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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문자향

문자중독

왜 읽는가

by Binsom Lee



“구루(Guru)여. 이 이상한 병에 관해 말씀해주소서. 어느 날부터인가 어느 블로그에 드나들기 시작했는데 이제 하루라도 들어가지 않으면 불안해서 견디기 어렵나이다. 그의 글은 음험한 매혹을 드리우고 있어서 중독성이 있는 듯 합니다. 읽으면 읽을수록 갈증이 채워지는 게 아니라 더욱 갈증을 키워서, 괴로움을 줍니다. 게다가 습관이 만들어낸 욕망의 관성을 끊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카페인처럼 일시 즐거움을 주지만, 사실은 사유를 중지하게 하고 오직 그 글줄기만 따라다니게 하는 폐인이 되게 합니다. 그의 글은 한편으로는 교양을 품는 듯 하지만 사실은 매우 편벽된 미학적인 나르시시즘에 가까운 것이어서 사실은 보편성에 바탕한 건전한 지혜를 황폐하게 합니다. 유혹하는 글쓰기가 이 질병을 만들어낸 만큼 그에게 일정한 책임이 있지 않을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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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루는 그녀를 쳐다보며 나직히 물었다.

“그가 새로 올리는 글을 모두 다 읽는지요?”

그녀는 대답했다.

“물론입니다. 새 글이 올라오면 가장 먼저 읽는 게 나입니다. 사실 그가 무슨 글을 올렸을까 하는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습니다.”

구루는 다시 물었다.

“글이 곧 그 사람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그녀는 잠깐 생각한 뒤 대답했다.

“글이 반드시 그 사람의 모든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글을 읽다보면 글 속에서 감지되는 인격(人格)에 매료되는 점이 있는 게 사실입니다. 글이 체온을 담지 않았다면 이런 집착도 생겨나지 않았겠지요.”

구루는 목소리를 조금 높여 이렇게 말했다.

“그 중독이 그에게서 나온 것이라고 생각합니까? 아니면 스스로에게서 나온 것이라고 생각합니까?”

그녀도 약간 고조된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그의 글이 없었다면 이런 현상이 생기지 않았을 것이니, 그에게서 나왔다고 할 수도 있고, 그의 글이 있었다 하더라도 내가 그것과 적절하게 거리를 둘 수 있었다면 문제가 없었을 것이니, 스스로에게서 나왔다고도 할 수 있겠지요.”

구루는 물었다.

“그가 올린 글을 모두 다 읽었습니까?”

여인은 대답했다.

“아닙니다. 대부분을 읽었다고 생각하지만, 그의 글이 워낙 많아서 다 읽지는 못했습니다. 이전의 글들은 가끔 읽으며 음미하는 정도입니다.”

“그렇다면 그의 글 자체에 대해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의 글쓰기와 생각이 움직여가는 현재의 동선(動線)에 관심이 있다고 봐도 되겠군요.”

“그것과 그것이 큰 차이가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다. 글에 관심이 있으니 글쓰기와 생각의 움직임에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만약 글에 대한 관심이 컸다면 올라오는 글을 기다려 읽는 일보다, 이전의 글들을 찾아읽는 걸 택하였을 겁니다. 그대의 관심은, 글 자체에 대한 관심이 아니라 그 글이 흘러나오는 인간의 내면과 사유에 관심이 가 있다고 말할 수 있겠군요.”


여인은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구루의 말씀이 옳은 듯 합니다. 나는 글보다도 글의 결을 만들어내는 인간에 대해 관심을 지니고 있었던 듯 합니다. 이런 독법은 옳지 않은 것인지요?”

구루는 대답했다.

“옳지 않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겁니다. 다만 그대의 집착이 어디서 나왔는가를 생각하는 단서는 될 수 있을 것입니다. 혹시 그대는 그 사람에 대해 원망을 가지고 있지는 않습니까?”

