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술에 취하면 곧잘 계란프라이를 구워달라고 했다.
이미 취한 사람의 혀 꼬인 그 말투가 나는 듣기 싫었고,
늦은 밤 가스에 불 올려 기름을 두르고 계란을 익히는 일련의 과정 또한 귀찮기만 했다.
먹고 싶으면 직접 해 먹지,
아님 술에 취해서나 오지 말지.
엄마의 에너지가 좋던 시절엔
자식이 돼서 그거 하나 못해준다는 푸념이 길어지는 게 피곤해서
혹은 내 마음이 약해져서 못 이기는 척 해줄 때도 더러 있었지만,
가끔은 짜증이 치솟아서 매정하게 거절하기도 했다.
엄마가 계란프라이를 그렇게 좋아하는 줄 미처 모르고.
그 단순하고 흔한 요리가,
'요리'라고 칭하기도 민망할 만큼 간단한 그 음식이
엄마는 그리도 좋다더라.
그리고 그 식성을 동생이 닮았다.
타지로 대학을 간 동생이 가끔 주말에 집에 내려올 때면,
엄마는 산해진미가 무어랴 내 새끼가 먹고 싶다는 건 뭐든 다 해줄 심산으로 제일 먹고 싶은 걸 묻기 바빴다.
그때마다 동생은 평생소원이 누룽지라고 계란프라이를 말했고,
엄마는 그거 말고 다른 건 없냐고 더 거창한 걸 캐물었다.
하지만 기숙사에 살던 동생은 가스를 쓸 수 없는데다
계란프라이는 따로 파는 곳도 없어서
오로지 그게 그리도 먹고 싶었단다.
누군가에겐 간편한 음식이,
누군가에게 간절한 음식이기도 했다.
두 사람의 똑 닮은 식성은
아마 오랜 시간이 지나 나를 울리고 말 것이다.
언젠가 다가올 어느 미래에는
계란프라이를 뒤집으며 눈물지을지도 모르겠다.
내 생애 계란프라이를 그토록 좋아하는 두 사람이
가장 지척에서 가장 닮은 모습을 하고 산다.
언젠가는 많이 그리워질지 모를 그 닮은 구석이
유난히 아릿한 오늘,
지글지글 익어가는 계란프라이를 보며
나는 또 먼 미래와 오늘 사이로 시간여행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