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룸의 길
<NEWS MART>와 <NEW SMART> 사이 ---지도에 없는 미디어의 길로 접어들다
1. 베조스 현상과 워싱턴 포스트
2013년 8월 세계 언론역사를 바꾼 일이 일어났다. 인터넷 서점 아마존 최고경영자, 제프 베조스가 워싱턴 포스트를 인수한 것이다. 그보다 더 놀라운 일은 2년 뒤에 벌어졌다. 지난해 10월과 11월, 월간 온라인 방문자 숫자에서 뉴욕타임즈에 늘 밀리던 워싱턴 포스트가 기적적인 추월극을 펼쳤다. 인수 당시 순방문자가 2600만명에 그쳤던 워싱턴 포스트. 2015년 11월에 7200만명으로 방문자를 늘리면서 2년 3개월만에 무려 177%의 증가세을 보였다. 약 80년간 워싱턴 포스트의 경영을 맡았던 이들은 마이어와 그레이엄 집안인데, 쟁쟁한 언론인 가문이었다. 이런 가문이 경영난으로 쩔쩔 매던 신문사를 전기공학도 출신의 베조스가 사들인 뒤, 2년여만에 이렇게 놀라운 실적으로 바꿔놓았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일까.
공격적인 저가 마케팅으로 세계의 출판 및 소프트웨어 유통시장을 집어삼킨 베조스는 워싱턴 포스트에 와서 무슨 일을 한 것일까. 여러 가지 분석이 가능하겠지만, 한 마디로 말한다면, ‘뉴스콘텐츠의 진짜 디지털화’를 시도한 것일 뿐이다. 그는 언론인들이 고집하는 기사 생산 방식과 유통 방식을 바꿨다. 그동안 많은 신문사들은 경쟁적으로 ‘디지털 퍼스트’를 외쳐왔지만, 앞이 보이지 않는 불투명한 미래시장 앞에서 몸을 움츠린 채 수익전략에 답이 나오지 않는 계산기를 두드리며 다른 경쟁사들의 움직임만 살피고 있었을 뿐이었다. 종이신문이 이뤄놓은 기자시스템에 의존하여 기존의 수익체계에 매달리면서, 줄어드는 입지에 비명만 지르는 상황이었다. 언론인 경영자들이 모두 두 손 들었던 시장에서, 세계 전자책시장 점유율 65%를 거머쥐고 DVD 음반시장 점유율 30%를 낚아챈 베조스가 와서 순식간에 수익 모델로 만들어놓은 이 현상은, 디지털 미디어 시장의 중대한 시사점이다.
언론 바깥의 경영자가 기존 언론사에 몸담은 리더보다 저널리즘이 가야할 트렌드를 더 잘 읽어냈다는 얘기다. 디지털 뉴스 소비자가 어떤 콘텐츠를 원하고 있고 어떤 스타일로 소비하는지를 분석하여 미디어 100년의 스타일을 바꾸는 것이 수익을 창출하는 길이란 걸 실력으로 웅변해준 셈이다. 워싱턴 포스트가 지니고 있던 뉴스콘텐츠 경쟁력에 베조의 디지털 ‘촉수’가 더해지자 일정한 ‘응답’이 온 것이다.
2. 뉴욕타임즈와 온라인 유료화
뉴욕타임즈는 2015년 7월에 유료 인터넷독자가 100만명을 넘어섰다. 이 신문은 2006년에 뉴스 유료화를 했다가 참담한 실패를 경험한 뒤 다시 무료 뉴스를 공급했다. 그러다 2011년에 다시 유료로 바꿔 4년만인 올해 7월에 대기록을 세운 것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이 신문이 이런 성과를 거둔 것은 투철한 변신 노력에 있었던 것으로 보여진다. 이 신문사는 신문 1면 편집회의를 접고, 디지털 기사 선정을 위한 편집회의를 시작했다. 이 회의에는 신문 기사를 관장하는 데스크 뿐 아니라, 사진 및 동영상 엔지니어와 그래픽 전문가들도 참여하여 미디어 소비자에 맞는 콘텐츠로 뉴스를 가공하는데 공을 들인다. 모바일형 맞춤 콘텐츠 개발을 위해 심혈을 기울인다. 예를 들면 애플워치 출시에 맞춰 ‘한줄 뉴스’를 내보냈다. 뉴스 소비자의 눈높이에서 콘텐츠를 세심하게 리메이킹함으로써 뉴스 ‘가치’를 돈을 내고 구입하고 싶도록 올려놓았다.
