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차선책을 생각해두는 편이었다. 잔걱정이 많은 성격 탓에, 차선책은 나의 위로이자 임시방편이었기에. 일이 잘 풀릴 때도 마냥 그 순간의 감정을 즐기기보다, 일어날 일들을 주의하고 경계했다. 해가 지날수록 조심성이 많아지면서, 불안감이 더해지는 시대가 도래하면서 차선책에 더욱 집착한다.
입사 전, 누구나 그러하듯 또다시 바보 같은 생각을 했다. 이 산만 지나면 한동안은 나름 또 평온하겠노라고. 차선책은 당분간 없을 거라고, 이 산만 넘자며 스스로에게 말했다. 어른들이나 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뭐 해 먹고살지” 말은 나의 단골 푸념이 됐다.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있으면서도, 온전한 청춘이 내뱉는 푸념이라니. 청춘을 건너뛴 채 어른이 된 그리 유쾌하지만은 이 기분.
먼 미래 같이 느껴졌던 버킷 리스트들을 당장 눈 앞의 목표로 둬야 할 것 같은 요즘. 자잘한 글들을 모아 책을 출간하고, 막연하게 “나의 것”을 하고 싶다던 청춘의 바람은 푸념의 대안이 되어 버렸다. 손에 쥔 모래알처럼 형태를 잃어버리기 전에 차선책을 실행시켜야겠다. 다시 수많은 모래알들과 섞인 채 그저 그렇게 밀물과 썰물에 떠다니기 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