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isode 8. 남매의 극과극 결혼 방식
이 중 특히 ‘결혼’은 다소 결이 다르다.
살면서 ‘노력해도 뜻대로 안 되는 일’ 중 하나가 바로 ‘결혼’이다. 똑똑한 사람들도 결혼에서 만큼은 얼마든지 실패할 수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결혼은 결코 혼자 하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결혼은 외모, 성격, 능력, 배경. 심지어 부모님의 취향까지 서로 맞아야만 무탈하게 성사될 수 있는 계약이다. 게다가 서로에게 (결혼을 하고자 하는) 타이밍까지 맞았을 때 비로소 완성이 된다.
중매로 결혼한 부모님 품에서 자라온 나는 이 사실을 꽤 어릴 적부터 접해왔다. 그리고 매사 탄탄대로였던 우리 언니는 이 ‘결혼’에서 처음으로 인생의 좌절을 겪었다. 오랜 시간 끝에 성사된 언니의 결혼은 나의 삶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
결혼에 임하는 우리 자매의 태도는 매우 달랐다. ‘모범생과 반항아’. 적어도 부모님의 눈에는 이렇게 대비되는 모습으로 비쳤을 것이다.
언니의 결혼 프로젝트는 8년이 걸렸다
언니가 27살이 되어 중매 시장에 (강제로) 발을 들이면서 전쟁은 시작되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언니의 이상형과 부모님의 이상형은 매우 달랐기 때문이다.
부모님은 남자가 가진 배경과 직업을 최우선으로 삼았다. 여느 딸 가진 부모처럼. 물론 외모는 제일 나중이었다. 그래서일까? 언니는 선 본 모든 남자들을 맘에 들어하지 않았다. 아니, 싫어했다. 절대 이성으로 보이지 않는다는 초지일관된 이유로 말이다.
그럼에도 이 전쟁의 결과는 해피엔딩이었다. 언니는 35살에 부모님의 이상형에 딱 맞는 남자와 결혼해서 지금까지도 잘 살고 있다. 과정은 매우 험난했지만.. 결론만 보면 더 바랄 것 없이 성공적인 결혼이었다.
반면, 나의 결혼 프로젝트는 8개월이 걸렸다.
언니의 결혼 히스토리를 모두 지켜봐 온 나는 결혼이 무서웠다. 결혼시장의 민낯을 다 알면서 연애를 시작하기에는 나에게 넘어야 하는 산들이 많았다.
언니의 결혼을 통해 부모님의 눈이 얼마나 높은지, 중매 시장에서 나는 어느 등급인지 알 수 있었다. 결국 나도 중매혼을 해야 평화롭고 편안한 결혼생활을 할 수 있을 거라는 유혹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결혼에 있어서 ‘사랑이냐, 조건이냐’ 이런 단순한 접근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보다 ‘내가 정말 원하는 사람과 결혼을 할 수 있을지’가 가장 큰 숙제였다.
결혼이라는 이벤트에도 둘째의 성질이 끼어든 걸까? 그저 내가 언니랑은 다른 길을 가고 싶었던 건 아닐까? 여전히 이 의문의 답은 명확지 않다. 앞으로 더 살아보면 알 수 있겠지. 여유를 두고 나의 마음을 지켜보려 한다.
운이 좋게도 나의 숙제는 빠르게 해결됐다. 1년도 채 되지 않은 시간 안에 복잡하게만 보였던 모든 장애물들이 허물어졌다.
첫째의 중매혼 이후 부모님의 기세가 다소 꺾였던 것, 둘째의 남자친구가 맘에 들었던 것 등. 여러 가지 바탕들이 있었지만 결혼은 결국 인연과 때(타이밍)가 만들어 낸다는 걸 확실히 깨달았다.
그렇게 언니와 나는 아주 비슷한 시기에 다른 형태의 결혼을 하게 되었다.
내가 택한 사람과의 결혼은 꽤 행복했다.
하지만 가끔 씁쓸할 때가 있었다. 우리 자매 둘 다 축복받고 인정받는 결혼을 했는데, 나는 이 ‘결혼’에서도 불공정함을 느꼈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언니는 부모님 뜻에 따라 결혼을 한 셈이고, 나는 내 뜻에 따라 결혼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일까? 미묘하게 부모님의 마음의 추는 언니네 부부로 기울어져 있음이 느껴질 때가 있다.
결혼 시 부모님의 지원의 정도, 은연중 드러내는 첫째 사위 자랑 등. 하나하나 따지기 치사하지만 둘째의 촉으로는 분명히 알 수 있었다. 부모님이 첫째 부부를 편애하고 있다는 사실을.
나의 결혼 상대는 내가 직접 선택해야 한다는 건 당연한 이치다. 하지만 나의 신념대로 살아갈수록 내가 감수해야 하는 일들이 생긴다는 걸 다시금 깨닫는다.
나도 만약 언니처럼 중매로 결혼했다면 어땠을까?
물론 지금보다 더 착한 딸로 남아 있었을 것이다. 어딜 가나 부모님이 자랑하기 좋은 결혼을 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 내 옆에서 웃고 있는 사랑스러운 남편이 아니라면 요즘만큼 행복한 일상을 보낼 수 있었을까 싶다.
이런 나를, 나는 알았기에 그토록 외쳤었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