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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노 Apr 05. 2018

지극히 내가 좋아하는 것들에 관하여

 세상에 나만 아는 취향과 취미는 없다. 초등학교에 막 입학하여 첫 담임선생님께 날 소개할 때도, 어쩌면 그보다 훨씬 전인 어린이집에서부터 '내가 좋아하는 것들'은 공유되었다.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중, 고등학생 때 역시 새 학기가 시작되면 어색한 적막을 깨는 첫마디는 “취미가 뭐야?”, “좋아하는 게 뭐야?” 였으니 곧 나의 취향과 취미는 지금 인간관계의 초석이었는지도 모른다.


정확히 기억도 잘 나지 않는다. 중학생 때부터였는지 더 이전 일인지. 항상 자기소개서 취미 란에, 처음 만난 친구들에게 일관된 취미를 말해왔다. 자연스레 같은 취미를 공유했던 친구들끼리 친해졌고, 인간관계를 편하게 맺게 해 준 덕인지 그때부터 내 취미는 농구가 됐다. 어느새 내가 지극히 좋아하는 것들에 대해 생각하기보다 친구들과 그리고 주변 사람들과 공감할 수 있는 취미와 취향만을 가져왔다.


사람들은 취미와 취향을 매개로 관계를 형성하고, 사회는 이를 개인의 평가 기준으로 삼는다. 한 사회 내에서 공유되는 가치관에 반하는 취향과 취미를 가진 이는 이방인 취급을 받아 도태된다. 이는 입사 면접 과정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면접관에게 좋은 인상을 주는 취미가 있어 그것에 자신을 껴맞추는 사람들이 있다니 참 이상한 일이다. 또한 대다수가 좋아할 만한 취미를 가진다고 해서, 같은 취향을 지녔다고 해서 그 가치가 폄하되기도 한다. 어느덧 취미와 취향도 하나의 스펙이 되어버린 지금, 다른 이들과 같은 것을 깊게 가지는 게 맞는 것인지 혹은 나만 누릴 수 있는 것을 가지는 게 맞는 것인지 도무지 알 길이 없다.


브런치를 쓰기 시작한 지 꽤 시간이 흘렀다. 글을 쓴다는 것은 참 어렵다. 타인의 취향과 취미를 관통할 수 있어야 하는 행위임에 섣불리 주제를 택하여 적어 내려가는 것이 쉽지 않다. 그러나 본격적으로 글을 쓰면서부터 '지극히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 서서히 보이기 시작한다. 문자라는 매개체를 통해 '나'를 보여준다는 것은 흥분되면서도 행복한 일이다. 사실 타인과 동일한 취향과 취미를 가지든 나만의 것을 가지든 분명한 점은 하나다. '지극히 내가 좋아하는 것들'에 관하여 번호를 매겨서라도 좋으니 정리해보는 시간을 가지는 것. 하물며 타인과 같은 것들을 공유할지라도 '지극히'라는 단어는 우리를 더욱 특별하게 만들어 주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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