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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니스 May 15. 2023

사랑은 평생에 의무다

찐 사랑에 대한 고찰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있다면 무엇일까?

필자는 일과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둘 다 인생에서 빼놓을 수 없는 가치이고, 그만큼 살아가면서 이 두 가지에 가장 많은 시간과 체력을 쏟게 된다. 그렇기에 일과 사랑에 대해 어떤 철학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삶이 행복해질 수도 불행해질 수도 있다.


이 글은 그중 '사랑'에 대한 고찰을 담고 있다.

일상 속에서 '사랑'이라는 단어를 심심치 않게 들을 수 있다. 대중가요는 '사랑'에 대한 가사로 가득하고, 114에 전화해도 사랑고백을 들을 수 있다(사랑합니다 고객님). 반면 우리에게 익숙한 이 '사랑'에 대해 현자들은 가지각색의 철학들을 풀어낸다. '사랑'이라는 단어가 사전(dictionary)에 없는 것도 아닌데, 왜 그럴까?

 

그만큼 '사랑'은 추상적이면서 개인의 경험과 가치관의 영향을 많이 받는 개념이자 패러다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대마다 세대마다 '사랑'에 대한 이미지는 달라져왔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독자들도 잠시 이 시대의 철학가가 되어 '사랑'에 대해 함께 고민해 보길 바란다.


사랑에 대한 여러 고찰들


사랑 (love)
어떤 사람이나 존재를 몹시 아끼고 귀중히 여기는 마음 또는 그런 일

'사랑'의 사전적 의미는 이렇게 분명히 존재한다. 그럼에도 '사랑'은 그 이상의 의미부여를 하게 만드는 일인가 보다.


어원 관점에서 사랑은 '살다'에서 변화되었다 혹은 '사량'(헤아릴 '량')에서 유래되었다는 가설이 존재한다. 종교적으로는 '아가페'라는 예수님의 사랑이 있고, 심리학에서도 과정과 유형에 따라 사랑을 세분화한다. 철학가들 중 대표적으로 플라톤은 사랑은 '육체적 사랑(Eros), 도덕적 사랑(Philia), 신앙적 사랑(Stergethron), 무조건적인 사랑(Agape)'으로 구분된다고 주장하고, 심지어 쇼펜하우어는 사랑은 '없다'라고 말한다.


'사랑'의 정의가 이렇게 다양한 걸 보면 사람마다 겪어내는 사랑의 모습이 참 다양한 것 같다. 

사랑을 하다 보면 좋은 감정뿐만 아니라 강렬한 다른 감정들(분노, 증오, 슬픔, 공허함 등)도 동반되기 때문에 '사랑'을 간단하게 정의하는 데에 많은 변수가 작용한다.


나아가 '사랑'의 의미에 시대적 문화적 영향도 크다고 본다. 남녀 칠 세 부동석 시대와 지금처럼 초등학생도 연애를 시작하는 시대에 '사랑'이 의미하는 바는 다를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이 시대에 '사랑'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검색 엔진에 '사랑'이라는 단어를 치면, 놀랍게도 결혼정보회사 사이트가 가장 상위에 노출된다. 물론 결혼정보회사의 마케팅 수단이긴 하지만, 혹여 요즘은 돈으로 '사랑'도 살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게 아닐까 우려되는 현상이다.


비혼주의자들이 많아지는 동시에 결혼정보회사가 호황기를 맞고 있다는 희한한 사실을 들었다.

젊은 세대들은 ‘이왕’ 결혼을 할 거면 합리적이고 좋은 조건에서 하고 싶어 하고, 이런 니즈가 그대로 반영된 결과이다. 이러한 트렌드의 바탕은 연애 상대와 결혼 상대에 대한 기준이 다르다는 시대적 가치관에 있다. '지금 애인이 연애하기엔 좋지만 결혼은 망설여져요'라는 고민이 더 이상 낯설지 않다. 연애든 결혼이든 '사랑'이 기반일 텐데 기준의 차이는 상당히 크다. 이런 시대에 '사랑'은 더욱 어렵게 느껴진다. '사랑'도 자격이 필요한 일인 걸까?


찐 사랑에 대해서


그럼에도 누구나 인생에서 한 번쯤은 '사랑'을 하고 싶어 한다.

