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에 진심일수록 취미가 없어진다
얼마 전 송년회 회식 때 있었던 일이다.
최선임님: 수빈씨는 취미가 뭐예요?
나: 어.... 취미라고 하면....(한참 뜸을 들임)
최선임님: 없구나!
나: 네 맞아요~ 없어요
한 때는 취미 부자였던 내가 왜 '취미'에 대한 질문에 바로 대답하지 못했을까?
워라밸이 좋은 회사를 다니다 보면 동료들 사이에서 '취미가 없다'라고 말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취미도 하나의 스펙이 된 시대에 취미를 '찾기' 위해 취미활동을 하는 사람들도 많다고 한다. 최소한 취미로 ‘운동'이라도 해야 취업시장이나 연애시장에서 경쟁력이 생기기 때문이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나는 취미에 대한 질문이 불편해졌다.
스몰 토크의 단골 주제인 '취미'를 물어보는 게 나의 취미이기도 했었는데. 돌이켜 생각해 보니 '취미'를 말하기 꺼려졌던 상황은 크게 두 가지였다. 하나는 본업에 에너지를 많이 써서 취미를 즐길 시간이 없을 때. 또 하나는 취미가 더 이상 취미가 아닐 때 곧 취미에 진심일 때였다.
나도 취미가 있었다
재작년부터 나의 취미는 독서였다.
참고로 나는 학창 시절 내내 '책 좀 읽어라'라는 엄마의 잔소리를 들을 정도로 독서를 즐기지 않았다. 남들은 재밌게 읽었다던 만화책에도 흥미가 전혀 없었다. 그렇게 책을 기피했던 사람이 30대가 돼서 자발적으로 매주 1~2권씩 완독을 해가다니. 스스로도 놀랐던 변화였다.
회사 생활에 권태감을 느껴서인지 책을 통해 '새로운 지식'을 배우는 것에 재미를 느꼈다. 그리고 30대에 진입하고 어른이 되어갈수록 아는 만큼 삶이 풍성해짐을 깨달았다. 이 매력에 빠져 2년 동안 100권 가까이 독서를 해왔고, 점점 나는 글쓰기에도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배운 내용들을 정리하고 싶다'는 동기에서 시작한 글쓰기는 자연스럽게 나를 표현하는 도구가 되었다.
그렇게 독서에서 글쓰기로 취미가 넓어지면서 퇴근 후 나의 일상은 단순해졌다.
책을 읽거나 글을 쓰거나. 주말에도 마찬가지였다. 주말에 되면 마음 편히 글을 쓸 시간이 생겨서 설렜고 가끔은 연차를 내서라도 밀렸던 글쓰기를 하곤 했다.
이렇게 취미에 진심이 된 요즘, 나의 취미가 더 이상 '취미'라는 가벼운 표현에 적합하지 않게 되었다. ’취미‘라고 정의하기에는 본업보다 더 열심히 공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저 마음 편하게 즐겼던 시간은 지나가버렸다.
게다가 누군가 취미를 물었을 때 '독서랑 글쓰기'라고 하면 부작용이 있다. 대표적으로 '좀 재수 없다'는 이미지를 주고, 다른 취미들과 다르게 '지적(intelligent) 프레임'이 씌워지게 된다.
작년에 회사 동료들에게 취미가 독서라고 하니, 말실수를 할 때마다 "이선임 책 좀 더 읽어야겠네~"라며 놀림을 받았던 적이 있었다. 이 때부터 나는 나의 취미를 말하기 점점 더 조심스러워졌다. 나에게 진심인 취미가 다른 사람들에게 가벼운 농담거리가 되는 것이 싫었기 때문이다.
나도 취미가 있다
앞으로 다른 사람이 나에게 취미를 물으면 어떻게 답하면 좋을까?
일과 후에 온통 '무슨 책을 읽지', '오늘은 무슨 주제로 글을 써보지'라는 생각뿐인데 말이다. 그나마 내가 좋아하는 시간들을 찾아보니 남편이랑 요리하고 나는솔로 볼 때였다.
그래서 앞으로는 가볍게 말해보려고 한다.
'제 취미는..티비보는거? 혹시 나는솔로 저번주 방송 봤어요?'
이렇게 나의 진지한 고민이 가볍고 명랑하게 해결됐다. 나의 진짜 취미는 소중하니까 나 혼자 알고 있으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