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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insom Lee Mar 15. 2016

잭슨 폴락의 '넘버6'와 인공지능 인간

영화 '엑스 마키나' 속에 숨은 비밀


잭슨 폴락(1912-1956)은 1940년대 미국의 추상표현주의라는 미술 흐름을 이끈 천재화가이다. 44세에 교통사고로 숨진 그의 짧은 생애. 그러나 그 가운데서도 우울증와 알콜중독을 겪던 20대 중반엔 폐인으로 살았다.

35세(1947) 때 그는 '드리핑'이란 기법을 창안한다. 캔버스를 바닥에 깔고 막대기나 나이프를 이용해 물감을 뿌리며 그리는 놀라운 방식이었다. 그는 캔버스의 사방 주위를 돌아다니며 작업을 했다. 폴락의 드리핑 작품들은 완성된 작품으로서의 의미 뿐 아니라 작품 제작의 퍼포먼스 자체로 전위적 예술을 성격을 지녔다. 결과를 미리 예측하지 않는 우연성이 강조되는 이 기법은, 초현실주의 문학의 자동기술법과도 닮아있다. 선과 색채의 무질서와 뒤엉킴은 그 작품 제작 과정의 역동성을 암시하는 기표이기도 하다.  



알렉스 가랜드 감독의 영화 '엑스 마키나'(2015)는 회화의 측면에서 보자면 잭슨 폴락에 헌정한 작품이라 할 수 있을만큼, 폴락의 정신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개념의 축을 이룬다. 영화 속에서 인공지능의 개발자이자 인터넷 검색엔진 기업 '블루북'(비트겐슈타인의 강의록 이름이기도 하다)의 회장인 네이든(오스카 아이삭)의 비밀별장 거실엔 잭슨 폴락의 '작품6'인듯한 그림이 걸려 있다. 블루북의 컴퓨터 프로그래머인 칼렙(돔놀 글리슨)에게 네이든은 그림 이야기를 꺼낸다.


"이 그림은 어떻게 그렸을까. 이 그림을 그리려고 그렸을까. 이건 마음을 비우고 손 가는 대로 붓을 휘두른 거지. 의도적인 것과 임의적인 것의 중간 단계랄까. 폴락이 만약 작업하는 방식을 바꿨다면 어떻게 됐을까? 머리를 비우고 그림을 그리지 않고, "그리는 이유를 알기 전에는 이 그림을 그릴 수 없어!"라고 말했다면? 그랬다면 아마도 캔버스의 점 하나도 못 찍었을 거야. 대부분의 자연스러운 행동은 저절로 나오는 거잖아."



폴락은 작품 자체를 일상의 사물과 별 차이가 없게 만들었다고 할 수 있다. 인간의 '작위'가 개입되는 대신 '우연'의 밀어붙인 어떤 무엇. 네이든이 이런 말을 꺼낸 까닭은 인공지능이 진화되어가는 방향을 설명하기 위해서이다. 앞으로 진짜 기계의 몸을 가진 지적생명체가 도래하게 될까? 만약 그게 가능해진다면, 레이 커즈와일이 말한 인류 역사 최대의 '특이점(singularity)'이 현실화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아니, 태초 이래 즉 신이 인간을 비롯한 생명을 창조한 이래로 유일한 특이점을 맞는 것이다. 신의 숨을 불어넣은 생태계 바깥의 비생명체가 스스로를 진화시켜나가는 결정적 순간이 도래하는 셈이다. 그것은 언제 가능해지는가.

네이든은 이렇게 설명한다.



"분자회로(하드웨어)를 완성하고 빅데이터(소프트웨어)를 인풋과 아웃풋으로 설정해 오랫동안 끓이면 인공지능이 나타난다. 잭슨 폴락의 작품처럼, 재고 다듬고 분해하고 해체하고 최상의 것을 조합한 예술로는 다다를 수 없는 궁극적인 진화가 '우연'이라는 티스푼에 의해 완성되는 것이지." 마치 옛 연극에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기계를 타고 내려온 신(이것을 데우스 엑스 마키나(deus ex machina) 기법이라 한다)처럼, 우연이 내려와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이것이 인공지능이 인간을 넘는 순간이다."



영화에 나오는 인공지능 컴퓨터인 '에이바(ava)'는 아바타(avartar)에서 꼬리를 뗀 것이다. 기계가 지니고 있던 '인간의 대리물'이란 속성을 떼고 스스로 자신의 인격을 부여하는 존재로 나아간다는 의미를 담았으리라. /빈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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