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을 감아올리며
옛날 고려병원, 그러니까 지금의 강북삼성병원 건너편,
영덕정이란 중국집에서 짜장면을 먹노라니
문득 목이 컥, 메인다.
정확하게 20년전, 1987년에
나는 저 건너 고려병원 빌딩의 13층에서 근무했었다.
병원에 있었던 건 아니고, 거기 세들어 살던
제일기획이란 광고회사에 있었다.
요즘 이 기업이 외국사에 팔린다는 소문이 있어
기분이 묘하다.
나와 같이 근무하던 동기녀석은
점심 때 쯤이면 내게로 다가와
특유의 개그맨 포즈로
혀를 내밀어 한 바퀴 휙 돌리며
야, 우리 출출한데 짜장면이나 한번 때릴까?
이렇게 말하곤 했다. 그러면 옆에 있던
두해 선배는 으이구 "오씨는 그저 먹는 생각 밖에 없지?"
그렇게 말하고, 그러면 능청이 오씨는
"아이구, 선배님도 지금 배고픈 표정이
눈에 역력한데 나한테 핀잔을 주십니까요?
너무 하신 거 아닙니까요?" 이렇게 대꾸를 하고
"그래 그래 맞다 맞다, 근데 니가 말했으니
오늘 점심은 쏘는거지?"로 응수하고
"하이고오, 선배님도 벼룩이 간을 빼먹지
이제 들어온 신참이 무슨 돈이 있다고,
짜장면님이 웃으시겠네..."라고 되쏘고
그래서 우린 엘리베이터로 가면서도
시끌시끌했고, 결국 이 영덕정에
와서 앉곤 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짜장면 세 그릇 값은 정확하게 더치페이였고
아무도 그것에 대해 미안해하지도
또 불평도 없었다.
그때의 짜장면 맛이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 인생이라는 것이
이 짜장면 맛 하나를 못이긴다.
그때의 선배는 제일기획을 나간 뒤
광고회사를 전전하다가, 마침내
실업자가 되어, 요즘은 논술선생을
한다고 하고, 그때의 동기도 회사를 나간 뒤
광고회사에서 젊음을 불태우다가
더 이상 올라갈 데가 없어지자
친구가 하는 보험회사에 취직해서
먹고 살고 있다. 얼마전 만났더니
보험예찬을 하면서 하나 들어주지 않겠느냐는
눈초리를 보여서 참 딱해 보였다. 나 또한
이 짜장면 맛이 이토록 건재하며
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 동안
이 근처를 많이도 뱅뱅 돌아다녔다.
같은 짜장면을 스물 몇 총각이 먹다가
하루 사이 역할을 바꿔 마흔 중반을 넘긴
완전아저씨가 먹는다.
정말 돌아보면 어제같다. 아니,
아까 먹고간 테이블에서, 다시 와서 먹는데
그게 20년이 된 거 같다. 옛날 신선 바둑 두는 이야기가
지어낸 얘기가 아니라, 이 영덕정 이야기다.
그나저나
이 짜장면은 맛있다.
눈물이 나려 한다.
/ 빈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