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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니스 Sep 19. 2024

둘째가 좋은 한 가지 이유

Episode 7. 탄탄대로 첫째딸 사고뭉치 막내아들 그걸 지켜보는 둘째

“대체 뭐해먹고살라고 그래?”


이번 주말은 조용히 지나가나 했더니 또 시작이었다.


우리 삼남매가 모두 20대가 되었을 무렵. 첫째, 둘째, 셋째는 각기 다른 모습으로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그중 특히 셋째 막내의 삶은 보통의 20대와 사뭇 달랐다.


존재만으로 부모님의 힘이 되어 주던 그는 20대가 되면서 본격적으로 부모님 속을 썩이기 시작했다. 학창 시절 내내 공부에 뜻이 없었지만, 우리 막내가 20대 중반이 될 때까지 대학도 못 가고 방황하고 있을 줄은 아무도 몰랐을 것이다.


‘당연히 누나들처럼 고등학교 올라가면 공부하겠지’ 라는 안일한 합리화를 해오던 부모님은, 재수까지 처참히 실패한 막내를 보고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았다.


‘학벌‘이 최고로 중요하던 우리 집안에 용납할 수 없는 오점이 생긴 것이다.


아무리 사랑스러운 막내 일지라도 두고 볼 수만은 없었다. 공부 아닌 다른 쪽에 관심을 보였으면 일찌감치 다른 길을 찾아줬을 것이다. 그저 사춘기 남학생처럼 몇 해 년을 노는 것만 좋아하니 누나인 내가 봐도 깝깝했다. 훗날 한 가정의 가장이 될 사내놈을 이렇게 무대책으로 방관할 수 없었다.


그렇게 무슨 수를 써서라도 대학을 보내려는 부모님과 사춘기 N년차 막내 간의 싸움은 5년이나 지속되었다.


‘착한 아이 콤플렉스’라는 심리학 용어가 있다. 타인 특히 부모에게 ‘착한 아이’라는 반응을 듣기 위해서, 자신의 욕구보다 타인의 욕구를 따라가는 증후군을 말한다.


첫째는 어릴 적부터 ‘착한 아이 콤플렉스‘를 가질 확률이 높다. 특히 동생들이 미숙할수록 첫째는 ‘나라도 부모님을 속상하게 만들면 안 된다’라는 사명감을 스스로 부여한다.


우리 언니도 마찬가지였다. 

30대 후반이 될 때까지 언니의 삶은 부모님의 뜻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좋은 대학, 안정적인 직장, 부모님 맞선으로 결혼까지. ‘부모 말 들으면 무조건 잘된다’라는 엄마의 신념대로 자라준 착한 딸이었다.


매우 대비되는 두 남매 사이에 내가 있었다.

모범생 첫째와 반항아 막내를 모두 관찰해 온 나는 어떤 삶을 택했을까?


여기서 짚고 넘어갈 사실은, 삼남매 중 둘째가 가지는 분명한 이점이 있다는 것이다. 인생의 페이스메이커를 둘이나 두었다는 점.


고로, 적당히 인정받고 적당히 혼나면서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사는 방식을 터득할 수 있다. 이때 둘째가 가진 애매한 속성이 전화위복으로 도움이 된다. 부모님은 둘째 딸에게 큰 기대가 없다. 소위 ’중간만 가도 된다’는 수준의 바램만 있을 뿐.


그래서 둘째는 여러 상황을 관찰할 여유가 생긴다.

부모님과 가치관이 충돌할 때 감당해야 할 리스크와 설득 전략을 그릴 줄 안다. 나아가 부모님이 무엇에 약하고 언제 타협이 없는지를 파악할 수 있다. 미리 본보기가 되어 준 첫째와 막내 덕분에.


덕분에 나는 삼남매 중 가장 부모님의 뜻과 다르게 살아가고 있다. 우리 부모님은 딸의 가방끈이 긴 것, 자취하는 것, 연애해서 결혼하는 것에 반대했던 분들이다(꽤나 고지식하신 분들이다). 하지만 나는 대학원을 졸업했고 3년 동안 서울에서 자취를 했고 소개팅으로 만나 연애결혼을 했다. 그리고 나는 내 삶에 만족하며 살아가고 있다.


나의 인생 전반을 내 가치관으로 채워갈 수 있었던 건 어쩌면 나의 든든한 페이스메이커 첫째와 막내 덕분인지도 모르겠다. 살아보니 둘째만이 가질 수 있었던 축복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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