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용한 Jun 27. 2016

등에 고래무늬 있는 고래고양이

고양이 등에 고래가 있다. 전원고양이 중 한 녀석은 돌아앉은 등짝에 영락없이 고래를 닮은 무늬가 선명하다. 배와 목은 하얗고 이마와 등과 꼬리가 까만 고양이. 등짝과 꼬리의 까만 무늬가 만들어낸 고래. 그것은 이제 막 수면을 튀어올라 하늘로 힘껏 점프하는 범고래의 모습과 흡사했다. 바다에는 실제로 고양이고래라고 이름붙인 고래가 있다고 하니, 이 녀석은 고래고양이라고 부르면 되겠다. 고래고양이. 녀석이 등근육을 조금씩 움직일 때마다 등짝의 고래도 조금씩 용틀임한다. 녀석이 잔디밭에 앉아 있다가 나무의자에라도 폴짝 올라서면 마치 고래 한 마리가 수면 위로 솟구쳐 오르듯 멋진 장면이 연출된다. 

꼬리지느러미를 흔들며 하늘로 솟구쳐 오르는 고래 한 마리. 고양이가 움직일 때마다 고래는 다이내믹하게 춤을 추곤 했다. 이럴 땐 이런 말이 딱 어울린다. “고양이는 고래도 춤추게 한다.” 고양이가 살짝 고개를 숙이자 고래도 수면에서 점프를 하듯 유선형으로 구부러진다. 고양이가 잔디밭에 누워버리자 고래는 형체도 없이 사라졌다. 바닷속 깊이 사라져 버린듯. 고양이는 고래도 춤추게 한다. 고래는 고양이가 하는대로 하늘로 솟구쳤다가 우아하게 수면을 점프하면서 지느러미를 흔들었다. 고양이가 꼬리를 흔들 때마다 고래는 신나게 춤을 췄다. 너무 격하게 춤을 춰서 목이 타는지 고래는 잔디밭을 허위허위 헤엄쳐가 수돗가 바가지에 고인 물을 마셨다.

고래는 잔디밭에 앉아 그루밍을 하고, 옆에 앉은 팬더고양이와 장난도 치고, 나무 울타리 그늘에도 철푸덕 엎드려 쉬었다. 이제 내 눈에는 고양이가 네 발 달린 고래로 보였다. 저것은 고양이의 탈을 쓴 고래가 틀림없어, 혼자 중얼거리며 나는 고래의 일거수일투족을 의심의 눈초리로 살펴본다. 어쩌다 바다를 떠나 이 깊은 내륙까지 왔을까. 와서는 왜 그토록 바다로 돌아가려고 꼬리지느러미를 흔드는 걸까. 어쩌자고 오늘은 나한테까지 와서 고래밥을 달라고 고래고래 소리치는 걸까.

가끔은 녀석의 전생이 고래여서 이승에서 이렇게 평생 고래를 업고 다니는 게 아닌가, 라는 쓸데없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고래고양이 등짝에서 내내 고래 한 마리가 바다를 그리워하는지는 내 알 바 아니다. 고래는 그저 고양이가 하는 대로 고양이 등짝을 빌려 살고 있을 뿐이다. 사는 게 답답하면 이따금 고양이를 부추겨 소나무 동산에 오르는 것도 같다. 동산에 펼쳐진 초원이 바다와 같아서 고래는 신나게 헤엄을 쳐본다. 고양이는 질주하고, 고래는 헤엄친다. 고양이는 노래하고, 고래는 춤춘다.

작가의 이전글 세마리 고양이의 시골살이 이야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