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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7] 어떤 행복은 소나기처럼

오사카 여행_4일차(2)

by 잎새 달 이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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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출이라도 하듯 잠시 다른 동네 구경을 나섰다. 목적이 해리포터였던 건 맞지만 여기에만 있을 작정은 아니었기에 뉴욕, 미니언 파크, 샌프란시스코, 헐리우드, 쥬라기 월드 등 USJ 내 조성된 다양한 구역을 누비며 구경했다. 뉴욕 존을 지날 때는 마치 해외 유학 가면 이런 느낌일까 싶어 셀카봉으로나마 내 모습을 담아보기도 했다. 이미 여기도 해외지만 서양 풍경이 주는 매력은 또 달랐다. 어트랙션은 탑승은 하지 않고 주변 구경 위주로 돌아다녔다. 원래도 놀이기구보다 놀이공원 자체에 더 흥미를 느끼는 타입이었다. 혼자 즐길 자신도 달리 없어서 익스프레스 티켓(빠른 탑승을 위한 별도 티켓)도 구매하지 않은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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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을 잘 알진 못하지만 도시마다 분위기가 다르다는 것 정도는 얼핏 알고 있었다. 샌프란시스코 구역을 지날 때 유난히 밝은 분위기가 퍽 마음에 들었다. 높게 뻗은 야자수가 즐비한 거리를 배경으로 사진을 남기고 싶었다. 때마침 배낭을 메고 품에 커다란 스누피 인형을 안고 지나가는 여행객이 보였다. 나처럼 혼자 온 듯한 여성이었다. 괜한 동질감에 조금은 편안한 마음으로 사진을 부탁했다. 그랬더니 상대방 쪽에서도 격한 화답이 돌아왔다. 그것 참 잘 됐다는 말투로 “찍고 나서 저도 찍어주세요!”라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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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카메라를 받아 든 그녀는 앉았다 일어났다 반복하며 최선의 구도를 찾아 상당히 정성스럽게 촬영했다. 급기야 본인의 스누피 인형을 건네며 이것도 안아보라고 요구했다. 별안간 남의 인형까지 안은 내 모습이라니. 생각지도 못한 전개에 웃음이 터졌다. 피차 초면인 마당에 어찌 이토록 살가울 수 있는지. 당황스러운 동시에 신기했다. 내 차례가 끝나고 그분의 사진까지 찍어준 뒤 가벼운 인사를 나누며 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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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낮의 헐리우드 존은 잠들어 있는 동네 같았다. 이태원 펍 골목을 낮에 방문한 듯한 기분이랄까. 밤이 되어야 비로소 반짝일 세상처럼 보였다. 불 꺼진 LED 간판 아래를 지나 어느 골목으로 들어가니 이국적인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또다시 사진 욕심이 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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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처에 또래로 보이는 두 사람이 사이좋게 서로를 찍어주고 있었다. 친구인지 자매인지 모르겠으나 화기애애한 모습이 부럽기도 하고 왠지 정겹게 느껴져서 잠시 기다렸다가 적당한 틈을 타 부탁했다. 그러나 막상 두 사람 앞에 서려니 부끄러움이 밀려왔다. 스누피 여행객과 사진을 찍을 땐 피차 혼자라는 묘한 동질감이 있어 마음이 편했는데 이번엔 달랐다. 게다가 부탁이 자연스러워진 것과 별개로 카메라 앞에서 긴장하는 건 여전했다. 그래서 막상 부탁하고도 한껏 부자연스러운 모습이었다. 그런 내 모습이 민망하기 때문이라 여겼는지 사진을 찍어주시던 분은 “마구 찍을 테니 하고 싶은 포즈 다 하세요~”라며 부드러운 말투로 배려해 주었다. 그 말에 조금 누그러진 나는 자주 취하는 포즈 몇 가지를 연달아 선보였다. 그러나 이내 아이디어가 고갈됐고, 멋쩍은 마음에 뭐라도 해야겠다 싶어 옆에 있던 구조물이라도 잡으려고 측면으로 몸을 틀었는데 그 순간 “좋아요!!” 하고 외치는 게 아닌가. 가히 우렁찬 외침이었다. 나도, 그분 옆에 있던 일행도 동시에 웃음이 터졌다. 이후로도 호기로운 외침은 계속 됐다. 어떤 사명감에 불타는 사람처럼 열정적이기까지 했다. 머리카락도 한 번 만져보고, 걸어가는 모습 찍을 테니 여기서부터 저기까지 살짝 걸어보라는 등 세심한 첨언이 이어졌다. 덕분에 잠시나마 어울려 노는 기분이 들었다. 원래 그런 성격인지, 혼자인 나를 배려하느라 더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이유를 막론하고 거리낌 없이 표현해 준 성의가 고마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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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여행에서 애용하던 지갑이 있다. 둘째 날 도톤보리 근처 ‘이치비리안’이라는 기념품 가게에서 구매한 타코야끼 모양 동전 지갑이었는데 꽤 많은 관심을 받아 은근한 추억으로 남았다. '터키 레그(칠면조 다리)'를 사 먹기 위해 찾았던 쥬라기 월드에서 계산을 하려고 지갑을 꺼내자 직원들이 “타코야끼! 카와이!”라며 알은체를 했다. 평소 같았으면 낯가림에 짧게 웃고 말았을 텐데 이날은 들떠서 그랬는지 굳이 들어 보이며 자랑까지 했다. 해리포터 존에서 굿즈를 구매할 때도 그랬는데. 이게 뭐라고 흐뭇한지. 그렇지 않아도 마음에 쏙 드는 지갑이었는데 괜히 더 만족스러워졌다. 그 한 마디가 뭐라고 이토록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지 참 모를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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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해리포터 존으로 발길을 옮겼다. 이제 노을 지는 호그와트를 즐기러 가야 했다. 일몰 이후 6시부터는 레이저 쇼도 예정되어 있어 서둘러야 했다. 얼마 놀지도 못한 것 같은데 시간은 왜 그리도 빠른지. 야속한 시간은 저 혼자 째깍째깍 잘도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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