여인은 잠깐 망설이는 표정을 짓다가 대답했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그에 대해 원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글 속에서는 따뜻한 인격을 지니고 있지만 글 바깥의 태도는 무심하고 차갑습니다. 오만으로 느껴지기도 하고 나에 대한 멸시처럼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구루는 가만히 물었다.

“그가 그대를 무시할 이유가 있습니까?”

여인은 대답했다.

“독자는 여러 명이고 필자는 한 사람이기에 관심이 집중되는 환경 때문에 그런 일이 생길 수 있지 않을까요?”

구루는 생각하듯 고개를 한번 들었다가 다시 여인을 쳐다보며 말을 이었다.

“독자의 숫자가 많다고 오만해지거나 독자를 무시한다는 것은 너무 단순한 생각인 듯 합니다. 혹시 그의 글을 읽으면서 그것이 자기를 향해 쓰고 있다는 생각을 받은 적이 있나요?”

여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그 사람은 마치 내게 말하는 것처럼 글을 써요. 어떻게 나의 생각과 경험과 주변에서 일어난 일들을 알아냈는지, 나에 대해 말하고 있어요. 그는 오랫동안 나에게 말을 걸어왔고, 나는 마치 편지를 받는 느낌을 받아왔어요. 그는 내 삶의 호흡을 이해하고 있는 듯 해요. 얘기가 잘 통할 것 같기도 하고요. 뭐랄까. 친구같은 느낌이 있어요. 그의 말은 편안하면서도 새롭고 진지해요. 어쩌면 내가 꿈꾸는 것을 말로 표현해요. 마치 나의 입인 듯 내가 하고싶은 말을 해줘요. 마치 나를 사랑하고 있는 사람처럼 보여요. 때로 나를 사랑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어요. 매일 그는 자기의 생각을 보여주며 내게 말을 걸어요. 아무런 이유도 없고 대가도 없이 수많은 이야기들을 해줘요. 때론 섬세하고 때론 흥미롭고 때론 진중하고 때론 열정적이고 때론 가벼운 이야기들을 내놓지요. 오직 나를 위해 그런 일을 하는 사람처럼 말이예요. 그래서 처음엔 그가 무척 고마웠죠. 고마워서, 메일을 보내기도 했지요. 늘 수고하는 그에게 미안해서 말이예요.”

구루는 고개를 숙이며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는 다시 말했다.

“그를 본 적이 있나요?”

여인은 빠르게 대답했다.

“그럼요. 블로그에 올린 프로필 사진으로 매일 보는 걸요.”

구루는 물었다.

“그가 그대를 알고 있나요?”

여인은 멋쩍게 웃으며 말했다.

“아뇨. 그는 나를 몰라요. 나를 모르는데도 꼭 나를 알고 있는 것 같아요. 혹시 알고 있는지도 몰라요.”

구루는 나직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그가 그대를 모르고 있다면, 그의 글에 나오는 모든 이야기들이 그대에게만 향한 건 아닐 듯 합니다. 아마도 그 이야기가 그대에게 건네는 말 같았다면 그것은 화술과 설득력의 문제일 것입니다. 그 이야기가 그대에게 깊은 공감을 불러일으켰다면, 그가 그대를 알고 있어서가 아니라, 이야기에 인간의 보편이 깃들어있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그대가 앓고 있는 중독은, 그의 글들 중에서 그대가 보고싶어하는 것만 편식한 것이 키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마도 그의 다른 글들은 그대에게 관심을 불러일으키지 않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글과 현실인격을 동일시한 점도 그 질병의 원인입니다. 그대가 해야할 일은, ‘글’이라는 요리를 먹는 방법을 재고하고, ‘글’을 편식하거나 과식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대를 중독에 빠지게 한 것은, 자아의 어느 구석이 비어있는 결핍에서 생겨난 것이라 할 만합니다. 결핍을 타인의 무엇으로 채우고자 한 것입니다. 어렵겠지만 당분간 ‘금식’을 권합니다. 그 욕망은 끊는다고 결코 굶어죽지 않는, 가짜욕망의 일종입니다. 금식을 하면, 욕망의 실체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 빈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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