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형이가 나온다.
총각귀신이 나온다.
길달문 밖에 해는 지고,
귀신들의 오가는 술잔,
그릇 깨지는 소리,
허옇게 무너지는 저 달빛
너울거리며
봄 삼월 복사꽃 가지 위에 앉아
뉘네집 처녀 하나 잡아올 궁리를 하나.
길달문 밖 / 정민호
정민호라는 이름이 낯설지 모른다. 이 시가 실린 ‘강변의 연가’가 내 손에 들어온 건 중학교 시절이었다. 당시 경주의 근화여고 교사였던 이 시인의 시들은 ‘맛있는 언어’에 대해 체험하게 해줬다. 20세기말을 살아가던 신라 사내의 생생한 감수성을 어린 나는 절절한 공감으로 피부호흡하듯 빨아들였다. 경주는, 그때나 지금이나 내게 현실의 공간이라기 보다는 설화의 공간이다. 아마도 눈을 가린 채 거기 어디에 데려다 놔도 냄새로 알아맞힐 수 있을 것 같다. 이 낡은 고도(古都)엔 특유의 냄새가 있다. 도시의 냄새 뿐 아니라, 사람도 마찬가지로 냄새가 난다. 매캐한 연기 냄새같은, 혹은 물비린내같은, 혹은 익어가는 능금냄새같은, 목소리와 웃음과 설화적인 위악(僞惡)이, 그곳 사람 누구에게나 있다. 그곳에선 아이들에게조차도 조금 영감냄새가 난다. 희한하다. 시인 정민호는 그 냄새를 시에다 옮겨놨다. 나는 시를 읽는 게 아니라 시의 언어들을 코 끝에 대고 냄새를 맡는다.
이 시는 조금 무섭다. 아니 무섭다기 보다는 애들을 달랠 때 하는 ‘겁주기’로 알맞다. 시 속에서 낯선 말은 비형이와 길달문 두 가지 밖에 없다. 나머지는 그냥 신라의 밤냄새다. 신라의 밤소리다. 그러나 비형이와 길달문의 외연은 간단하지 않다. 그게 감이 잡혀야 시가 제 맛을 낸다. 비형은 신라 제25대 진지왕의 아들이다. 그런데 좀 이상한 아들이다. 왕은 당시 최고의 미녀로 꼽히던 도화랑을 좋아했다. 그런데 그녀는 유부녀였다. 당시 신라의 성(性)은 지금으로서도 이해하기 어려울 만큼 개방적이고 사랑의 자유가 윤리보다 중시되는 시대였다. 문득 보았던 한 여인의 놀라운 미색이 그를 뒤흔들었을까. 진지왕은 한밤중 궁궐에서 뛰어나와 도화녀가 산다는 사량부로 달려간다. 앞뒤 볼 것 없이 덤벼들어 그녀를 범하려 했다. 그때 도화가 말한다. “왕이시여. 저는 남편이 있는 여자로 왕을 모실 수 없습니다.” 반듯하게 앉은 채 차갑게 대하는 그녀의 태도에 진지왕은 문득 제정신이 돌아왔다. 문란한 세상, 그리고 연심에 사로잡힌, 신라 최고위의 사내라 할지라도, 여인이 들이대는 ‘윤리 교과서’엔 어쩔 도리가 없었나 보다. 머쓱한 표정이 되어 진지왕은 도화의 처소를 나온다.
그러나 그 일이 있던 해에, 진지왕은 왕위에서 추방되고 죽음을 맞는다. 또 2년 뒤에는 도화의 남편도 어쩐 일인지 죽고 말았다. 남편이 죽은 뒤 열흘쯤 지났을 때 도화의 방으로 한 남자가 들어왔다. 보니, 진지왕이다. 도화는 깜짝 놀란다. “아니, 돌아가신 왕이 어떻게 여기 오셨습니까?” “내 죽었지만 너를 못잊어 이렇게 찾아왔느니라.” “그러나 왕이시여. 산 사람과 죽은 사람이 어찌 사랑을 나눌 수 있겠습니까?” “무슨 소리냐? 너는 지난 번에 내게 남편이 있는 몸이라 안된다 하지 않았느냐? 이제 남편이 죽고 없으니 내 말을 듣지 않을 이유가 사라졌도다.” 이날 도화는 진지왕의 귀신과 잠자리를 같이 했다. 이 이상한 밀월은 일 주일간 계속된다. 이후 그녀는 사내아이를 낳았는데 그가 바로 비형이다.
