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언컨대 모로코는 최고의 고양이 여행지다. 바로 그 점이 나를 모로코로 이끌었다. 의심 한 점 없이 나는 지구 반대편으로 날아갔고, 16일에 걸친 고양이 여행길에 올랐다. 고양이에게 가장 혹독한 나라 대한민국을 떠나 세계 어느 나라를 가든 우리와는 전혀 다른 풍경을 기대해도 좋다. 이를테면 사람과 고양이가 행복하게 어울린 풍경! 특히 고양이의 천국이라 불리는 모로코에서는 어느 도시를 가든 이러한 풍경이 펼쳐진다. 그 가운데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이 있다면 단연 쉐프샤우엔(Chefchaouen)이다.
사실 쉐프샤우엔은 우리에게 친숙한 지명이 아니다. 하지만 유럽인들에게 이곳은 요즘 한창 뜨고 있는 ‘힐링 플레이스’로 통한다. 론리 플래닛은 쉐프샤우엔을 일러 모로코에서 가장 매력적인 여행지로 꼽기도 했다. 언제부턴가 사람들은 이곳에 다양한 수식어를 갖다 붙이기 시작했다. 스머프 마을, 동화 속 마을, 하늘이 땅으로 내려온 마을, 파란마을, 시간이 멈춘 마을. 쉐프샤우엔의 이름은 ‘염소의 뿔을 보아라’라는 뜻이 담겨 있다. 마을 뒷산이 염소의 두 뿔(chouoa)과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곳의 가장 큰 특징은 메디나(구시가)의 모든 집들이 파란색(인디고 블루, 터키 블루, 스모키 블루 등 다양한 푸른색이 공존한다)으로 칠해져 있다는 것이다.
모로코에서는 지역과 인종에 따라 자신들을 상징하는 빛깔을 지니고 있다. 가령 마라케시는 붉은 계통, 페스는 황토색, 쉐프샤우엔과 라바트는 파란색, 물론 탕헤르처럼 다양한 빛깔이 한 도시에 혼재하는 경우도 더러 있긴 하다. 사실 쉐프샤우엔이 나에게 특별했던 건 다른 이유가 있다. 바로 고양이. 이곳의 고양이는 어디에 있건 그림과도 같았다. 바다색 벽면을 배경으로 계단에 앉아 있는 고양이 혹은 하늘색 대문 앞에 앉아 그루밍을 하는 고양이. 젤라바(모로코 전통의상)를 입은 사람들을 뒤로 하고 다소곳이 앉아 먼 산을 응시하는 고양이. 온통 파란색으로 뒤덮인 골목에서 파란집 창문을 향해 먹이를 달라고 냐앙냐앙 보채는 고양이. 고양이끼리 서로 어울려 장난을 치고, 서로 엉켜 잠을 자는 고양이.
하늘색과 파란색이 어울린 풍경 속에서 새근새근 천사처럼 잠든 고양이를 상상해 보라. 무엇보다 이것은 상상이 아니라 현실이라는 거다. 쉐프샤우엔에 도착한 첫날은 아침부터 부슬부슬 비가 내렸다. 비 오는 쉐프샤우엔 골목을 걷자니 이건 정말 바닷속을 천천히 유영하는 것만 같았다. 이 어둠이 다 걷히지 않은 새벽에도 어떤 여행자는 커다란 배낭을 메고 어디론가 떠나고 있었다. 그리고 여행자가 떠나는 모습을 무심하게 바라보는 골목의 고양이 한 마리. 이것이 내가 쉐프샤우엔에서 처음 만난 고양이의 풍경이다. 어느 골목이나 푸른색이 가득했고, 그 푸른색과 어울리는 고양이들이 있었다.
이곳에서는 고양이 울음소리조차 파랗게 울려 퍼졌다. 한 골목을 지날 때 유난히 푸르게 울려 퍼지는 고양이 울음소리는 내 발길을 멈추게 했다. 잠시 후 골목 끝의 아치형 문을 넘어 중년의 아저씨와 젖소무늬 고양이 한 마리가 나타났다. 칼을 든 아저씨의 손에는 플라스틱 바구니에 무슨 양고기인지 염소고기인지 모를 부속 같은 것이 들어 있었다. (쉐프샤우엔은 양가죽이나 양털, 캐시미어를 이용한 가죽과 직물공예로도 유명한 곳이다.) 고양이는 그의 손에 들려 있는 것을 달라며 계속해서 뒤따라오며 야옹거렸다. 아저씨는 곧바로 집으로 들어갔고, 고양이는 여전히 대문 앞에서 냐앙냐앙 울었다.