“5년 뒤에도 우리가 종이신문을 찍고 있을지 확신할 수 없다. 종이신문을 찍든 인터넷 버전을 내든 그게 중요한 건 아니다.”(2007년. 이스라엘 일간지 인터뷰)
“우리는 언젠가 뉴욕타임즈의 종이신문 인쇄를 중단할 것이다.”(2010년. 세계신문협회총회서)
뉴욕타임즈의 발행인 아서 슐츠버거의 저 발언들은, 세계 언론계를 뒤흔든 폭탄발언이었다. 그러나 그 말이 조만간 현실화될 것에 대해 의심하는 이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가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자신의 신문에 대해 저런 말을 한 것은 ‘절망’을 표현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는 사실에 주목하는 이는 많지 않았다. 저 말의 강조점은 종이신문의 종말에 있는 것이 아니라, 종이신문 이후의 수익 창출 가능성에 대한 희망에 있었다. 그들은 “전세계 구독자들이 수준 높은 저널리즘에 대해서는 기꺼이 돈을 낼 의사가 있다는 것을 증명해보이겠다”(뉴욕타임즈 CEO 마크 톰슨)는 의지를 다지고 있었고, 온라인의 재도약은 그런 결과였다.
뉴욕타임즈의 변화는 뉴스룸 개혁에서부터 시작됐다. 그들은 뉴스의 원칙을 다시 세웠다. ‘좋은 이야기’를 만들고 그것이 ‘디지털 공간’을 잘 여행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우리가 할 일이다. 그들은 방문자 트래픽만 따지는 것이 아니라, 뉴스 소비자의 반응을 체크하는 인터랙션 지표를 개발해 ‘성과’를 측정하는데 쓰고 있다. 그들의 유료화 전략은 첫 한 달 동안 10건을 무료로 볼 수 있게 해주고, ‘볼 만한 가치’를 확인한 뒤 그 이상을 보려면 유료결제를 하도록 하고 있다. 무료에서 유료로 넘어오는 ‘마음의 턱’을 낮추기 위해 집중적으로 공을 들인다. 다양한 구독상품으로 유혹하고 집요하게 알린다.
3. 대한민국 신문사 디지털룸에선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나
워싱턴포스트나 뉴욕타임즈의 경우가, 우리에게도 적용될 수 있는 ‘정답’은 아니다. 그들의 시장에서 일어난 상황일 뿐이며 지속될 수 있는 성공인지도 알기 어렵다. 단기적으로 성과를 거두고 있지만 디지털 수익의 증가가 종이신문 수익의 감소를 아직까지는 상쇄하지 못하는 게 사실이다. 베조스의 디지털 마케팅 감각에 의지한 워싱턴포스트는 수익 확대를 위한 대책이 뚜렷하게 제시되지 않고 있고, 온라인에서 회생한 뉴욕타임즈는 현재의 증가 추세가 사실상 불안불안하다. 두 신문사 모두 저널리즘 자체의 생존력이나 활력을 찾아낸 것이라기 보다는 독자확장의 노하우를 이제 겨우 파악한 것이라는 진단도 있다. 테크놀로지가 언론을 지배할 수는 있지만 결국, 뉴스소비자들이 갈구하는 것은 콘텐츠의 효용과 가치일 뿐이라는 ‘언론의 바탕에 깔린 진실’이 어떻게 이 새로운 생태계에서 구현되어야 하는지가 여전히 대답되지 않은 채로 남아있다.
우리나라의 디지털 뉴스룸의 상황 또한 안개 속에 있는 것은 마찬가지다. 한국의 인터넷 뉴스시장은 포털의 '가두리양식장‘에 불과하다는 시니컬한 지적이 있다. 뉴스 생산자인 각종 미디어들은 네이버와 다음을 비롯한 포털에 뉴스를 공짜로 내놓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으며, 그것을 재(再)유통하는 포털은 뉴스를 선별하는 강력한 ’미디어의 미디어‘기능을 수행하면서 시장 전체를 흡입하고 있는 상태이다. PC를 기반으로 한 인터넷 뉴스시장의 경우 과도기적인 특징을 지니고 있다고 본다면, 현재 급속히 이행되고 있는 모바일 뉴스 시장이 향후 미디어 판도의 가늠자가 될 가능성이 있다.
모바일의 경우는, 포털이나 기존의 언론 브랜드들이 장악하고 있는 ’가두리‘에서 비교적 자유롭다. 새로운 브랜드의 진입 장벽도 상대적으로 낮다. 이 새로운 시장으로 미디어와 콘텐츠 플랫폼들이 일제히 몰려들고 있는 상황이다. 춘추전국의 패권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뉴스 콘텐츠의 생산자들은, 이 시장에서 수익 구조와 생존 방식을 찾지 못한다면, 더 이상의 활로를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다.
