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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너는 책을 썼을까?

by 잎새 달 이레

내가 물었던가, 아니면 우리가 비슷한 주제로 막연한 미래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을까.


너는 나중에 네 이름으로 된 책을 내고 싶다고 했다. 나는 어떤 글을 담은 책을 내고 싶은지 되물었고, 너는 그에 대한 것까진 생각해 보지 않았다며 그냥 무엇이 되었든 책을 한 권 내고 싶다고 대답했다.


이제 와 솔직히 터놓자면, 그때 난 네 말이 다소 터무니없이 들렸더랬다. 고작 국문학과 1학년인 우리가 무슨 책을 낼 수 있겠느냐고. 그건 내로라하는 작가들이나 또래 중에서도 세간의 이목을 이끄는, 소위 말하는 글쟁이들에게나 가능한 일 아니겠냐고. 우리가 쓰는 글은 그저 취미에 그치는 일이이라 여겼다. 내가 뭐라고. 혼자 속으로 감히 너의 꿈을 후려쳤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론 그런 꿈이 있는 네가 부러웠다. 소설이 될지 수필이 될지 모르지만 무어라도 생산하고자 하는 너의 그 염원이 대단하게 느껴졌다. 연기 같은 바람이 아닌 덩어리 진 너의 소망이 왠지 샘이 나도록 부러웠다. 그래서 괜히 더 불가능에 무게를 두고 흠 잡으려 했는지도 모르겠다.


과연 너는 책을 썼을까?

1인 출판이나 독립 출판이 조금은 자유로워진 지금은 등단 작가가 아닐지라도 재능만 있다면 취미로나마 출판물을 발간할 수 있다는데, 과연 네 이름을 새긴 책은 세상의 빛을 보았을까. 불현듯 궁금해지곤 한다.


네 꿈을 들었을 때만 해도 나는 네 글을 읽은 적이 없었다. 또한 겉으로 풍기는 분위기에도 넌 딱히 글 쓰는 사람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물론 그건 순전히 내 편견에 의한 판단이었지만)


그러다 언젠가 너로부터 고등학생 때 소설 공모전에서 상을 탄 적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고, 문득 궁금해졌더랬다. 내용이 무엇이었는지 혹시 그 글을 볼 수 없는지 물었더니 너는 부끄러운지 내 요구에 당황하여 얼버무리기 바빴다. 이제는 원고가 사라져서 없다며 대충 구두로 설명해 준 기억이 난다. 대답을 들은 나는 아쉬움과 동시에 약간의 의심을 했던 것도 같다. 혹시나 나에게 잘 보이려고 괜한 허풍을 늘어놓는 건 아닌지 하는. 있는 그대로 믿어주는 게 그땐 왜 그리 어려웠을까. 갖지 못한 재주에 대한 동경이 시기로 발현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우리는 헤어졌다.


오랜 세월이 지나 기억 속 네가 흐려지고, 너와 나눴던 감정마저 갈수록 무뎌지는데 이상하게 그날 그 대화만큼은 선연하다. 책을 내고 싶다는 너의 희망은 과연 이루어졌을까.


우리가 각자가 되고 나서야 나는 네 글을 읽어볼 수 있었다. 내가 운영하는 편집부에서 진행한 공모전에 출품된 네 소설은 심사위원의 눈에 띄어 수상까지 이어졌다. 설마 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참 좋은 글이었다. 아직도 난 북두칠성을 떠올리면 그 글이 떠오른다. 그토록 읽고 싶었던 네 글을 나는 헤어지고 나서야 읽었다. 익명으로 전송된 수신자 불명의 편지에서도 나는 네 솜씨를 읽을 수 있었다. 그래서 난 더 오래 아팠다. 넌 몰랐겠지만.


오늘도 그런 날 중 하루다. 더 이상 네가 그립거나 사무치진 않지만 문득 그 하나가 궁금해지는 날. 과연 너는 글을 쓰고 있을까. 여전히 그 솜씨 그대로일까. 네 이름이 새겨진 책이 과연 세상에 나왔을까. 나는 그게 왜 그리도 궁금한지 모르겠다. (오해하지 마라, 잘 지내든 말든 그건 전혀 궁금하진 않으니까.)


아마 우리가 더 오래 함께였더라면 난 분명 네 글을 사랑했을 것이다. 언젠가 네가 작성한 시를 읽고 느꼈던 감정이 아직도 인상적이니 말이다. 지는 꽃을 바라보는 네 시선과 그걸 풀어내는 네 문장이 퍽 마음에 들었고, 이상하리만큼 그 시가 마음에 남아 겨울 끝자락 목련이 질 때면 어김없이 그 시가 떠오른다. 검붉은 피를 죽죽 뱉어내는 그 장면 위로 너의 활자들이 떨어진다. 그 위로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오래오래 나 혼자 품고 살아가는 이 속비밀 같은 궁금증이 포개진다.


영원히 해소되지 않을 갈증. 묻지 못할뿐더러, 감히 내가 이런 궁금증을 갖고 있다는 말조차 꺼내는 게 우스운 내 심연의 물음표. 나는 여태 그래왔듯 앞으로도 종종 이 사실이 궁금해질 테다.


어쩌면 이 긴 글은 네 글을 다시 읽고 싶다는 나의 바람일지도 모르겠다.


과연 너는 책을 썼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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