26대인 진평왕은, 죽은 선왕의 아기가 태어났다는 소문을 들었다. 그는 비형을 궁중에 데려와 키운다. 비형이 15세가 되었을 때 왕은 집사(執事)라는 벼슬을 주었다. 맡은 일을 척척 처리해서 왕이 기뻐했다. 그런데 비형이 밤마다 어디론가 사라졌다가 새벽이 되어 돌아온다는 소문이 돌았다. 왕이 가만히 군사들을 시켜 알아보았다. 비형이 가는 곳은 경주 서천가에 있는 두두리 언덕이었다. 이 언덕은 죽은 귀신들이 춤추고 노래하며 노는 곳이다. 비형은 귀신들 속에 끼어 신나게 놀다가 새벽에 절에서 종소리가 들리면 돌아온다는 것이었다. 군사들은 축지법을 쓰듯 성큼성큼 내달려 성벽을 훌쩍 뛰어넘는 비형을 보면서 혀를 내두른다. 진평왕은 비형을 불러 물었다. “네가 두두리의 귀신들과 밤마다 논다 하는데 사실이냐?” 비형은 서슴지 않고 대답했다. “예. 제가 그들과 놀다가 새벽 종소리와 함께 궁궐로 돌아옵니다.” “그렇다면 네가 귀신들을 모아 다리를 놓을 수 있겠느냐?” “다리를요?” “그래. 오릉 서남쪽에 있는 신원사 절의 북쪽에 개천이 있지 않느냐. 그곳 개울물이 너무 깊어 다리를 놓기가 어렵다고 들었느니라. 네가 귀력(鬼力)을 빌려 그 일을 할 수 있을 것 같구나.” “예. 제가 한번 해보겠습니다.”
이튿날 밤 비형은 귀신들을 집합시켜 돌을 나르게 하고 다듬게 했다. 그리고 하룻밤 사이에 큰 돌다리를 놓았다. 사람들은 이것을 귀교(鬼橋)라 불렀다. 왕은 크게 기뻐하여 비형에게 물었다. “네가 친하게 지내는 귀신 가운데 나라의 일을 도울 만한 자가 있느냐?” “길달이란 자가 있습니다.” 비형은 길달을 왕에게 데려왔다. 진평왕은 길달에게도 집사 벼슬을 내렸다. 당시 신하 중에서 아들이 없던 각간 임종을 불러, 길달을 아들로 삼게 하고 길달이 드나드는 문을 만들게 하였다. 길달은 그 문루 위에서 밤마다 잠을 잤는데, 사람들은 이 문을 길달문이라고 부른다. 흥륜사 남문이 있던 자리가 바로 그 터라 한다. 그런데 어느 날 길달은 세상의 일이 재미없어졌다. 그는 여우로 변신해서 도망을 쳤는데, 비형이 그걸 알고 다른 귀신을 시켜 길달을 잡아 죽였다. 귀신들은 비형의 이름만 들어도 벌벌 떨었다고 한다. 한편 사람들은 성재혼생자비형랑실(聖帝魂生子鼻荊朗室)이라 적어 문에 붙여 귀신을 쫓는 풍습이 생겨났다 한다.
삼국유사에 적힌 이 희한한 설화를 어떻게 봐야 좋을까. 그저 재미로 만들어낸 가짜 이야기일 뿐일까. 그럴 수도 있겠지만, 무엇인가를 풍자하거나 암시하는 것으로도 읽을 수 있다. 정민호의 시는 신라의 달밤을 얼핏 보여준다. 귀신들의 오가는 술잔, 그릇 깨지는 소리는 두두리 언덕에서 비형이 노는 풍경을 닮았다. 그런데 총각귀신이 나오는 건 어떻게 봐야할까. 그리고 맨 마지막 구절. 뉘네집 처녀 하나 잡아올 궁리를 하나. 이걸 어떻게 봐야 하나? 나는 저 많은 귀신들 혹은 도깨비들이, 밤마다 담을 넘는 사내들이 아니었는가 생각을 해본다. 처용집 담을 넘은 권신(權臣)도 그러했지만, 그들은 요즘의 강도나 도둑처럼 스페셜한 범죄자가 아니라, 도덕관념의 담을 이미 넘은 지도층과 보통 사람들이었을 가능성이 있다. 그들은 마음에 드는 여자를 겁탈하고 납치하려고 비형과 길달처럼 밤마다 날아다녔다. 예쁜 처녀와 유부녀들은 이런 밤도깨비들을 만나지 않으려고 꼭꼭 숨었으리라. 제발 찾아오지 말라고 글귀도 써서 붙였으리라. 윤리의 담이 무너진 사회에서, 자구책을 찾아야 했던 사람들의 두려움이 저런 설화로 남은 건 아닐까. 저 시를 읽으며 어린 나는 사람을 잡아먹는 귀신을 떠올렸지만, 가만히 보니, 귀신은 모두 ‘인간이 채 되지 못한 색귀(色鬼)들’에 대한 조롱이었을 수도 있다 싶다./빈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