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 살은 내게 멀게만 느껴지던 나이였고 '어른' 즉, 모든 말과 행동에 책임을 져야 하는 나이였다. 그러나 막상 겪어본 스무 살은 10대의 연장선 같았고 19금이라고 적힌 것들을 떳떳하게 할 수 있는 나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어릴 적 내가 상상했던 환상 속 스무 살은 좋아하는 사람과 나란히 캠퍼스를 걷고 동기들과 왁자지껄 술을 마는 것. 클럽에서 춤을 출 수 있고 영화관에서 19금 판정을 받은 영화를 볼 수 있는 것. 딱 그 정도였다. 그러나 이것도 고등학교 입학 전까지. 점점 스물에 가까워질수록 이러한 환상보다는 또다시 닥쳐오는 취업이라는 압박과 앞으로 남은 긴 인생에 대한 생각뿐이었다. 그렇다고 나의 환상 속 일들을 하지 못한 것이 아니다. 다만 그것들은 일시적인 쾌락을 줄 뿐 오래가지 못함을 깨달았고 현실의 벽이 더 크게 느껴졌다.
명문대를 졸업해도 취업이 안된다는 말, 공무원이 제일이라는 말. 모두 귓등으로 흘려버렸을 뿐 나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점차 내게도 해당될 수 있는 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아무 사고 없이, 아무 탈 없이 산다는 가정 하에 100세 시대를 산다고 했을 때 남은 시간은 80년. 그렇다면 스스로 돈을 벌면서 먹고, 자고, 입는 것들을 해결하기 위해 나는 어떤 일을 해야 할까 고민되었다.
이러한 고민들은 부모님이, 지금까지 살아온 기성세대가 대단한 것 같다는 생각에 이르게 했다. 금요일 공강을 활용해 집에 내려온 어느 날이었다. 여러 건물이 서 있는 아파트 단지에 들어서면서, 그 수많은 아파트 중 우리 집 문을 열면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편히 살 내 집을 마련하려면 얼마가 필요하지?' 내가 고등학교 1학년 때, 새로 지은 아파트로 이사를 왔기 때문에 그 시세를 모르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 돈을 모으기 위해서 열심히 살아오신 부모님이 정말 대단하게 느껴졌다. 티브이를 보면서 왔냐며 웃어주시는 부모님이 존경스러웠다. 지금 이 순간, 편안하게 티브이를 보며 마음껏 웃을 수 있는 이 시간을 위해 얼마나 힘들게 살아오신 걸까. 어릴 적엔 그저 힘이 세서, 나보다 커서, 무엇이든 뚝딱 해결해 주셔서 커 보였던 부모님이 다르게 커 보였다.
스무 살이 되어서 느낀 것 중에 가장 큰 것이 바로 '부모님의 위대함'이다. 어릴 적 친구들끼리 만나면 우리만의, 나름 심오한 이야기를 한다. 그중 이 이야기가 빠질 수 없었는데 모두 같은 것을 느꼈다고 했다. 아마 큰 사회는 아니지만 우리만의 작은 사회에 발을 내딛고, 주변 사람들을 만나고, 현실을 듣는 순간 우리도 모르게 느낀 것이다.
얼마 전, 차를 타고 가다가 말했다.
"엄마, 아빠. 엄마, 아빠는 진짜 대단한 사람인 것 같아. 어떻게 그 긴 세월을 살아갈 수 있는 거야. 집도 있고 차도 있고 우리 맛있는 것도 사주잖아. 진짜 대단한 것 같아. 나는 벌써 힘들 것 같은데.."
엄마는 웃으며 "살다 보면 다 살 수 있어. 엄마도 너희 키우다가 보니까 벌써 시간이 흘렀네:)"라고 말씀하셨다.
앞으로 남은 날을 어떻게 채워나갈지 정확히 모르겠으나 확실한 한 가지는 알았다. 어릴 적부터 생각했지만 전과는 다르게 느껴지는 것. 부모님께 받은 것을 전부 돌려드릴 수 없겠지만 그 가까이만큼 드리기에 최선을 다하겠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