혀 아래 말들
아파야 사랑이다. 아픈 사랑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사랑 모두가 아프다. 사랑이 끝났을 때만 아픈 게 아니라 시작부터 끝까지 구석구석이 아팠다. 당신을 처음 만났을 때, 가슴 한 가운데에서 일어나던 까닭없이 아린 통증을 기억한다. 당신을 떠올리기만 해도 심장이 쿵쾅거리며 가슴이 답답해지던 현상. 당신이 무심히 내뱉는 말 한 마디에 죽고싶을 만큼 서러워지며 엄습하던 우울. 당신이 내 곁에서 잠깐 멀어지는 일이 현기증처럼 어지럽던 일. 당신이 무슨 말인가로 슬픈 표정을 지을 때 눈물을 흘릴 때 마치 내 속을 후벼파는 듯 아팠던 일. 꽃이 피어나는 날의 스트레스처럼 당신이 내 속에서 피어나는 날, 나는 달콤한 고통을 앓았다.
아파야 사랑이다. 당신이 이윽고 나의 사랑이 되었을 때 그때부터는 당신을 완전히 가지지 못하는 아픔이 따라왔다. 아무리 가져도 더 가지고 싶은 허기. 아무리 투명해도 거기 무엇인가 의심이 돋아나던 끝없이 소유 욕망이 나를 괴롭혔다. 당신이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고 완전한 축복이었던 시절을 기억해내고 마음을 설득하고자 했으나 잘 되지 않았다. 당신이 오로지 내 것이어야 한다는 미친 마음이 당신을 아프게 하고 그 아픈 당신을 바라보며 다시 아팠던 나. 사랑은 사랑을 괴롭힘으로써 사랑을 확인하고자 하는, 자해하는 운명을 지닌 슬픈 짐승이었다. 당신의 눈물과 내 눈물의 의미가 달라질 때 사랑은 스스로 앓는 두 개의 다른 꿈이었다.
아파야 사랑이다. 끝나가는 사랑을 느끼는 일은, 그 이후의 생 전부를 사무치게 하는 치명적인 통증이었다. 처음의 달콤한 아픔과 그 이후의 검질긴 집착의 아픔, 그 모두를 천만 번 되돌아가 보아도 결국 내 속은 당신이 없는 사막이었으며 당신을 데려오지 못하는 빈 사막이었으며 나는 혼자 부연 먼지를 일으키며 우는 바람이었다는 것을 발견하고 울었다. 사랑이 사라진 뒤에 느끼는 아픔은, 결국 내가 전혀 당신을 사랑하지 못했음을 알아채는 치명적인 통각이었다. 당신을 그토록 내게로 데려오고자 했던 몸부림들이 결국 나 자신을 파헤친 미친 열정 이외에 아무 것도 아님을 알게 되었다. 당신은 없고, 사랑은 나 혼자의 일이었으며, 그것은 통째로 자기 기만의 슬픈 사기극이었음을. 뼈아픈 뉘우침, 그 지점까지 사랑은 아픔으로 설계되어 있다.
그러나, 아파야 사랑이다. 다시 돋아나는 아픔, 상처에 솟는 푸른 가지처럼 사랑은 견딜 수 없었던 자기부정의 때를 거쳐 다시 피어난다. 그만, 이라고 외쳐도 그만두어지지 않는, 질긴 힘으로 다시 아프게 꽃핀다. 당신을 사랑하는 일은 아름답고 행복한 일이 아니라 아픔으로 이어진 깨달음의 길이었음을. 미안하다. 내가 이렇게 아팠는데 당신인들 그렇지 않았겠는가.아픔의 봉지에 싼 한 알의 사탕을 다시 풀며 눈물 그렁그렁한 당신과 나. 그래, 아프지 않은 행복, 아프지 않은 기쁨, 아프지 않은 희망이 없었다. 사랑은 아프지 않으면 가짜다. /빈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