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소를 타고 동쪽에서 오는 백발노인
왜 우린 노자를 만나야 하는가
▶ 나이 150살 때 아랍으로 간 사람
노자는 주나라의 정치 타락을 비관하여, 먼 곳으로 떠날 결심을 했다. 그가 가고자 했던 곳은 아랍지역(서역)이었다. 몇 살 때인지는 알 수 없다. 다만 태어날 때부터 81세였던 걸 감안하면 150살쯤 살았을 때가 아닐까 싶다.
그때까지 노자는 제자를 육성해 뜻을 전수한 흔적도 없고, 삶의 행적도 뚜렷하지 않다. 조물주 스타일의 정치를 가슴 속에 품었던 철학자인만큼 현실 정치 속에 뛰어들어 콩 놔라 배 놔라 할 사람도 아니었을 것이다. 말은 안했지만, 공천이니 계파니 배신이니 하는 정치타령을 무수히 들었을 것이니 신물이 났을 것이다.
왜 하필 아랍이었던가. 우주 전체를 관통하는 진리를 '접속'했던 우주인인 만큼, 노자는 세계의 넓이를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을지 모른다. 자신이 생각하고 있는 진리가 진실로 모든 것에 틀림없이 통하는지를 살펴보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 국경 검문소 함곡관서 써준 도덕경
그는 서쪽의 진나라를 지나, 국경 검문소가 있는 함곡관을 지나간다. 두 골짜기 사이에 상자처럼 움폭 패인 고개에 세워진 관문이었는데, 이곳의 검문소장은 윤희였다. 윤희 또한 그 오지에서 정신수련과 학문정진에 힘써 상당한 경지에 오른 인물이었다.
어느 날 아침 나절 멀리 동쪽에서 푸른 소를 타고 오는 백발노인이 있었다. 햇살을 받는 등뒤에선 적보랏빛 아우라가 환하게 아른거렸다. 처음 보는 사람이었다. 윤희는 뭔가 심상찮은 기운을 느끼고 그에게 나아가 큰 절을 한다. 그는 노인에게 크게 대접을 한 뒤, 이 어지러운 세상을 밝힐 몇 말씀을 남겨달라고 간청을 한다. 노인은 대접도 대접이거니와 괜히 청을 거절했다간 여권 발급을 거부하는 사태가 빚어질 수도 있다는 걸 알아차렸을 것이다. 그래. 내가 이 땅을 위해 뭔가 몇 마디 해주고 가야하긴 하겠다.
윤희가 내미는 대나무 조각에 한 글자 한 글자 써내려가다보니 오천 글자가 되었다. 며칠이 흘렀는지 몰랐다. 그간 윤희는 노자의 글을 받아들고는 연신 탄성을 내뱉었다. 한번도 들어보지 못했던 거대하고 치밀하면서도 작위적인 데가 없는 자연스런 문장이 누에의 고치실처럼 이어져나오는 게 아닌가. 도경과 덕경 81장이 다 씌어지고 노자가 다시 여장을 챙길 때, 윤희가 관직을 팽개치고 그를 스승으로 모시며 수행하겠다며 따른다. 노자는 푸른 소, 윤희는 흰 소를 타고, 멀리 서역의 사막을 향해 떠났다.
▶ 도덕경 마니아였던 톨스토이와 하이데거
두 사람은 어디로 간 것일까. 역사상 둘의 자취는 사라진 것 같다. 1788년 영국의 천주교인이 중국에 왔다가 노자의 책을 들고 돌아갔다. 이후 유럽에는 도덕경신드롬이 일었다. 로마의 보체 신부는 이 책을 라틴어로 번역했다. 러시아의 작가 톨스토이(1828-1910)는 동양사상에 심취했다. 상트 페테르부르크의 출판업자가, 톨스토이에게 물었다. "당신의 생과 문학에 가장 영향을 끼친 이는 누구입니까?" 그때 톨스토이는 이렇게 말한다. "공자와 맹자에게서 큰 영향을 받았다. 그러나 노자에게 받은 영향은 그보다 훨씬 거대했다." 러시아에서 도덕경을 퍼뜨린 사람은 톨스토이였다.
노자에 미친 또 하나의 사상가는 독일의 하이데거(1889-1976)였다. 그는 유럽에서는 튀는 철학자였지만, 동양에서 보자면 매우 상식적인 지식인으로 보이기도 한다. 그는 서양의 존재론 사이에서 '없음'의 가치를 발견한 사람이었다. 하이데거는 도덕경 11장의 有之以爲利, 無之以爲用(유지이위리, 무지이위용)이란 구절에 '뻑' 갔다. 이 말을 풀면 '있음이 가치가 있는 것은, 없음이 어떤 기능을 하기 때문이다'란 의미다.
