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주노 Apr 01. 2018

여름, 겨울, 파리 그리고 나

  지난 2016년 여름 무더웠던 로마의 저녁, 홀로 피우미치노 공항에 앉아 서울행 비행기를 기다리던 때가 떠오른다. 각기 다른 행선지를 향해 갈 사람들의 표정은 아쉬움과 설렘 크게 두 가지로 나뉘었다. 공항이라는 공간 안에는 참으로도 이질적인 감정들이 오고 간다. 새로운 도시에 도착한 기쁨,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야만 하는 아쉬움이 한 공간 안에 존재한다는 것은 늘 아이러니한 느낌을 준다. 한 달 간의 길고도 짧은 유럽 여행을 끝마친 그때의 나는 아쉬운 표정을 지으며 이런 긴 여행을 다시 할 수 있을지 혹은 유럽에 다시 올 수 있을지 한참을 생각했다. 그리고 나 또한 나의 자리로 돌아가기 위해 아쉬움을 뒤로하고 사람들의 행렬에 파묻혔다.


어느 누구나 자신이 경험해 보지 못한 것에 대해 궁금해 하기 마련이다. 만일 그것이 여행지라면 그 정도는 배가 될 것이고. 나에게도 주위 사람들이 유럽 여행지 중 어디가 가장 좋았냐고 물어왔다. 그때마다 항상 내가 꼽은 도시와 순간은 단 하나, 파리였다. 앞선 브런치에도 적었지만 파리의 여름은 너무도 아름다웠다. 기분 좋은 햇살과 살랑이는 바람 덕에 걷는 순간순간이 그저 행복했다. 사람들은 낮이면 노천카페에 앉아 저마다의 시간을 즐기고, 늦은 밤이 되면 에펠탑 앞 그리고 센 강 주변에서 맥주를 즐겼다. 커피도 즐기지 않는 취향이지만 때로는 이유 없이 노천카페에 앉아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보며, 아름다운 파도와 같은 프랑스어를 들으며 시간을 보냈다. 녹색이 가득한 파리의 여름은 내게 너무도 선명한 기억으로 자리 잡았다.


그러다 문득 그때 겪었던 파리의 겨울이 궁금해졌다. 싱그러웠던 여름의 파리를 뒤로 하고, 겨울의 파리를 보고 싶었다. 그리고 얼마 전, 파리에서 짧은 겨울을 누리고 왔다. 생각보다 너무 추운 날씨가 이어졌지만 내 기억 속 존재하던 파리의 모습은 그대로였다. 홍수로 인해 높아진 센 강의 수위만 달라졌을 뿐, 모든 게 좋았다. 여전히 에펠탑은 정시가 되면 반짝였고 샹젤리제 거리의 수많은 사람들도 여전했으며 도시는 겨울이 되어도 여유로움이 가득했다. 누군가는 한 도시에 오래 있는 걸 싫어할지도 모르지만 이번에도 나의 파리는 시간이 부족하게만 느껴졌다. 또한 해가 길었던 여름과 달리 금세 어둑해지는 하늘은 왠지 모를 조급함까지 느끼게 했다. 분명 그때의 여름과 같은 시간이 흐르고 있음에도 조급함을 느꼈던 건 일정이 짧아서인지 어둑해지는 하늘을 바라봐서인지는 모르겠다. 그 순간순간마다, 참으로 덧없는 행동이지만 나의 시간만 느리게 갔으면 좋겠다는 이기적인 생각을 하기도 한다.


야속하게도 연일 매섭던 추위는 돌아갈 날이 다가올수록 물러갔다. 사람들의 옷차림이 조금은 가벼워지고 낮아진 센 강의 수위를 따라 걷는 이들도 그리고 벤치에서 여유로운 한 때를 즐기는 이들도 많아졌다. 사람을 편안하게 만드는 날씨 덕에 걷는 시간도 많아졌고 여러 생각에 잠기는 시간 또한 늘어났다. 여행지에 와서 모든 일들을 뒤로할 성격이 못 되는 탓에, 한국에서 맞이할 일상을 걱정했다. 숙소 발코니를 통해 반짝이는 에펠탑을 바라보던 마지막 밤, 파리에서의 지난 기억을 정리하기보다 앞으로 한국에서의 날들을 정리한 내가 야속했다. 돌아오는 날 거짓말처럼 거리에는 바람도 추위도 없었다. "날씨가 이 정도로 계속 좋았다면...", 부질없는 생각을 뒤로 한채 공항으로 향했다. 막 도착한 것으로 보이는 사람들과 어깨를 엇갈리며 다시금 체크인 카운터의 행렬에 파묻혔다. 그리고 그 날 인천공항에는 비가 내렸다.

 


작가의 이전글 서서히 서서히 그러나 반드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