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빈섬시집
기차는 오지 않았다
단종을 태우고간 날
기적도 울지 않았다
80년 기다린 대합실 너머
생각하고 생각할 思
밭에 쪼그려 앉은 마음의 무덤
호미로 찍어내던
밭고랑 몇개 사릉사릉 지나갈 뿐
보약처럼 마신 죽음 한 사발
뻐꾸기 몇 마리가 뒤엎인 그릇 위에
흰 똥을 갈겼다
희망은 음란한 시절의
꽃냄새같은 것이다
하루 세번 어김없이 기차는 왔지만
대합실은 멋쩍게 빈 속을 보여줄 뿐
기차는 사람 대신
독수공방하는 무덤을 태웠다
무덤 앞으로 뻗은
흰 버선을 실었다
가고싶다는 것
사랑하고 싶다는 것
전서체의 글씨 속에 들어앉은
허벅지의 미세한 경련
천연기념물이라는 누란(淚蘭) 일 점
마른 분에서 시들어가고 있다
기차 끊긴 철길
뒤 붙인 개 두 마리
함께 이쪽을 바라보는
서러운 이승
죽은 사람들이
남은 사람들을 위로하는
제삿상 꽃잎 몇 장
나라도 그만 풀밭에 자빠져
숫사마귀처럼 섹스하고 싶었다
어린 조선이 늙은 제 마누라 곁을
사릉사릉 지나가는
저녁답 간이역
<이빈섬시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