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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insom Lee Dec 24. 2015

명동 술집 '은성'의 기억

박인환, 전혜린, 그리고 최불암의 어머니 이명숙

1958년 가을, 명동의 막걸리집 ‘은성’에서 박수소리가 쏟아졌다. 술집 주인인 이명숙(86년 작고)의 외아들인 18세 최영한이 서라벌예대에 합격했기 때문이다. 술을 마시고 있던 시인 수주 변영로(1897-1961)가 술잔을 내밀었다. “이제 어른이구나. 술 한 잔 받아라.” 머리를 긁적이며 받아 마신 뒤 막걸리잔에서 술 지게미를 털어내던 영한에게 이번엔 뺨따귀 날리는 손바닥이 날아왔다. “이 눔이 곡식을 함부로 바닥에 버려?” 최영한은 연기자이자 전 국회의원인 최불암의 본명이다. 


그의 부친 최철은 인천 최초의 영화제작자였는데 ‘수우’를 제작하던 48년에 세상을 떠났다. 최불암이 여덟 살로 초등학교 2학년 때였다. 어머니는 대한제국 궁내악사를 지낸 분의 딸로 남편을 여읜 뒤 인천 동방극장 지하에 ‘등대뮤직홀’이란 음악다방을 운영하다가 명동으로 와서 ‘은성’을 차린다. 이곳은 가난한 예술가들의 아지트가 된다. ‘명동백작’으로 불린 소설가 이봉구, 수주를 비롯해 천상병, 박인환, 김수영, 박봉우 등의 시인과 김환기, 손응성 등 화가들이 단골이었다. 



1956년 3월 저녁에 ‘은성’에 앉은 박인환은 시를 쓰고 있었다. 쌓인 술빚이 미안해서 시로 갚으려했다는 얘기도 있다.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그 눈동자 입술은/ 내 가슴에 있네”로 시작하는 ‘세월이 가면’은 거기서 탄생한다. 언론인이자 극작가였던 이진섭(1922-1983)은 이 시를 받아들고 작곡을 한다. 그 자리에는 가수 나애심(가수 김혜림의 모친, ‘과거를 묻지 마세요’‘백치 아다다’가 유명하다)이 있었는데 이 즉흥곡을 흥얼거렸다. 이후에 테너가수 임만섭이 합류해 다시 노래를 불렀고 행인들까지 둘러서서 감상하면서 박수로 열광했다. 박인환은 이날 낮에 망우리에 있던 첫사랑 여인의 묘지에 다녀왔던 터라 비감한 마음이 시에 담겼을 것이다. 이 무렵 박인환은 천재 시인 이상(1910-1937)의 20주기를 기념한다면서 거의 날마다 술을 마셨다고 한다. 사흘 뒤 그는 화가 김훈(1924- )에게 자장면을 한 그릇 얻어먹은 뒤 만취한 상태에서 심장마비로 숨졌다. 그리고 첫사랑이 있는 망우리 묘지에 묻혔다. 


죽기 며칠 전 그는 친구였던 시인 김수영을 찾아가 자신의 만년필을 불쑥 내밀었다. 술집에 술값 대신 맡겼던 것을 찾아온 것이었다. 당시 김수영은 그를 “경박하고 값싼 유행의 숭배자”라고 비판했고 한 동안 절친했던 박인환과 절교를 선언한 상태였다. 박인환은 ‘카사블랑카’의 험프리 보가트를 흉내내려고 상고머리를 하고 다녔고 러시아 시인 에세닌이 자살하기 전에 찍었던 사진을 보고 미군용 담요로 발끝까지 닿는 긴 외투를 만들어 입고 다녔다. 박쥐우산, 레인코트, 진회색 점퍼 따위가 그의 트레이드 마크였다. 한때 외항선을 타기도 했던 그는 소문난 댄디보이였다. 그는 이런 말도 했다. “여름은 통속이고 거지야. 겨울이 와야 두툼한 홈스펀 양복도 입고 바바리도 걸치고 머플러도 하고 모자도 쓸 거 아냐.” 친구 이진섭에게는 이런 쪽지를 써서 주었다. “인생은 소모품. 그러나 끝까지 정신의 섭렵을 해야지.” 주면서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누가 알아? 이걸로 절필을 하게 될지?” 장례식에서 친구들은 그의 관 위에 평소에 좋아했던 조니 워커를 쏟아부었다. 시인 조병화가 조시(弔詩)를 읽었다. “너는 너의 시와 같이 먼지도 없이 눈을 감았다” 


1965년 1월9일 수필가 전혜린(당시 31세)은 밤색 밍크코트를 입고 명동의 ‘은성’에 앉아있었다. 혜화동 대학로의 학림에서 친구를 만나서 함께 왔다. 거기서 그는 작가 이봉구를 만났다. 그녀는 쾌활했다. “국제 펜클럽대회에 나가려고 건강진단을 받았거든. 근데 제 몸이 괴물처럼 건강한 거야....술을 좀 마셔봐야겠어. 어떤 것인지를 음미해보자는 거죠....곧 수필집을 낼 거예요. 제목도 다 정해놨어요.” 그는 웃으며 큰 소리로 말을 했다. ‘은성’을 나오면서 전혜린은 이덕희의 귀에 손나팔을 하며 속삭였다. “세코날(수면제) 40알을 흰 걸로 구했다구!” 2년전 마릴린 먼로가 숨졌을 때 그 옆에는 세코날 60알이 발견된 것을 그녀는 의식하고 있었을까. 먼로는 생전에 이런 말을 했다. “할리우드는 키스 한번에 1천 달러를 지불하지만 영혼은 50센트인 곳이다. 나는 1천 달러 제의를 거부해서 50센트를 지켰다.” 


전혜린은 그 저녁 소설가 김승옥과 이호철을 만나 천장이 낮은 대폿집으로 가서 다시 한잔을 한다. 그는 연신 다리를 건들거리며 웃었다. 담배를 피우는 전혜린의 손 밑에 때가 새까맣게 끼어 있었는데 작가 중 누군가가 농담을 한다. “검은 테를 두른 부고장 같군.” 밤 10시 그는 일어나 일행에게 손을 흔들어보이고는 사라졌다. 이튿날 수유동 숲길에서 전혜린은 숨진 채로 발견된다. 이튿날 신문에서 1단 짜리 여섯 줄 기사가 올라왔다. “희귀한 여류 법철학도이며 독일 문학가인 전혜린의 죽음을 수면제 과용으로 인한 병사라고 발표했다.” 전혜린의 부친 전봉덕은 29세 때 일본 고등문관시험의 사법과와 행정과 양과에 합격한 수재였다. 그는 친일경찰이 되어 독립군을 색출하는 일을 했고, 해방 뒤 김구 암살사건과 국회 프락치 사건 등의 배후에도 거명이 되는 사람이다. 전혜린은 열정적인 아버지를 존경한다는 글을 남기기도 했다. 


은성은 사라지고, 박인환도 전혜린도 사라졌다. 부박해보이는 낭만과 격정에 사로잡힌 치기마저도 감미로워 보일 때가 있다. 너무 때묻고 영악해진 채로 그들보다 더 오래사는 삶에 대한 본능적인 자괴감일까. 지나간 것들의 고단하고 불온한 맥락들은 지워지고, 띄엄띄엄 아름다웠던 것들만 기억으로 간직하기 때문일까.  /빈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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