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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in진오 Oct 30. 2017

당연한 이별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너를 만나고 헤어지기까지

2004년 계절도 기억나지 않는 오래전 어느 날,


엄마는 작고 겁에 질린 눈을 가진 아이를 집으로 데려왔다. 털이 덥수룩해 못나보였던 아이. 계속 집에서 개 키우길 반대하며 우리와 실랑이를 벌이던 아버지는 3일째 되던 날 술에 취해 들어와 소파에 앉아 앞에서 촐랑거리며 재롱을 부리는 그 아이의 모습을 보고 ‘사랑이’라고 불러주었다. 그때부터 그 아이는 사랑이가 되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교를 입학할 때도,

군대에 입대하고 전역을 할 때도,

대학을 졸업하고 회사에 입사를 할 때도,

회사를 그만두고 두 달 동안 집을 비웠을 때도,


언제나 집으로 돌아오면 그 아이가 있었다.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면 어김없이 문 앞으로 뛰어나와 꼬리를 흔들며 나를 맞이해 주었다. 언제나 그랬고, 그래서 당연하게 생각했다. 영원한 것은 없음을 알고 있었으면서도 그 아이는 언제나 집으로 돌아오는 나를 반겨줄 수 있을 거라 믿었다.



조금씩 야위어가는 그 아이를 보면서, 나이가 들었기 때문이라며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다. 15살이 되었으니 사람으로 치면 100살이 넘는 할머니라고, 기력이 없는 그 아이의 모습을 세월의 흐름 속에 당연한 것으로 여겼다. 그렇게 생각할 거였으면 이별을 준비했어야 했다.


그렇게 늙어가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일 거면, 언젠가 다가올 이별도 당연히 받아들여야 했다.

 



2017년 10월 28일


그렇게 그 아이는 조용히 숨을 거두었다. 아니, 사실 조용히 숨을 거두었는지, 힘들어하며 갔는지는 알 길이 없다. 고작 두 시간, 아무도 없던 빈집에서 그 아이는 우리를 기다려주지 않았다. 누나에게 울먹이며 전화가 왔다. 그 아이가 숨을 쉬지 않는다며, 눈이 풀리고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는다고 했다. 나는 '숨을 쉬지 않는다'는 누나의 대답을 듣고 나서도 계속해서 물었다. 흔들어 봤는지, 눈동자는 어떤지, 똥은 쌌는지 누나는 대답했다.


"숨을 안 쉰다고.."


집으로 가서 누워있는 그 아이를 봤다. 마치 자고 있는 듯 조용히 누워있었다. 그 모습이 죽은 것이라 믿고 싶지 않았다. 평상시와 같이 조용히 잠들어 있는 것만 같았다. 평소에도 감정표현이 적어 주변 사람에게 핀잔을 듣곤 하던 나는 참 많이 울었다. 어디서 그 많은 눈물이 나오는지 알 수 없을 만큼 눈물이 쏟아졌다. 그 아이의 몸은 여전히 따듯했다. 금방이라도 다시 심장이 뛰고 숨을 쉴 것만 같았다.


당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이별이란 존재하지 않았다. 



2017년 10월 29일


할머니가 잠들어계시는 시골 선산에 그 아이를 묻어주기로 했다. 엄마는 한사코 화장하는 것을 반대했다. 불구덩이에 그 아이를 넣고 싶지 않다고 했다. 시골로 내려가는 길, 하루가 지났을 뿐인데 그 아이의 몸이 많이 차가워져 있었다. 그 아이는 차 타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오래된 차라 승차감이 별로여서 였을까, 아니면 좁은 공간이 답답해서였을까, 차 안에서 한시도 가만히 있질 못하고 힘들어했다.


하지만 오늘은 차 안에서 참 조용하다.

내려달라고 울어주면 얼마나 좋을까, 답답하다고 바깥공기를 쐬게 해달라며 창문을 긁어대면 얼마나 좋을까.


할머니 무덤에서 조금 떨어진 소나무 아래에 그 아이를 묻어주기로 했다.

혹시 산짐승이 무덤을 파헤칠까, 꽤 깊게 구덩이를 팠다. 이제 그 아이를 묻어주어야 하는데, 차마 그 차가운 구덩이 안에 그 아이를 내려놓지 못했다. 그렇게 나와 가족들은 그 앞에서 그 아이를 품에 안고 한참을 울었다. 엄마가 말했다. "자꾸 이러면 얘도 편하게 가지 못한다고, 이제 그만 보내줘야 한다"라고, 하지만 내가 품 안에서 이 아이를 놓아버리는 순간, 이제 두 번 다시는 보지 못할 것을 알기에, 차가워진 몸이라도 다시는 만져 볼 수 없기에 나는 쉽게 그 아이를 품 안에서 놓지 못했다.


한참을 울다 그 아이를 보내줬다. 흙으로 무덤을 다 메울 때쯤 누나는 울며 이야기했다. "마지막으로 한 번 만 더 안아볼걸.." 이제 두 번 다시는 그 아이를 품에 안지 못한다. 정말 두 번 다시는..


집으로 돌아와 그 아이가 누워있던 곳을 바라봤다. 작고 둥근 회색의 쿠션 위에서 그 아이는 한 동안 계속 누워만 있었다. 아버지는 이제 살만큼 살았으니 그만 편하게 보내주라고 했고, 엄마도 그 생각에 일정 부분 동의하듯이 아픈 게 나아도 걷질 못하면 무슨 소용이냐며, 어쩌면 우리의 욕심일지도 모른다고 했다. 


어쩌면 정말 그랬을지 모른다. 더 이상 걷지도 못하는 삶이 그 아이에게는 괴로웠을 것이다. 스스로 물도 음식도 먹지 못해 주사기로 먹여줘야 하고, 누운 자리에서 그대로 볼 일을 봐야 했으니, 차라리 죽는 것이 나았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 아이는 말을 하지 못하니, 나에게 죽고 싶다고 이야기하지 않으니 포기하지 말아야 했다.


핸드폰 사진첩을 둘러보며 14년이 넘는 시간 동안 남겨 놓은 사진이 100장도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별을 미리 준비하지 않았기에, 보고 싶으면 언제나 집으로 돌아오면 되었기에, 굳이 사진을 찍어두지 않았던 걸까. 그 아이를 추억할 수 있는 게 많지 않다는 것이 나를 더 괴롭게 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나야 그 아이를 덤덤하게 추억할 수 있을까. 지금은 시간이 많이 필요한 듯하다. 아무렇지 않은 듯 일상을 살다가도 문득 떠오를 때면 담담하게 넘기기가 힘들다. '있을 때 잘하라'는 말을 살면서 수없이 듣고 해왔지만, 떠나보내고 나서야 나는 또다시 후회한다. 함께 있을 때 더 잘해 주지 못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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