 게

비록 교통비는 조금 더 들겠지만

본인의 체력과 정신건강을 위한 길이다


도착했을 때 날이 흐리다 싶더니

이내 늦은 오후에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유럽에 온 이후로 처음으로 비가 내리는 것을 본 것인데

만약 오늘도 날이 좋았다면

나는 아마 유럽은 비가 오지 않는 4계절 내내

태양이 내리쬐는 곳이라고 오해했을지도 모른다.




남부에 와서 보고자 했던 거의 모든 곳을 둘러보고

마지막 3일 차에는 친구가 추천해 준 호텔에서

휴식을 취할 계획이었다.  

몸이 아직까진 그렇게 피곤하진 않지만

뭔가 이탈리아로 넘어와서 감정적인 에너지 소비가 많아진 듯해서

오히려 사람들과 덜 부대끼면

조금은 나아지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었는데

숙소를 나서는 아침부터 여전히 이 곳에는

비가 내렸다.

왜 하필이면 편히 휴식을 취하고자 할 때

비가 오는 것인지

눈 앞에 보이는 회색빛 바다가 참으로 원망스러웠다


설상가상으로 오늘은 일요일이라

호텔로 가는 버스가 운행을

하지 않기 때문에 택시를 타야 한다기에

2 유로면 갈 수 있는 곳을 90유로를 지불하고 택시를 탈 수밖에 없었다.

왠지 이탈리아를 온 것 자체가 후회가 되는 하루였다


그러다 문득 창밖으로 그 원망스러웠던

회색빛 바다를 보았는데

왜 이런 생각이 갑자기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확실히 아까와는 조금 다른 마음이 들었다.


나는 이 생각을 놓치고 싶지않아

가방에서 펜과 종이를 꺼내들었다.


<회색빛 바다, 푸른 바다와 사뭇 대조적이다>


회색빛 바다


회색빛 바다를 보며 갑작스레 든 이질감과

한가지 생각


아까 이야기했듯이 나는 바다를 좋아한다.

하지만 나는 정말로 바다를 좋아했던 것일까

아니면 푸른 에메랄드 빛 바다를 좋아했던 것일까


회색빛 바다라고 해서 바다가 아닌 것은 아니다.

사실 바다는 변한 것이 없이 그대로다.

다만 주변 환경에 따라 하늘이 푸르르면 푸른 모습으로

어두우면 어두운 그 모습을 그대로 투영할 뿐이다.


주변 환경이 변한다고 해서

바다의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저 회색빛 바다 아래는 어제와 다름없이 평온한

일상이 반복되고 있을 터였다.


하지만 나는 바다가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에 따라

좋아하기도 하고 원망스러워 하기도 했다.

바다는 변하지 않고 언제나 그대로 였는데 말이다.


우리의 인생도 마찬가지 아닐까

직장 안에서의 나, 친구들 사이에서의 나,

가족들 사이에서의 나

내 주변 환경에 따라서

 찬란하게 빛날 수도 때로는 잿빛처럼 어두울 수도 있지만

그 안에 나라는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아니, 변하지 말아야만 한다


지금 나에게 필요 한 건 주변 환경에 흔들리지 않는

바다와 같은 모습은 아닐까?


한참의 생각 끝에 다시 한번 창밖으로

바다를 바라보았다.

왠지 택시비 90유로가 더는 아깝지 않았다.

이제는 확실히 말할 수 있을 듯하다.


나는 바다를 좋아한다.

푸른 에메랄드 빛 바다도 흐린 회색빛 바다도

그 자체만으로..




도착한 숙소는 기대 이상으로 훨씬 더 좋았다

남부에 넘어온 이후로 줄 곧 괴롭히던

외로움이라는 감정도

어느새 많이 다스려진 후였다.

그동안 열악한 Wifi 환경으로 인해 전자책을 거의 읽지 못했는데

넓은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전자책을 다운 받고 책을 읽기 시작했다


바다 전망을 배경으로 파도소리를 들으며

책을 읽는 것이 꽤나 사치스럽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런 감정적 사치라면 얼마든지

비용을 지불할 용이가 있다.


사실 나는 여행을 떠나기 전에

이러한 감정적 사치를 마음껏 향유하는 것을

꿈꾸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아니, 사실 그랬다


< 외롭냥, 고양이는 내 친구>


처음 이 곳으로 넘어와 외롭다고 느꼈을 때  

'나는 도대체 왜 이 곳에 혼자 와있나?' 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

하지만 하나의 정답을 찾으려 하기보다는

많은 질문을 던지며 이 외로움이라는 감정과 마주했던 것 같다.


답을 얼마나 빨리 얻는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내가 지금 헤쳐나가야 할 상황에서 정확한 질문을
얼마나, 어떻게 던지는 것이 중요하다.
이때 내 인생은 다른 누구의 것도 아닌 내 것이 된다.  

<공자의 인생 강의 : 논어, 인간의 길을 묻다 中>


비단 외로움뿐만 아니라 살아가며

마주치게 되는 수많은 상황에서

우리는 남들로부터 정답을

구해야 하는 것이라 아니라

끊임없이 질문하고 대화해서

기어코 스스로 나의 것을 찾아 내야만 한다


그러한 과정 속에서 좋은 질문을 계속 던지다 보면

아마 올바른 방향으로 걸어가는 길이

보다 정확히 눈 앞에 보여질 것이다.


이탈리아 남부에서 나는 어렴풋이나마

사색을 통해 나와의 대화하는 방법을

알아가기 시작한것 같다.


이제 이탈리아 여행을 마무리하고

본격적인 여행의 시작, 스페인으로 넘어간다.


Thanks sea of Ita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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