컵 둘레의 '있음'이 가치가 있는 것은 그 안의 '없음'이 기능을 하기 때문이다. 문이 '열릴 수 있음'이 가치가 있는 것은 그것이 '열리지 않음(닫힘)'이 기능을 하기 때문이다. 방의 사방 벽이 가치가 있는 것은 그 안의 빈 곳(없음)이 기능을 하기 때문이다. 마차의 바퀴테두리와 살이 가치가 있는 것은, 테두리 사이의 빈곳이 기능을 하기 때문이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의 근무가 가치가 있는 것은, 주말의 쉼이 기능을 하기 때문이다. 입 속이 꽉 차 있다면 음식을 먹을 수 없다. 방을 넓히는 방법은 집은 큰 것으로 갈아치우는 방법도 있지만 그보다 훨씬 쉬운 것이 방에 들어있는 물건들을 치워 비우는 일이다. 이런 사례들이 말하는 중요한 착안은 바로 '없음의 효용'이다. 소용없어 보이는 것에 큰 소용이 숨어있다. 무(無) 속에 유(有)가 들어있다는 통찰에 하이데거는 유레카를 외쳤다.
하이데거가 서재 벽에다 붙여놓은 것도 노자의 글귀였다. 15장에 나오는 두 구절이다.
孰能濁以靜之徐淸
孰能安以久動之徐生
(숙능탁이정지서청 숙능안이구동지서생)
나는 하이데거가 어떻게 저 구절을 제대로 이해했는지가 더 놀랍다. 저 말은 도덕경 속에 100년쯤 살아야 체득할 수 있는 수준의 '우주관 겸 정치관'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는 어떻게 아느냐고? 내가 뭘 알겠는가? 맹인모상으로 알음질을 해보는 것이다.
"누가 할 수 있겠는가, 탁한 것을 고요함으로 천천히 맑게 만드는 것을
누가 할 수 있겠는가, 죽은 것을 오래 꼬물거리게 해서 서서히 생명을 얻게 하는 것을"
▶ 조물주에게 길을 묻다
노자는 이것은 누가 할 수 있겠느냐고 물었지만, 사실은 조물주가 시범으로 매년 보여주시는 사업이다. 가을이 되면 봄 여름의 무성한 생명이 일궈놓은 탁한 것들을 고요하게 만들면서 깨끗하게 정리를 한다. 봄이 되면 다 죽은 것 같은 것에 빛을 비추고 물기를 흘려 천천히 생명을 탄생시킨다. 세상의 생태계가 사계절을 사이클로 하여 돌아갈 수 있도록 해놓은 조물주는, 우리가 보기에는 아무 것도 없는 무(無)이다.
언제 하느님이 봄마다 나서서 꽃 육성사업을 벌이는 것을 본 적 있는가. 가을에 잎사귀 떨어뜨리기 운동을 한 적이 있던가. 그렇지만 아무 형상도 없는 그 무엇에서 만물을 움직이는 거대한 리더십이 나온다. 이렇게 자연스럽게, 번잡과 소란을 진정시키고, 또 힘이 빠진 세상에 보이지 않는 에너지를 불어넣어 생기를 회생시키는 지도자가 될 수 있겠는가. 노자는 그것을 세상에 물었고, 하이데거는 그것을 '무'가 만들어내는 위대한 권능으로 이해했다.
▶ 짜라투스트라와 노자
노자가 아랍으로 갔던 그 시절, 그곳에는 고대 페르시아제국이 번성하고 있었다. 그곳의 아케메네스 왕조는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유일신 종교인 조로아스터교를 왕국의 종교로 채택하고 있었다. 조로아스터는 짜라투스트라와 같은 사람이다. 짜라투스트라는 아후라 마즈다라는 지혜의 신을 신봉했다. 이 종교를 배화교라고도 불렀는데, 그것을 리추얼 때 불꽃이나 타는 냄새를 신성한 분위기를 자아내는데 활용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우주가 선과 악으로 이뤄져 있다고 생각했으며, 기존의 신들을 통합해서 아후라 마즈다 밑에 두어 신앙체계를 새롭게 정리했다. 노자와 윤희는 페르시아까지 갔을까. 그곳에서 저 신앙에 대해 어떤 의견을 내놨을까. 우주선악설의 신화적 철학에 머문 그들에게, 현대과학과 의미심장한 일치점을 지닌 노자우주론이 스며들 수 있었을까. 짜라투스트라 시절에 노자가 그곳을 향해 갔다고 하니, 기묘한 흥분이 생겨나지 않는가.