여기서 '사랑'은 진정한 사랑(찐 사랑)을 의미한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나오는 로맨스도 찐 사랑에 대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그렇다면 여러 모양의 사랑 중에 '찐 사랑'은 무엇일까?

필자는 유독 '사랑'에 대해 정의가 많은 근본적인 이유가 궁금했다. 흔히 '기쁨'이나 '슬픔'에 대해서는 논쟁이 없지 않은가. '찐 사랑'은 이 같은 감정이라는 카테고리 안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본다. 즉, 운명적인 사랑을 '설렘'과 동일시하는 주장에 대해 동의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첫눈에 반할 수는 있어도 '첫눈에 사랑에 빠진다'라는 일 또한 믿지 않는다. 그저 외적인 이상형에 설렘이 폭발한 일을 과도하게 미화한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찐 사랑'은 감정처럼 본능적이면서 순간의 개념과 거리가 멀 기 때문이다.


찐 사랑은 상호적으로 (서로) 결핍을 채워주는 충만한 경험을 나눈 관계에서 성립된다.

단순히 반대가 끌리는 경향성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이 사람과 함께 하면 온전함을 느낄 수 있다'는 깨달음이 마음에 자리 잡았을 때 진정한 사랑이 시작된 것이다. 사람이 홀로 온전해지는 걸 지향해야 한다지만 의존의 욕구와 필요성을 부인할 수 없다. 내가 의존했을 때 가장 편안함을 느끼는 관계라면 나를 더 온전하게 만들어주는 존재로서 서로에게 유일한 존재로 여겨지게 된다.


이러한 사랑의 본질로 인해 바람과 외도가 사랑을 하면서 가장 큰 상처로 남는 것이 아닐까. 우리의 관계가 유일(only one)한 줄 알았는데 많은 관계 중 하나(one of them)가 되는 일은 자신의 신념 나아가 정체성까지 부정당하는 사건이라고도 볼 수 있다.


사랑은
자아실현의 완성이다


시대마다 '사랑'에 대한 개념은 달라도 '가치'는 변하지 않아야 한다.

사랑이 결여된 삶은 정신적으로 건강할 수 없다. 모든 심리 문제들이 애착관계의 불화로부터 기인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기서 '사랑'이 반드시 이성 간의 사랑일 필요는 없다. 다만 어떤 모양이든 '찐 사랑'이어야 한다.


사랑은 자아실현의 완성이다.

진정한 사랑은 자기 자신(결핍)을 온전히 수용하게 하고, 내가 가진 고유함을 완성시킨다. 나의 존재감을 충만하게 느끼게 만든다. 사회적으로 보면 어떤 경우에도 대체할 수 있는 존재에 불과하지만 사랑하는 사람에게만큼은 '대체 불가'한 존재가 된다. 이 세상은 나 하나 없어져도 잘 돌아가지만,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하늘이 무너지는 일이다.

물론 찐 사랑이 한 명이 아닐 수도 있고, 찐 사랑과 이별할 수도 있다. 사랑이 가면 또 다른 사랑이 온다지만 새로 오는 사랑도 이전 사랑의 흔적이 없다고 말할 수 없다. 진정한 사랑은 삶 전반에 영향을 주며(무의식 안에 영원히 기억된다) 지금 당장 곁에 없어도 마음속에 유일한 존재로 남게 된다. 그리고 인생을 버틸 수 있게 해주는 힘과 위로가 된다.


그럼으로 우리는 애를 써서라도 사랑을 해야 한다.

'사랑'이 국민 4대 의무보다 결코 가치가 없지 않다. 사랑은 평생에 걸친 가장 가치있는 의무이다. 당장 대상이 없다면 마음을 열고 사랑할 수 있는 기회를 맞이할 자세가 되어 있어야 한다. '사랑이 없어도 잘 살 수 있어'라는 주장도 맞다. 충분히 살아갈 수는 있다. 다만, 이 가치관이 자신의 방어기제가 되고 있지 않은지는 고민해봐야 할 일이다.


자아실현을 이루어가는 삶에 사랑이 더해진다면 우리는 이 험난한 세상을 넉넉하게 헤쳐나갈 수 있다. 그러니까 사랑하세요 여러분. 강제로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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