올들어 국내 진출을 선언한 페이스북의 인스턴트 아티클은 페북의 기사 링크를 클릭하는 것을 도와주는 서비스를 들고 들어온다. 트위터는 작년 10월부터 모멘츠라는 뉴스 큐레이션 서비스를 시작했다. 국내 포털도 바쁘다. 카카오는 지난 1일 '1boon' 서비스 출시를 발표했다. 1분 내에 소비할 콘텐츠를 제공하겠다는 것이다. 네이버는 맞춤형 모바일 검색을 강화하기로 했다. 구글은 로딩속도를 확 줄이는 서비스를 시작했고 애플이나 삼성과 같은 단말기 회사들도 뉴스 큐레이션에 뛰어들었다. 이런 싸움터에서, 기존의 뉴스 미디어들은 어려운 포지셔닝을 해나가야 할 판이다.
모바일은 3초의 전쟁터이다. 휴대폰을 이용하는 이들은 3초 이상의 로딩 시간을 견디지 못한다. 현재 언론사들의 페이지로 넘어가는 로딩속도는 많은 경우 8초까지 걸린다. 페이스북 모바일의 인스턴트 아티클의 속도는 0.8초라고 한다. 이 속도를 이기지 못하면 국내 언론들의 모바일 시장의 승산은 없다고 봐야 한다. 또 이 시장은 뉴스 큐레이션이 힘을 발휘하는 장터이다. 뉴스 큐레이션은 뉴스의 가치를 평가하고 배열하는 기술이다. 신문들이 해왔던 ‘편집’의 영역이기도 하다. 그러나 새로운 뉴스 소비자를 겨냥한 편집이기에 전혀 다른 방식의 전략들과 기술들이 작동한다는 점이 문제다. 방송사도 들어왔다. 특유의 동영상 감각으로 소비자들을 사로잡기 시작했다. 스브스와 마봉춘, 캐백수는 방송이 스스로의 이름부터 바꿔가며(B급 포지셔닝이라고 부른다) 새로운 시장에서 윙크를 보내는 현장의 열기를 말해준다. 신문사의 디룸은 이 비좁고 눈 터지는 시장으로 비집고 들어가 자기의 존재감과 정체성을 만들어내기 위한 만만찮은 전투를 준비하고 있는 셈이다.
4. 디지털룸은 어디로 갈 것인가
최근 디지털 미디어의 혁신 현장으로 잠시 가보자. 수단 난민들의 절박한 풍경을 사방에서 체험하며 볼 수 있는 뉴욕타임즈의 기사는, 저널리즘의 새로운 장이라고 볼 수 있다. 그들은 내전을 피해 고향을 등진 난민들의 아이들의 참상을 생생하게 보여주기 위해 상하좌우 360도 회전하는 카메라로, 아이들의 시선으로 주위를 볼 수 있는 ‘가상현실 저널리즘’의 모델을 제시했다.
스포츠 중계 데이터와 규칙을 이용해 기사를 쓰는 로봇 저널리즘도 등장했다. 기자들이 작성한 문장과 거의 차이가 없는 기술적 수준까지 도달해있는 상황이다. 언론재단이 로봇이 쓴 기사를 제시하고 여론 조사를 해본 결과, 81%가 사람이 쓴 것이라고 답했다. LA타임즈는 퀘이크봇이라는 로봇으로 지진 데이터를 분석해 기사로 썼다. 진도를 24시간 체크해서 일정 기준을 넘으면 자동으로 기사를 쓰는 시스템이다.
15초 내외의 짧은 동영상을 활용하여 아예 모바일 뉴스소비자를 겨냥하는 기사들도 늘어나고 있다. 뉴스 플랫폼을 겨냥해 기사 스타일과 언론사 정체성까지도 바꿔나간다. SBS는 SNS에 기반한 흥미로운 콘텐츠를 개발한 스브스뉴스로 온라인저널리즘어워드 대상을 받기도 했다.
이런 노력들이 반드시 성공적이라고 말할 수는 없으며, 지금 일정한 성과를 거뒀다고 해서 계속해서 효율적일 것이라고 말하기도 어렵다. 다만 뉴스의 가치를 만들어내고, 그것을 뉴스 소비자에게 매력적인 ‘상품’이 되도록 하는 대원칙은 통할 수 밖에 없다. 거기에 저널리즘이 100년을 견지해온, 소통의 근원적인 목표, ‘알 권리’와 ‘아는 즐거움’을 잊지 않는 것 또한 중요할 것이다. 2016년 벽두의 디지털 룸에는 혁신과 창조의 전의(戰意)가 피어오른다. /빈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