▶ 왜 도덕경을 읽어야 하는가
스무살에도 읽었고 마흔살에도 읽었고 지금도 읽는다. 읽어도 무슨 말인지 늘 모르겠다. 이 책은 뭔가를 말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말해진 무엇인가를 깨려고 하는 것 같다.
그가 소통하고자 하는 것이 말보다 크고 말보다 작으며 말보다 예민하며 말보다 흐릿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도덕경에서 무엇인가를 찾아내겠다고, 그 교훈 속에서 내 삶의 등대를 발견하겠다고, 행간을 수색하며 불을 켜던 눈들은 모두 무위로 돌아간 것 같다. 응당 그것이 있을만한 곳이, 사실은 인간이 그동안 그것을 발견하지 못하도록 방해해온 함정이었다는 인식이 문득 찾아왔을 때, 이 말씀의 행렬은 내게 마음이 들어가서 숨쉴 수 있는 여지를 내주었던가. 모르겠다.
도덕경에는 도덕이 없다. 도덕을 찾아나섰던 많은 이들은 도경과 덕경이 합쳐져 생겨난 이름인 것을 알고 황당해 한다. 도와 덕을 합친다고 우리가 알고 있는 그 도덕이 되는 것도 아니다. 12년전에 낸 <옛공부의 즐거움>에는 '도덕경 비밀클럽'이란 글이 들어있다. 도덕경의 많은 구절들이 이 땅의 지식인들과 예술가의 언어와 사념 속에 얼마나 깊숙이 스며들었는가를 좌충우돌로 분석한 가벼운 글이다. 옛글을 안다는 것이 얼마나 즐거운지를 입증하려고 나름으로 용을 쓰며 풀어낸 것인데 졸렬함을 면치 못한 우스개일 뿐이다. 도덕경이 수많은 지식인들의 변주를 통해 우리 마음의 일부, 우리 견해의 일부가 되어있다는 통찰은 여전히 유효하다. 우린 도덕경의 행간 속에서 살고 있으며 도덕경의 관점의 끝을 잡고 여전히 고민하고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 시인 송욱과 임어당이 꼽은 최고의 책은 도덕경
몇 권의 도덕경 중에서 오강남 선생이 펴낸 현암사 도덕경을 너덜너덜해진 상태로 자주 읽는데, 그 머리말엔 잊지 못할 얘기가 몇 개 있다.
1980년에 돌아가신 서울대 영문과 교수이자 시인인 송욱은 작고 직전에 한국일보와 인터뷰를 했는데, 자신의 수천 권의 장서 중에서 딱 한권만 꼽으라면 도덕경의 주석을 모은 책인 '노자익'을 택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지성과 감수성으로 한 시대를 아로새긴 그가 다른 책을 다 버리고 이것 한 권만을 택한 건 어떤 의미였을까. 이 책이 숨긴 무한한 영감의 원천을 그가 발견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도덕경은 모든 지식을 버리고, 모든 수식어를 버리고, 모든 삶의 너울들을 버리고난 뒤, 이윽고 찾아나선 모태의 자리같은 것이라고 나는 믿어왔다. 이 책은 모든 책들의 고향이며 사유들의 시작이며 꿈들이 피어나는 계곡같은 것이다.
임어당도 동양의 글 중에서 이 책을 가장 먼저 읽어야 한다고 말했고, 도덕경을 영문으로 번역한 진영첩은 "도덕경이 없었다면 중국인의 성격이 달라졌을 것"이라고 단언한다. 헤겔이나 하이데거도 이 책에 심취했다는 오강남 선생의 머리말을 읽으면서 나는 '책의 책'이라는 개념을 마음 속에 심었던 것 같다.
▶ 말해지지 않은 것을 더듬거리며 말하기
수많은 책들이 목표로 해온 '뭔가 말하기'가 담겨있는 게 아니라, '말해지지 않는 것들'을 어떻게 말할 것인가에 대한 어눌한 혀의 분투가 들어있는 책에 가깝다. 나는 더 나이 들어서도 이 책을 읽고 있음에 틀림없겠지만, 이 즈음에 한번, 내 방식대로 노자라는 분과 미팅을 좀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않으면 그냥 지나친 사람만 될 거 같아, 섭섭한 기분이 들까 싶어 저지르는 우행이다. 그래도 좋다. 읽으며 더 캄캄해지는 독서를 한번 더 나아가 보리라. binsom@copyrigh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