잠시 후 대문이 열리고 다시 아저씨가 나왔다. 한줌의 고기를 손에 들고 나타난 그는 고양이에게 그것을 한 점씩 던져주었다. 고양이는 넙죽넙죽 잘도 받아먹었다.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녀석은 이제 파란 골목 한복판에서 느긋하게 그루밍을 하는데, 사람이 지나가도 비켜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사람이 고양이를 비켜가곤 했다. 골목과 벽면의 파란색은 고양이와 그렇게 잘 어울릴 수가 없었다. 파란색으로 인해 고양이는 더 돋보였고, 고양이로 인해 파란 골목은 생기가 돌았다.
그루밍을 끝마친 녀석은 20~30미터쯤 경사진 골목을 내려와 또 다른 집에 이르러 주변을 기웃거렸다. 다른 집에서 동냥을 해보려는 심산인 거다. 녀석은 그것이 마치 정해진 일과라는 듯 자연스럽게 행동했다. 쉐프샤우엔에서는 하루가 금방 지나가는 느낌이다. 메디나 골목을 크게 한 바퀴 돌고 광장에서 밥을 먹으니 벌써 저녁이 왔다. 쉐프샤우엔에서 3일을 보내는 동안 나는 메디나의 푸른 골목을 네댓 번 이상 돌았다. 이곳의 메디나는 그리 크지 않았고, 여러 번 지나친 골목도 수시로 달라졌다. 비가 올 때와 볕이 날 때의 골목이 달랐고, 고양이가 있을 때와 없을 때의 골목이 또 달랐다.
비현실적인 골목에서 마주친 현실 속의 무수한 고양이들. 젤라바를 입은 노인들이 골목에서 안부를 묻고 인사를 나누는 모습은 그 자체로도 그림이지만, 그 옆에 떡하니 고양이가 앉아 있는 모습은 어떤 이야기를 품은 동화에 가까웠다. 잠시 후 녀석들은 동화 속에서 걸어 나와 현실 속에서 장난을 쳤다. 사람의 시선 따위 아랑곳없이 저희들끼리 어울려 숨바꼭질을 하고, 싸움놀이를 하고 꼬리잡기 장난을 쳤다. 녀석들은 심각한 표정으로 사는 사람들을 향해 이렇게 말하는 것만 같았다. 좀 놀아볼래요? 좀 웃어볼래요? 구멍가게에서 과자를 사들고 집으로 가던 아이들은 그런 고양이들을 보고 잠시 하하호호 웃는다.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골목에 파랗게 흩어진다. ‘함맘 광장’(쉐프샤우엔의 중심)으로 내려가는 어른들은 젤라바에 고개를 파묻고 무심하게 고양이 곁을 지나간다. 이런 평화로운 풍경은 그저 이곳에서는 일상적인 풍경이다.
어떤 고양이는 선물가게 안으로 들어가 스웨터를 슬쩍 잡아당겨본다. 고양이와 눈이 마주친 가게 주인은 호통을 치기보다 문쪽을 가리키며 손짓을 한다. 고양이가 문에 매달려 스크래치를 하고 있어도 가게 주인은 그냥 허허허 보고만 있다. 아니 이게 가능한 일이야? 한국에서는 어림도 없는 풍경이다. 아마도 한국에서는 가게 물건을 만지기는커녕 가게 출입조차 허용하지 않을 것이다. 골목에서의 고양이 장난은 오래오래 계속되었다. 이건 누구를 위한 공연도 설정도 아닌 그냥 매일같이 반복되는 쉐프샤우엔 고양이들의 일상이다. 옷가게에서 이웃집 창문까지 우다다를 하고 골목 이쪽에서 저쪽까지 달리기 시합을 하고 골목의 포도나무 위로 풀쩍 뛰어올랐다가 내 발밑을 빙빙 돌기도 한다. 내가 들고 있는 카메라 따위는 신경도 쓰지 않는다.
우기의 쉐프샤우엔은 떠나는 날까지도 비가 왔다. 쉐프샤우엔의 파란 골목은 시간이 멈춘 듯 적막했고, 나는 오래오래 그곳에서 시간이 멈춘 고양이들을 바라보았다. 이곳에서는 골목을 달리는 고양이조차 마치 정지화면을 보는 듯 느긋했다. 여기에서는 사람도 고양이도 서두르는 법이 없었다. 언제나 바삐 이곳을 떠나는 이들은 시간이 없는 여행자들이었다. 만일 모로코에 가고자 하는 여행자가 있다면 나는 꼭 말해주고 싶다. 쉐프샤우엔을 놓치지 말라고. 한번쯤 파란 골목에서 꿈꾸듯 앉아 있는 고양이들을 만나보라고. 그들과 함께 이 산중의 바닷속을 헤엄쳐 보라고. 쉐프샤우엔은 고양이와 사랑에 빠지기에 더없이 좋은 곳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