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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용한 Jun 21. 2016

고양이가 보내온 SOS

전원고양이 중에 산둥이란 녀석이 있었다. 

한번은 나를 보고 발라당을 하더니 만지려고만 하면 몇 미터쯤 달아나 다시 발라당을 하고. 

내가 쫓아오지 않으면 뒤돌아보고 다시금 냐앙냐앙 하면서 또 발라당을 했다.

그제야 나는 녀석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 것도 같았다.

녀석은 나를 부르고 있었던 거다.

다시 말해 어디론가 나를 데려가려는 거였다.

해서 나는 녀석의 뒤를 졸졸 따라갔다.

묏등을 지나 100미터쯤 따라가자 문 닫은 축사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일단 멈춤.

그때였다. 

약 10여 미터 거리, 축사 앞 텃밭에 조막만 한 아기고양이들이 옹기종기 앉아 있었다.

녀석들은 배수구 속을 드나들며 장난을 치기도 하고,

고추밭과 오이밭 고랑을 오르내리며 무료함을 달래기도 했다.

모두 다섯 마리였다.

그러니까 산둥이 녀석이 나에게 구조 신호를 보낸 것이 바로 저 녀석들 때문이었던 거다.

내 맘대로 이해하자면 산둥이는

"우리 아이들이 며칠째 굶고 있어요. 우리 애들 좀 살려주세요!"

라고 내게 SOS를 보낸 것이다.

먹이원정을 다니기에는 너무 어리니, 저 불쌍한 아기들에게 사료 좀 주고 가라고.

내가 주머니 속에서 사료 봉지를 꺼내느라 바스락거리자 

축사 앞에서 놀던 아기고양이들이 일제히 놀란 토끼눈을 하고는 나를 쳐다보았다.

눈 앞에 낯선 사람이 떡하니 서 있자 녀석들은 기겁을 하고 혼비백산 달아나기 시작했다.

구멍이 작은 배수구 속으로 숨은 녀석, 

구멍이 뚫린 하우스 속으로 들어간 녀석,

미처 몸을 숨기지 못해 얼음 자세로 이쪽을 보는 녀석.

이왕 녀석들을 놀라게 한 김에 나는 사료 봉지를 통째로 그곳에 내려놓았다.

그러자 나를 데려온 산둥이는 '됐어, 그만 가봐!'하는 눈빛을 보냈다.  

말이 통하지 않아도 고양이는 이렇게 나와 의사소통을 한 것이다. 

산 아래 텃밭에서 보았던 아기고양이들의 눈부신 모습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다행히 사진은 찍어도 된다고 해서 사진 몇장은 건져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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